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5. 주일낮예배 "신사적인 사람"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800회 작성일 2011-12-09 22:09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0.7.25.주일낮예배 신사적인 사람 사도행전 17 : 10-15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을 피해 베뢰아로 갑니다. 그때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복음에 대해 너그러웠다고 했습니다. ‘너그럽다’는 말을 개역성경은 ‘더 신사적이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사도 바울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베뢰아 사람들이 신사적이었다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 신사적인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 문이 열린 사람입니다. 여기서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말씀에 대한 수용성을 말합니다. 수용성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고 삶에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과연 진리인가 알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고 삶에 그대로 적용했습니다(11). 성공하는 사람 특징이 뭡니까?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한다는 것입니다. 프로선수들을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습을 모두 마치고 다들 자는 밤에 혼자 운동을 합니다. 발레리나 강수진 씨는 유학가서 모든 학생들이 잠든 밤, 조명 빛을 의지해 밤을 지새우며 연습했다고 합니다. 김연아 선수는 한 동작을 익히기 위해 천 번을 연습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노력과 열정 없이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즐겁게 받고 조금 힘들어도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믿음 생활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의 축복과 행복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행할 때 성도다운 삶을 살 수 있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받고, 그것을 삶에 적용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내용이고, 신사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뜻대로 살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약속하십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둘째, 주도적으로 협력하는 삶을 산 사람들 신사적인 성도는 협력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본문 14절,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이는 베뢰아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도와 아덴으로 피신시키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보면 바울이 아주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바울은 주도적 역할을 베뢰아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왜냐면 바울은 유럽 지리에 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이것을 알았고, 그래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주도적으로 바울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덴으로 별 어려움 없이 사역지를 옮길 수 있었고, 그 결과 아덴에서도 힘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서로 도와 협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가 신사적인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많을 때 그 사회는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협력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물방울 자체로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물방울이 모여서 시내가 되고 강이 되고 댐이 되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협력이 축복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를 위해 주도적으로 협력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하는 일에, 하나님 영광을 위해 앞서서 동역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교회가 은혜롭게 부흥 성장하고, 승리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과 나라와 민족, 땅 끝까지 쓰임 받는 교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협력하기 위해 세움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며, 가정, 교회, 사회, 어느 곳에서든지 협력자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산 사람들 본문 15절에,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필요를 채워준 사람들입니다. 베뢰아에서 아덴까지는 320km로 그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은 곳입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을 혼자 떠나게 하지 않고 동행할 몇 사람을 붙여 보냈습니다. 또한 바울은 자기를 아덴까지 인도한 형제들에게 아직 베뢰아에 있는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자기가 있는 아덴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사역에 실라와 디모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먼 거리를 왔고, 다시 그 먼 거리를 가야 합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 명을 받고 즉시 아덴을 떠났습니다. 즉 그들은 전도자 바울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말이나 일, 신체적으로 부족할 수 있고, 지식이나 세상을 살아갈 지혜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 부족을 채워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때마다 그의 부족을 채우는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넉넉하게 전도자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나옵니다. 그는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 용사나, 나병환자더라” 그런데 그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가 나아만 문제를 알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낫겠다고 복음을 전합니다. 결국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고, 나병에서 놓임받게 되었습니다. 어린 소녀는 나아만의 궁극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바나바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팔아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울이 교회 안에 들어올 때, 모든 사람들이 사울을 의심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했습니다. 그때 바나바는 사울을 대변해 주고, 그를 주님 일꾼 ‘바울’로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필요를 채우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필요는 물질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 시험에 빠진 사람, 가정과 인생의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 그들에게 믿음의 교훈을 주고, 마음이 상한 자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신사적인 사람이 되어 가정과 일터, 교회에서 필요를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정에 기쁨과 소망이 넘치고, 교회가 영혼 구원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며, 이 사회가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한 세상이 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2010.08.01. 주일낮예배 "쓴 물을 만났을 때" 11.12.09 다음글2010.07.18. 주일낮예배 "승리는 기도에 있다"1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