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10.08.01. 주일낮예배 "쓴 물을 만났을 때"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139회 작성일 2011-12-09 22:11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밴드 주소복사

본문

2010.8.1.주일낮예배

쓴 물을 만났을 때 출애굽기 15 : 22-27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에릭 오르세나 라는 사람은물의 미래>라는 책에서 20세기가 석유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의 시대라고 규정했습니다. 물은 21세기 권력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20세기는 석유전쟁, 21세기는 물 전쟁 시대, 그래서 시리아는 터키를 향해 물 전쟁을 선포한 바 있습니다. 더 많은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메콩강을 둘러싼 주변국은 물 사용권을 두고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고 있고, 물 확보를 위해 국가 모든 인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UN2025년 세계 물 부족 인구가 3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세계 인구 약 반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물은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냐면 우리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공기를 3분 못 마시면 죽습니다. 물은 4일 마시지 않으면 죽습니다. 우리 몸은 70%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행성 지구도 바다와 육지 비율이 7:3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입---간장-심장-혈액-세포-혈액-신장-배설 순서로 순환하면서 세포형태 유지, 대사작용 활성화, 혈액과 조직액 순환 촉진, 영양소 용해 및 운반, 노폐물 배설, 열발산을 통해 체온 유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인체는 물 보유량에 민감합니다. 1~2%만 수분이 손실되어도 인체는 심한 갈증과 괴로움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수분 손실이 5%를 넘기면 반 혼수 상태에 빠지게 되며, 12%이상 잃으면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하루에 2.5리터 정도 생존을 위해 매일 마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땀, 소변, 눈물로 빠져나가는 양이 하루에 2.5리터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 물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함께 광야로 나왔습니다. 홍해를 건너 3일 길을 지나 수르 광야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당장 닥친 문제는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4일간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3일간 물을 마시지 못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절망하고 있을 때 한 곳에 와보니 샘물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제 됐다, 이젠 살았다고 소리치며, 정신없이 퍼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물이 쓴물입니다. 독약처럼 너무 써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이 마라가 된 것입니다. 마라는 쓰다, 쓰디 쓴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물이 없어서 문제였는데, 이번엔 쓴 물이라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이렇습니다. 뭔가를 얻고자 애를 씁니다. 그것만 얻으면 인생이 행복할 것 같고,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그것을 얻었습니다. 죽어라 몸부림쳐서, 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 안에 문제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것만 얻으면, 그것만 이루면 다 되는 것 같지만, 집만 사면 될 것 같았는데, 아들만 대학나오면 될 줄 알았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시골에 노인 집 말 한필이 밤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온가족이 걱정을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런 슬픈 일이 있느냐고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말이 돌아왔는데 짝을 하나 데리고 와서 갑자기 말이 두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세상에 이런 기쁜 일이 있느냐고 축하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사람들이 또 위로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전쟁이 일어나 동네 청년들이 다 끌려갔는데 그 집 아들은 다리 때문에 면제받았습니다. 또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좋은 일이 다 있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홍해를 건너는 극적인 승리와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라의 쓴 물도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의 쓴 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우리 인생에 쓴물이 생기는 이유가 뭔가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일어납니다. 혹시 건강하거나 젊다거나 돈이 많다고 해서 나는 질병과 죽음과는 상관없겠지’, ‘예기치 못한 사건과는 무관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계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늘 예측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인생에 쓴물이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비극과 저주의 원인은 바로 죄입니다. 아담 이후 인간의 영혼에 오염된 죄의 바이러스는 인간을 고통과 저주로 몰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원한 사망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인생의 근본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죄는 순간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쓴물입니다.

신앙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쓴물을 만날 때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있기 전에는 진짜 믿는 자가 누군지 구별되지 않습니다. 고난과 핍박을 통해서 신앙의 진실성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간다면 참된 신앙인이지만, 주님을 배반하고 떠난다면 그 신앙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증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 티백이 나와 아주 간단하게 녹차나 홍차, 둥글레차 등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녹차인지 둥글레인지 홍차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뜨거운 물에 넣어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초록색 물이 우러나오면 녹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붉은 물이면 홍차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고난에 처하면 우리 신앙의 진실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숙과 성화를 위한 연단의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신앙 인격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기대하십니다. 예수 겨우 믿고 어린애 짓만 하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늘 단물만 있다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단 것만 좋아하면 뼈가 약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쓴 샘을 두셔서 우리로 하여금 인내와 겸손을 배우게 하십니다. 쓴 물은 교육용, 훈련용인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킨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임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강렬하게 체험하게 되는 것은 언제입니까?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난의 때입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예기치 않은 돌풍으로 지나가던 배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로 모시고 가다가 한밤중에 광풍을 만나 죽게 된 적도 있습니다. 그때 주님 말씀 한마디로 그렇게 사납던 광풍이 잠잠해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강력하게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반드시 쓴 물이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할 때 어떤 쓴물을 만나도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쓴물을 만났을 때 승리의 반응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그러면 쓴물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쓴물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쓴 물을 만나면 여러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 없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쓴물을 만났을 때 성도의 반응은 어떠해야 합니까?

본문 25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1)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공통점은 둘 다 육신을 입은 연약한 존재요, 고난을 피할 수 없는 존재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둘의 차이점은 모세는 고난과 위기 앞에 언제나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것이요,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망은 쓴물을 더 쓰게 만듭니다. 하지만 기도는 쓴물을 단물로 바꾼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바로 왕 앞에서 10가지 재앙을 내릴 때 하나님께 기도했고, 홍해 앞에서, 마라의 쓴물 앞에서, 물을 내는 반석 앞에서, 아말렉과 전투를 치르면서, 시내산 십계명을 받으면서, 회막 앞에서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세의 기도로 이스라엘 쓴물 역사가 단물 역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긍휼을 여는 열쇠요, 사탄의 침입을 막는 자물쇠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라고 명하시지만, 사탄은 기도를 쉬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멈추는 것을 불안해하시지만, 사탄은 우리가 기도할 때 제일 불안해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마음 든든해하시지만, 사탄은 우리가 영적으로 잠잘 때 안심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사탄을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