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10.07.18. 주일낮예배 "승리는 기도에 있다"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939회 작성일 2011-12-09 22:07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밴드 주소복사

본문

승리는 기도에 있다 마태복음 7 : 7-11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어떤 사람이 기독교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의 역사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기독교 역사를 끌고 갔고, 또 기도하는 사람만이 역사를 끌고 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복음을 전했고, 기도하는 사람이 축복받아 하나님나라를 확장했고, 기도하는 사람이 사명을 받아 하나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건국대 유태영 박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분 아버지가 남의 집 머슴으로 8남매를 낳았는데, 유 박사님은 여섯 째 아들이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8남매 다 학교를 갈 수 없었고, 유독 박사님만 똑똑해서 초등학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이 초등학생이 교회 다니기 시작해서, 13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를 하려면 이정도 믿음과 결심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한 이틀쯤 하고는 가게가 되나 안되나 보자며 기도의 능력을 시험합니다. 기도 조금 하고서 금방 하늘에서 복이 떨어질 줄로 생각합니다. 입시 때 새벽기도 나왔다가 입시 끝났다고 새벽기도도 끝내버리기도 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기도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뭘 하든지 십년은 해야 그 분야에 눈이 열리고 전문가가 되는 것처럼,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내하며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유 박사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와 구두닦이를 했습니다. 낮에는 구두닦이를 하면서 집도 없이 아무데나 자면서 계속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그는 구두닦이라는 현실에 낙심할만했지만 새벽기도에 가면 신기하게 힘과 소망이 넘쳤습니다. 더 이상 구두통은 보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어려워도 그 어려움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여러분도 문제보다 하나님이 크게 보이는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두를 닦다가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한국 농촌을 위해 일하고 싶은데, 농사가 발달된 덴마크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국왕 초청장이 그에게 도착했습니다. 그는 덴마크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학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비록 머슴 아들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길을 열어주십니다. 기도의 힘은 위대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능력이 임하고 기도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힘이 솟아나고 새로운 인생이 열립니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되면 강해집니다. 기도하는 일군이 사역을 잘 감당합니다. 교회도 기도하는 교회가 부흥하고, 가정도 기도하는 가정이 가정천국으로 변하고, 세상에 나가서 승리합니다. 하나님 약속의 말씀도 기도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승리하는 인생, 복있는 인생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강조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하면 받아낼 것이요, 찾으면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기도 외에 다른 힘은 없습니다. 우리 말에 꿩대신 닭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세상일에는 이것이 안되면 저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이 길로 못가면 저 길로 돌아갈 수 있는 대체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만큼은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고 오직 기도밖에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2주에 걸쳐 감사하면 승리한다’, ‘믿으면 승리한다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승리는 기도에 있다’, 즉 기도하면 승리한다는 말씀의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러면 기도가 복을 가져다주고, 승리를 가져다주는 이유가 뭡니까?

 

첫째, 기도는 정죄를 용서로 바뀌는 영적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용서의 사람으로 바꾸어줍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해 보세요. 남을 정죄하는 만큼 내 마음도 괴롭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음이 힘들어도 용서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면 왜 스스로 고통 받으면서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용서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아니 용서는 용서받은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 비유 중에 1만 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친구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1만 달란트 탕감해 준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는 그 종은 용서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잡아 가두고 1만 달란트를 다 갚기 전에는 풀어주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비유를 보면 용서는 자유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했을 때 용서하고 안하고는 내 자유고 권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큰 착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자유도 권리도 아닌 책임입니다. 우리는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그렇게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언제 가능합니까? 기도할 때입니다. 용서가 용서받은 자의 책임이지만, 우리 힘으로 안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과수원을 해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동네 시기하는 사람이 밤에 몰래 그 장로님 과수원에 가서 나무를 톱으로 다 잘라버렸다고 합니다. 과수원을 완전히 망쳐놓은 것입니다. 그러자 화가 치밀어 당장 좇아가서 그 집을 엎어버리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이삭이 우물을 뺏겨도 싸우지 않고 인내한 것이 생각나더라는 것입니다.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모습이 생각나더라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다는 것이 깨달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용서가 되고, 그때 마음이 자유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과수원을 망친 사람이 집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만일 장로님이 그 사람과 시비를 벌였더라면 그 사람 죽음이 장로님 때문이란 오해를 받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마태복음 1818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땅에서 푸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거기에 하나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정죄하는 사람이 용서의 사람으로 바뀌는 영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둘째, 기도는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영적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예수님은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큰 행복과 보람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원수를 대할 때는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똑같이 해주어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왠지 모르게 자신이 무능력해보이고, 비겁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차는 철길을 타고 달리듯이 마귀는 분노를 타고 옵니다.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에는 마귀가 틈타게 되어 있습니다. 분노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미워하면 살인의 감정까지 품게 됩니다. 가인을 보세요. 아벨을 향한 분노가 결국 그를 살인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마음에 살인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미워하고 분노하는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여러분,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이 내가 사는 비결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를 화나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자를 위해, 나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다보면 그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게 됩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인간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왜입니까? 기도할 때 성령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인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한 집사님이라고 있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