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10.03.14. 주일낮예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713회 작성일 2011-12-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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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14.주일낮예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 사도행전 16 : 11-15

 

빅토르 위고 소설 중에 <장발장>이라는 명작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장발장은 배고픈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 잡혀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는 여러 차례 탈옥을 시도하여 오히려 형이 늘어났고, 결국 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면 장발장에게 동정이 갑니다. 전과자라며 밥도 팔지 않고 잠도 재워주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장발장을 동정하게 되고, 그를 학대하는 사람들이 야박해 보이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작가가 그가 도둑이 되고 탈옥수가 되고 장기간 감옥에 있게 된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발장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 없었다면 우리도 장발장을 외면했던 그 시대 사람들과 같았을 것입니다. 교도소를 제 집처럼 들락거리는 사람에게 누가 호감을 갖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도 전후 사정 얘기를 잘 들어보면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빅톨 위고 같은 사람이 그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잘 설명한다면, 모두 동정하게 될 겁니다. 장발장은 빅토르 위고를 만났기 때문에 범죄자였지만, 사람들로부터 동정 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요즘 한 사람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지 모릅니다. 김길태,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는 2살 쯤 될 때 교회 앞에 버려져 양부모 손에 자랐다고 합니다. 성장기를 잘 보내다가 사춘기 때 출생비밀을 알고, 그때부터 방황했다는 겁니다. 전후 사정을 보면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는 그를 동정하자는 게 아닙니다. 처벌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회악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방만 하는 자가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할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장발장이 빅토르 위고를 만났을 때 그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었듯이, 그가 예수님을 만났다면, 예수님을 그의 인생의 주인으로 만났다면... 아마도 그의 인생은 다른 모습이 아니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하고 또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든지 소망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비전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시는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영적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은 아주 소중합니다. 한 사람이 가정을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합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히틀러 한 사람 때문에 600만 명이나 되는 죄 없는 유태인들이 죽임을 당했고 전 유럽이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 한 사람 때문에 로마제국에 복음이 증거되었고, 나중에는 유럽이 복음화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복음이 해적의 나라, 영국으로 갔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에 간 복음이 126년전 무지하고, 가난한 나라, 조선에 들어왔고, 오늘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단 한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과 속에 있는 씨는 우리가 셀 수 있지만 씨 속에 있는 사과는 셀 수 없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볼 때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씨가 들어가면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열매가 나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VIP전도축제가 시작됩니다. VIP전도축제는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을 복음으로 섬기는 운동입니다. 가장 소중한 한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섬기고, 그래서 한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 소원을 성취하는 운동입니다.

아무쪼록 VIP전도축제를 통해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이 포도원에서 땅끝까지 복음의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전도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뭡니까?

 

첫째, 전도는 한 사람을 살리는 생명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할 거 없이 인생의 문제로 인해 아파하기도 하고, 갈등과 절망 속에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땅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을 주는 게 뭡니까? 바로 전도입니다.

바울은 소아시아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당시 소아시아는 대도시가 많고 따라서 사람도 많아서 전도가 쉬울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 생각은 달랐습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이 기도하는데 한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한 사람이 나타나더니 누군가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마게도냐 사람이었는데, 이 마게도냐는 당시 세계 최강의 정치, 군사,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아무리 봐도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바울에게 도와달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그럴듯한데 속으로는 모두 도와달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겉모습만 보지 말고, 속사람을 봐야 합니다. 영혼에 집중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속사람은 누구나 공허하고 외롭고, 모든 사람은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갑니다. 젊은이가 달려가서 얼른 짐을 받아지고는, "할아버지, 짐이 무거우시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짐만 무거운게 아니라네. 사는 게 무겁지." 할아버지에게 무거운 것은 어깨 짐이 아니라 인생의 짐이었습니다. 늙고 병들어 산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젊은이가 진 짐은 가볍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실업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취업문이 갈수록 좁아져 청년들 한숨이 커지고 있고,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렇게 인생의 짐을 안고 살아갑니다. 슬픔의 짐, 실패의 짐, 고독과 염려의 짐, 질병의 짐...

전도는 이런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전도의 출발인 것입니다.

"저 사람은 멀쩡하니까 전도할 필요가 없겠구나"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살고, 모든 일이 척척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래서 저 사람은 아무 걱정도 슬픔도 염려도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나름대로 다 고민과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지난 1월 삼성전자 부사장 이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벨 물리학상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물리학 교수와 서울 어느 대학 의대 교수가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면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인생의 종양과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음이 뭡니까? 복음은 곧 예수님입니다. 복음은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아야 인생의 모든 짐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32절에 보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참 자유가 뭡니까? 사람들은 자유라고 하면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언론과 문화의 자유, 생활의 자유를 말합니다. 이런 자유는 외적인 자유에 불과합니다. 이보다는 내면에 자유가 이루어져야 진정한 자유입니다.

자유란 내면의 질서에서 출발합니다. 자신 내면에 질서가 잡히지 않으면 제멋대로 자유를 남용해 방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 때 외적인 자유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면에 원수마귀, 흑암의 세력이 묶고 있는 것에서 놓여야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와지는 복이 뭡니까?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해집니다. 오늘날 우리 환경은 두려워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누가 두려워합니까? 범죄한 사람이 두려워합니다. 범죄한 아담은 두려워서 하나님을 피해 숨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죄는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사람이 갖는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은 죽음입니다. 고대로부터 이 죽음을 이겨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예수님만 죄와 죽음에서 자유로우셨고, 죄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으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해지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 믿으면 미움으로부터 자유해집니다. 사람에게는 남이 잘 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열등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깨닫게 되고,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나아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보다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복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 믿으면 절망으로부터 자유해집니다. 사탄의 전략은 우리가 낙심하게 만들고 다 포기하게 만든 후 우리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어떤 절망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절망한 사람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당시 의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질병의 문제를 해결해 하셨고, 상처받은 마음, 정신적, 생활적, 영적 절망의 문제까지도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포기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런 복이 우리 믿는 자에게 약속된 복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문제든지 주님께 가져오면 구원의 복과 자유해지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인생의 짐을 안고 고통받는 영혼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향해 손짓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들의 외침을 들으시고 생명의 자리로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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