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8. 주일낮예배 "내가 여기 있나이다"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45회 작성일 2011-12-09 18:14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0.4.18.주일낮예배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사야 6 : 1-8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우리는 날마다 거울을 보며 삽니다. 그 거울을 통해 우리는 가감없이 우리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거울은 속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울 앞에서 스스로 속을 때가 있습니다. 언제가 그렇습니까?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있을 때, 사람들은 가장 잘 속는다고 합니다. 약간 비스듬하면서도 평면인 듯 보이는 오목거울, 그리고 은은한 조명과 직원의 기막힌 화술...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본 모습을 잊어버리고 속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 상태에 따라 속기도 합니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자기 모습이 달라지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봤는데 그렇게 잘나 보일 수가 없더랍니다. 그 날이 언젠가 하면, 자신이 진급한 날이랍니다. 이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거울을 보는 순간 그렇게 잘나 보일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직장에서 싸우고 나서 다시 그 거울을 보는데, 자신 모습이 그렇게 초라하고 비참해 보일 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거울 앞에서 자신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세상 사는 우리 모습입니다. 세상에 투영되는 자신 모습이 어느 순간은 괜찮다가도, 어느 순간은 그렇게 비참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여러 가지 유혹과 환상과 감상으로 우리를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세상이라는 환경과 조건, 미래, 이런 이름으로 나를 보게 하고, 그때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고난과 아픔과 실망…이런 이름으로 나를 볼 때는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있는 그대로를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속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속으며 살아갑니까? 그래서 우리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어디냐면, 바로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볼 때 가장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보다, 세상 어떤 거울보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이요,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남유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가 언제인가 살펴보면... 구약은 크게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로 구분합니다. 역사서는 율법서와 역사서로 구분되는데 총 17권이고, 시가서는 5권입니다. 선지서는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구분하는데 총 17권, 그래서 구약은 39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구분은 되지만 시가서나 예언서는 역사서 안으로 들어가서 생각을 해야 은혜가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선지자들은 역사서 안에서 하나님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즉 본문이 기록된 이사야서는 대선지서로,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 아하스 왕, 히스기야왕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입니다. 이때는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이후 시점으로, 남유다 역시 앗수르를 비롯한 주변 국가 위협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활동한 이사야의 예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첫째는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사야1-39장)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40-66장)이라는 내용입니다. 이사야는 신약의 선지자라고 보일 만큼 신약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중요한 예언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으로 돌아와서, 본문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로 시작됩니다. 웃시야 왕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어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52년 재위기간 동안 밖으로는 국위가 선양되었고, 안으로는 국민이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라가 왕성해지자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말년에 문둥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북방에서는 위험한 국제적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나라는 우리나라와 같이 남북으로 나뉘었고, 외세 영향이 강하게 일어나던 때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기 시작했고, 신앙에 큰 혼란이 왔습니다. 그래서 종교적, 정치적으로 소망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이사야는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크게 낙심해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 은총을 구하려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체험하고 용기와 사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요즘 이 세계는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모릅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또 어떤 일이 터질까... 우리나라는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서, 유럽으로 가면 화산재로 인해서 최악의 항공대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폴란드 여객기가 추락해서 대통령을 위시해서 97명이 사망하고, 중국 칭하이에서는 지진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모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정세라는 것은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이사야가 성전에 올라간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체험하고, 용기와 사명을 가지고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될 사명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은혜 받으시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이사야는 하나님 임재를 발견합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 환상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신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거룩하고 거룩한 높은 보좌, 요한계시록에 보면 24장로와 네 생물, 그리고 수많은 천사들이 찬양하고 경배하는 그 보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 초월성을 의미합니다. 우주와 역사 위에 계셔서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초월성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다", 3절에 보면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내재적인 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온 우주에 충만하고, 이 세상에 충만하신 하나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늘보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전 안에도 충만히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요, 시공간을 초월해서 온 세상에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는 유다는 풍전등화 위기에 처했지만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시며 전능하신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통치하고, 인도하시며, 책임지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곳에도, 그리고 여러분 가정과 일터에도, 슬퍼하는 이 나라에도, 혼란스러운 이 지구촌에도 하나님은 어느 곳이든지 임재하셔서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소망가운데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들이 가끔 묻는 말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것입니다. 공간적인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하늘, 즉 천공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육신의 눈으로는 안 보이는데, 과학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이 있습니다. 코스모스, 즉 우주권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눈으로나 과학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하늘이 있습니다. 그것이 천국입니다. 구약시대를 보면 하나님은 성전 지성소 안에 계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치하고 보호하신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 임재를 알릴 때마다 "하나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다" 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 영광스러운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 들어와서는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건물 안에 제한적으로 계시는 분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 모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이란 교회를 말합니다. 이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모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하나님 임재 방법은 믿는 자 안에서 성령이 내주하시면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통치하심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임재는 성령의 내주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성령을 모신 성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날마다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임재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서양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하나님이 너를 떠나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가장 축복되고 정중한 인사는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 내 가정과 일터와 나아가 이 나라와 민족과 함께 하신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손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삼손과 함께 하셨을 때 그의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 죽이기를, 마치 염소새끼 죽이듯 했다고 했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군대 천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삼손을 떠나셨을 때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무기력한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축복된, 능력있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을 보면 재물이 많은 것도 아닌데, 자녀들이 특별히 잘되는 것도 아닌데, 사회적으로 특별한 명예나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2010.04.25. 주일낮예배 "이기는 자의 축복" 11.12.09 다음글2010.04.04. 주일낮예배 "부활신앙" (부활주일)1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