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10.07.11. 주일낮예배 "믿으면 승리한다"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451회 작성일 2011-12-0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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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11.주일낮예배

믿으면 승리한다 사도행전 14 :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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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서당에서도 보통학교에서도 공부로는 전혀 안 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당시 하급관리 시험을 봤는데 두 번씩이나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관상쟁이를 찾아갔더니 너는 흉상이요 천한 상이다. 너는 어디에 나설 사람이 못된다. 그러니 제발 앞에 나서지 말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한국 근대사에 큰 영향력을 끼친 백범 김구 선생입니다.

어떻게 그가 세상에 이름을 떨치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느냐? 거기는 한 가지 그의 생애를 바꿔놓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그의 인생을 변화시켰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어야 승리하고, 믿음이 있어야 행복하고, 믿음이 있어야 사랑하고, 믿음이 있어야 복 있는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갔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다가,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는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말이 구원받을 만한 믿음입니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데,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인생의 목적이고, 믿음이 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모든 문제는 따지고 보면 믿음의 문제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믿음에서 결정됩니다. 바울은 그 앉은뱅이가 믿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큰 소리로 외칩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그 순간 어떻게 됐습니까? 그 앉은뱅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고 했습니다.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던 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복, 뿐만 아니라 스스로 걸어다니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내가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 나는 비록 앉은뱅이지만 하나님은 나를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 나같이 약하고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나를 살려주셨다는 믿음, 그래서 나도 그를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얼마든지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그를 일어서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 나도 예수 안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 그래서 하반기 다시 한번 일어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든 능력과 기적의 배후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으면 할 수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불행한 인생이 행복한 인생으로, 실패한 인생이 승리하는 인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복을 가져다주고, 승리를 가져다주는 이유가 뭡니까?

 

첫째, 믿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는 삶의 원리는 지식의 원리가 아니라 믿음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고 나서 아는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다 알지 못합니다. 자연의 모든 이치, 자연의 모든 현상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을 알고 그 다음 자연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자연을 보아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믿음의 원리는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됩니다.

우리가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병원에서 진찰받고, 약도 처방을 받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는 것은 그 약에 대해 다 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약의 성분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의사를 믿고 먹는 것입니다. 수술도 그렇습니다. 저 의사가 수술하면 낫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발소에 갑니다. 그러면 머리도 깎고 면도도 해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를 맡기고 잠을 잡니다. 시퍼런 면도칼을 들이대는데도 코까지 골면서 잠을 잡니다. 왜입니까? 이발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위대한 본성 중에 하나가 믿음의 본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믿음과 대치되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성입니다. 이성은 상식, 지식, 합리성, 경험에 바탕에서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성에 의해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성으로 믿어지는 분이 아닙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인간보다 더 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성이나 지식으로 하나님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한 청년이 어거스틴에게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만일 저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신다면 제가 믿겠습니다

어거스틴이 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보여줄테니 따라오시오. 대신 바가지 하나를 들고 따라오시오

어거스틴이 청년을 데리고 간 곳은 넓은 바다였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보며 어거스틴이 말했습니다.

청년, 내가 이제 하나님을 보여주겠소. 그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그 바가지로 저 바닷물을 퍼담아 보세요

청년은 그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기 바가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출렁거리는 그 넓은 바다를 바가지로 퍼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그가 생각했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내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 내가 하나님을 논한다는 것, 내가 하나님을 지식으로 안다는 것은 마치 바가지로 바닷물을 퍼담는 것과 같은 것이구나청년은 바가지를 던져버리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사실 지극히 작은 존재입니다. 지식 또한 별 거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작은 것은 과학으로 증명되지만 큰 것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과학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면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왜 하필 내가 내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과학은 다만 자연안에 있는 현상을 말할 뿐, 더 중요한 현상의 원인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모르는 것을 더 많이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자꾸 이성으로 하나님을 측량하려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해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합리적인 이성으로 판단한 빌립보다 하나님 능력을 믿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나온 안드레의 믿음을 통해 오병이어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 왕 금신상에 절하라는 명령에 거절합니다. 이성과 합리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들이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으로 반응했을 때 맹렬히 타는 불가마 속에서도 살아났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믿음은 세상을 보는 성경적 관점입니다. 믿음은 세상을 사는 성경적 원리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볼 때 먼저 믿음의 눈을 열어야 합니다. 이성과 과학의 눈으로 우리 인생을 들여다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환경을 보고, 믿음으로 사람들을 보고, 믿음으로 공부하고, 그때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앉은뱅이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환경은 절망적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는 일어날 수 있다, 나는 승리할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만이 이 험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해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모든 문제의 해결사라는 것입니다.

베다니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님은 살려주심으로 해결해주셨습니다. 나인성 과부가 아들을 잃어버리고 비통에 잠겨있을 때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가나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당황하고 있을 때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잔치를 지속하게 하셨습니다. 거라사 지방에 귀신들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정상의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인생의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할렐루야!

여러분, 믿음으로 이 시대 기적을 이루고,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성과 과학과 지식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믿음은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는 구원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이 보장되어 있는 상품이나 신용이 있는 상품은 잘 팔립니다. 그래서 메이커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많은 증거를 댑니다. 학자들은 책을 쓰면 반드시 주석을 붙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근거 있는 것임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집을 사고 팔 때도 계약서를 씁니다. 이는 약속입니다.

믿음의 세계도 이와 같은 약속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과 구원이 보장된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으면 천국과 구원이 보장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는 구원의 원리입니다. 믿음이란 소속입니다. 소속이란 어떤 관계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어떤 부모의 자녀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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