2010.08.15. 주일낮예배 "회복과 부흥"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645회 작성일 2011-12-09 22:15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0.8.15.주일낮예배 회복과 부흥 느헤미야 1 : 4-11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오늘은 100년 전 국권이 피탈되고 해방된지 65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그래서 잃었던 국권을 회복하는 감격과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로 드립니다. 광복절만 되면 우리는 나라를 생각하게 되고 조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내 나라가 있고 나서,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힘이 없는 나라는 기를 펴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라의 국권을 상실했던 우리 민족은 일본의 압제 아래서 온갖 수모를 당했습니다. 국토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일본말을 해야 했고 일본글을 써야 했습니다. 자유는 기본이고 이 땅의 모든 자원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노동자들의 노동 착취는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강제징병, 정신대뿐 아니라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엄연히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 이름까지 모두 일본식 이름으로 갈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일제와 당당히 맞서 싸웠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는 3·1운동으로 맞섰고, 해외에서는 독립군들이 나라를 찾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물려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 중심에는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민족 독립에 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100년 전 일본의 침탈로 모든 백성이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교회는 100만 구령운동을 통해 자주독립에 불씨를 당겼고, 3.1운동에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1945년 민족해방 중심에 교회가 있었고, 6.25 한국전쟁 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국가발전을 향해 전진하는 한복판에도 교회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독립정신, 애국하는 나라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초대 한국교회 영성을 잃어버리고, 분열과 다툼, 이기주의와 세속주의로 세상에 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잃어가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65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신앙인으로서 나라사랑, 민족사랑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제는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우리 민족 앞에서 다시 일어날 때입니다. 나라 잃은 민족에 희망을 주고, 전쟁과 가난에 지친 민족에게 소망이 되었던 한국교회 전통을 이어가야 합니다. 이제는 민족의 평화적 통일과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 화해와 일치를 위해, 순교하면서까지 민족을 사랑했던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오늘 4시에 전국적으로 815대성회를 갖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이런 목적을 가지고 815성회를 여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815성회를 통해, 그리고 이 시간 예배를 통해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가정과 교회, 이 나라와 민족위에 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헌신한 사람입니다. 오늘은 애국의 중심에 섰던 느헤미야를 살펴보며 신앙의 본으로 삼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느헤미야는 민족사랑의 영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방 땅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고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형제 하나니로부터 고국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 소식은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모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은 불타고, 거기 남아 있는 백성들은 고통과 능욕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접한 느헤미야 마음은 슬픔과 탄식으로 가득찼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수일동안이나 슬퍼하며 울고,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은 단순한 수도가 아닙니다. 정신적 지주요 영적 고향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불탔다는 것은 자신들 뿌리요 근거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느헤미야가 어찌 슬퍼하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눈물이 많았던 느헤미야, 늘 조국을 사랑하고 동족을 위해 눈물을 흘렸던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울기 시작했습니다. 느헤미야에게는 영혼에 대한 사랑과 긍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면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님도 민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장 4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다고 했습니다. 왜 주님은 이 성을 보고 우셨느냐? 어둠에 사로잡혀 있는 조국의 모습을 보고 우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절망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종교적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형식만 남은 빈껍데기였고, 제사장들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종교 장사꾼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앞으로 멸망당할 조국의 운명을 보고 우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나라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바라보며 눈물흘릴 줄 아는 그런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고통 속에 부르짖는 사람들의 소리를 너무나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듣고 함께 슬퍼하고 울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나라사랑은 국민의 의무이기 이전에 복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나라사랑입니다. 나라사랑은 하나님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신앙과 애국은 그 길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앙과 애국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성경의 사상입니다. 모세는 나라 없이 애굽의 종살이하던 민족을 위해 자기 목숨을 던졌습니다. 바로 공주의 아들로 보장된 미래를, 나라를 위해 포기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을 때, 모세가 기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저들의 죄를 사해달라.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서라도 저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달라”, 그렇게 기도할 정도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도 애국자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해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자기 사명은 목숨을 다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9장에 보면 이방인에게 전도하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자기 민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늘 이 시대와 역사를 보며 애통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와 시대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맡기셨습니다. 분단된 아픔의 땅, 회복의 역사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애국애족의 신앙과 정신으로 민족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민족사랑의 영성을 가지고, 시대에 영향력을 발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저녁에 있는 815성회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성회입니다. 이 민족의 아픔을 안고 기도하는 애통의 성회입니다. 여러분, 온 성도가 모여서 이 나라와 민족의 문제와 아픔을 끌어안고 기도하십시다. 아무쪼록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또한 제11회 815성회를 통해 민족사랑의 영성을 회복하셔서 다시 한번 나라와 민족에 희망과 등불이 되는 포도원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영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져 내린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가장 먼저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느헤미야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1) 느헤미야의 기도는 금식하는 기도입니다. 금식 기도는 능력있는 기도입니다. 본문 4절에 보면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생명을 내놓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6절에 보면,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또한 8절에 보면 “너희가 금식하며 기도할 때,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금식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인물들은 중요할 때마다 금식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과 대면했고, 에스라는 식음을 전폐하고 민족의 죄를 슬퍼하며 울기도 했습니다. 엘리야도, 다니엘도, 다윗도 금식했습니다. 에스더를 보세요. 에스더는 페르시아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녀는 왕비가 됐지만 역시 유대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만이 유대인을 죽이기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의 삼촌 모르드개가 이 사실을 알렸을 때, 에스더는 비장한 각오를 합니다. 모든 유대인에게 나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도 금식하고 왕 앞에 나아가서 이 문제를 고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왕 앞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왕의 허락을 얻고, 모든 유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때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왕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금식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땅의 재앙을 거두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금식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이적이 있습니다. 2) 느헤미야의 기도는 연합하는 기도입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종들의 기도”는 복수입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2010.08.22. 주일낮예배 "열린 문의 축복" 11.12.09 다음글2010.08.08. 주일낮예배 "정복해야 될 땅"1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