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1. 주일낮예배 "찍어 하나가 되라"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336회 작성일 2011-12-09 17:40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0.3.21.주일낮예배 찢어 하나가 되라 누가복음 23 : 44-46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9세기 중반 하와이에 한 섬 몰로카이에는 문둥병자가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외면하던 나병환자 마을에 다미안이란 사람이 홀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루에도 수십명씩 죽어가는 나병환자들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손수 그들 시체를 땅에 묻습니다. 누구도 다가가려 하지 않는 그들 시체를 만지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헌신적인 모습에도 단 한명 나병환자도 다미안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야 건강하니 그런 소리하지. 나같이 문둥병자라면 당신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거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미안은 "하나님, 내가 문둥이가 되게 해주옵소서. 저들과 같이 문둥이가 되어야 전도할 수 있으니, 저를 문둥이로 만들어 주옵소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는 계속 죽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자신의 살을 찢습니다. 그리고는 나병 균을 자기 몸에 집어넣어 결국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나병이 걸린 그는 다시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여러분, 이제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6년 동안 환자들을 돕고, 농사를 짓고, 마을을 가꾸며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1889년 49세 나이로 생을 마쳤습니다. 여러분, 다미안이 나병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과 같이 된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것입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성소 휘장의 천 두께가 10센티미터였다고 합니다. 이 천은 양쪽 끝을 말에 묶고 달리게 해도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휘장은 성전 안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기 위해 막아놓은 천이었습니다. 그런데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율법시대가 끝나고 은혜시대가 열렸다는 것,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예수님께서 직접 열어 주셨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으며,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느냐? 그것은 휘장을 찢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길이 아무리 잘 뚫려 출세하고, 성공 길을 가더라도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이 막혀있다면 그 인생은 저주와 심판 아래 있는 인생입니다. 아무리 지금 막힌 것 없이 만사형통하다고 해도 하나님께 가는 길이 막혀 있다면 실패한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열어주신 구원의 길,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어주신 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에 아직도 찢어지지 않은 휘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휘장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말씀듣고 우리 안에 있는 휘장을 찢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최고의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휘장을 찢으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셨듯이 여러분도 휘장을 찢으셔서 주님과 연합하는 사순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찢어야 하는 휘장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죄의식이라는 휘장을 찢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단절시키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게 만든 것은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죄인은 하나님께 나올 수 없다고 표시한 것이 휘장입니다. 즉, 휘장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을 가로막아 구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죄인도 예수 이름을 의지해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휘장이 찢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신 산 표적이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 대제사장 외에 그 누구도 지성소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들어간다면 즉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성소 안에 들어가도 죽지 않고 하나님 은혜를 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6절에 보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찢기심으로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에 나올 수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직접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은혜, 주일마다 성전에 들어와 예배드릴 수 있다는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마음속에 죄의식 휘장이 있어 하나님을 만나는데 두려움이 있습니다. 죄의식에 사로 잡혀서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에 나가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휘장을 스스로 쳐놓고 죄의 종이 되어 복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탄의 계획이요 목적입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 안에 죄의식이라는 휘장을 쳐놓고, 자유하지 못하게 합니다. 소극적이고 부정적이고 고통의 삶을 살도록 끌고 가고 있습니다. 김부남 사건이라고 1991년 일어난 사건이 있습니다. 9살때 자기를 겁탈한 사람을 21년이 지나서 살해한 사건입니다. 자기가 겁탈 당했다는 수치와 상처로 21년을 살았습니다. 그 상처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난지 아십니까? 첫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두번째 결혼생활도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부남은 자신 행동이 어린시절 그 사건 때문이라는 걸 알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불행한 인생입니까? 소중한 인생을 21년 동안 과거에 묶여 고통스럽게 산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런 저런 상처, 평생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해 주셨는데 자기가 스스로를 증오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장 1절로 2절 말씀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귀한 복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억누르며 과거로 끌고 가던 그 모든 것의 줄을 끊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무죄다. 너는 깨끗하고 자유하다. 너는 이제 해방되었다" 선언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김부남 씨에게 누군가 복음을 전해줬다고 하면,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의 억울함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를 깨끗하게 하시고, 그래서 그는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을 때 과거 상처에서 자유할 수 있고, 죄의식에서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든 억눌림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찢기심으로 우리 모든 허물과 죄와 수치의 짐은 다 벗겨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찢기심으로 여러분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자유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기억할 것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죄에서 자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지은 자범죄를 자복하고 통회해야 합니다. 믿고 회개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모두 예수님을 배신한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실수와 죄를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있던 모든 휘장은 걷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이 되어, 남은 생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위대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뒤, 회개하지 않아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여러분, 죄의식의 휘장을 찢어버리고, 죄와 싸우시기 바랍니다. 다시는 죄의 종노릇 하지 않겠다는 믿음의 자세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죄 위에 은혜와 부흥을 부어주시지 않습니다. 죄와 허물이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쁨이 사라지고 기도문이 막힙니다. 감사가 없어지고 마음에 평화가 사라집니다. 힘을 빼앗긴 삼손처럼 무능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보혈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죄와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이 믿음으로 죄의식 휘장을 찢으시고,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와 하늘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인간관계로 막힌 휘장을 찢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두 개의 막대기가 만남으로 형성됩니다. 우리 믿음이 수직적인 막대기만 가지고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수평적인 막대기가 같이 연결되어야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만으로 우리 믿음은 온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와 나, 너와 우리와의 수평적인 관계가 접목되는 데서 우리 믿음이 바로 세워지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는 아주 열심히 합니다. 그 열심을 보고 사람들이 그 사람의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면 그것은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수평적인 관계가 잘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곧 수직관계 믿음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입니다. 십자가 모습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시는 모습입니다. 또한 너희도 이웃과 십자가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셨듯이 너희도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한다면 그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았다면 용서 못할 일이 없고 용서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2010.03.28. 주일낮예배 "십자가의 영성으로 응답하라" (종려주일) 11.12.09 다음글2010.03.14. 주일낮예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1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