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10.02.28. 주일낮예배 "축복의 땅이 되게 하라" (졸업)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706회 작성일 2011-12-0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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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28.주일낮예배(졸업예배)

축복의 땅이 되게 하라 민수기 14 :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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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우 밀러라고 하는 사람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학생시절 이스라엘 사막 한가운데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막에 숲이 울창한 것을 보고 교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왜 중동에 있는 다른 나라 사막은 다 황량한데 이스라엘 사막만 이렇게 울창합니까?"

그랬더니 교수님이 하는 말이 "지금 보는 이 숲은 자연의 숲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만든 숲이라네. 하지만 아랍 사람들은 이런 숲을 만들 수 없었네. 왜냐면 이 땅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가치관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아랍 사람들은 이 땅이 알라신이 저주해서 이렇게 황량하다고 믿는다네. 그래서 아무런 손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가고 있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땅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믿었네. 그래서 이 땅에서 젖과 꿀을 거두기 위해 사막에 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가 숲을 이뤄 열매를 거두게 된 것이라네

이스라엘은 사막에 숲을 만들어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고, 반면에 다른 민족들은 그 땅에서 여전히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가치관의 차이' 때문입니다. 알라신이 저주한 땅이라고 믿는 가치관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땅이라고 믿는 가치관이 두 가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행동과 삶을 지배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입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운명이 바뀝니다. 가치관에 따라 인생을 얼마든지 축복으로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저주스러운 인생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두 가지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땅을 보았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가나안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땅은 우리가 점령할 수 없다"는 가치관, 그리고 "이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신 땅이다"라고 하는 가치관.

여러분,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성도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가치관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가,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졸업예배로 드립니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졸업과 함께 상급학교로 진학하기도 하고, 사회로 진출하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어떤 가치관으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축복된 인생이 될 수도 있고,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 놓여진 삶의 현장이 축복의 땅이 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반응하며 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 정탐꾼의 절망적인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1절로 3절에 보면 애굽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1330절에 보면,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 있는 말을 합니다. 왜입니까? 믿음의 사람은 할 수 있다는 가치관으로 변화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정신,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 정신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믿음의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성경은 부정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도록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모든 사건에 반응할 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생각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생각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 벤쿠버 동계올림픽 만미터 스피드 스케이트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 선수... 그는 작년 4월 쇼트트랙 대표팀 선발전에서 탈락했습니다. 벤쿠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게 되자 모든 훈련을 중단하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도 피하고 다니던 교회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부모가 말도 붙이지 못할 정도로 절망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예배드리며 "하나님, 연약한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새 힘을 주옵소서통곡하며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때 마음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할 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곤 스피드 스케이트로 종목을 바꿔 맹연습에 돌입했습니다. 결국 그는 작년 10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장거리 대표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방황에서 영광을 얻는 자가 된 것입니다. 부정적인 상황이었지만 긍정의 가치관으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 그의 태도는 전 세계인 축제, 올림픽에서 금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하고 복되게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창조적 능력과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가치관 때문에 미래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배운 것이 짧고, 나는 자본도 배경도 없다고, 나는 건강이 나쁘다고... 이렇게 부정적인 가치관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가능성을 사장시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고, 긍정적인 사람은 긍정의 결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새학기가 시작되고 여러 가지 새로운 환경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자신과 싸워야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도 해야 합니다. 때로는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 있든지 모든 일에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자화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정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신앙관으로 반응하며 살라.

 

10명의 정탐꾼이 부정적인 보고를 한 이유가 뭡니까?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 밖에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향해 스스로 메뚜기와 같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메뚜기가 어떻게 장대한 거인과 싸울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메뚜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본문 9절에 보세요. "그들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심지어는 장대한 아낙 자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자기들 먹이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강한 믿음이 어디서 왔느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신앙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 말씀을 굳게 붙잡았고, 그래서 모든 일에서 자신감과 용기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힘이요 믿음의 힘입니다.

옛말에 '근묵자흑, 근주자적'이란 말이 있습니다.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검어지고, 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붉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영혼이 두려움을 이기고,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동행하느냐? 말씀과 기도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를 타협하거나 신앙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장대한 아낙자손이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우리 믿음을 위협하기도 하고 넘어지게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분명한 신앙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고난을 이겨낼 수 있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엄청난 고난과 위기 앞에서도 꿈을 향해 도전하지 않습니까?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얼마나 큰 복을 받았습니까? 요셉이 보디발 집에 가면 보디발이 복을 받았고, 감옥에 가면 그곳이 복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또한 애굽이 7년 기근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요셉 때문이었습니다. 왜입니까?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한 가정 운명이 바뀌고 한 나라 운명이 바뀝니다. 건강한 가정과 나라를 위해서는 많은 지도자들이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영적인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셔서 여러분 영혼이 강건하고 능력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신앙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때문에 가정도 학교도 복을 받고, 가는 곳마다 축복의 땅이 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자존감으로 반응하며 살라.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가나안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는 가나안땅을 점령할 수 있다"고 담대히 선포한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소속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 아는 것이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소속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소속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그런 외적인 행위 이전에 소속, 신분의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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