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사순절과 하나님 사랑(마가복음 14 : 3-9)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5,950회 작성일 2016-05-17 13:56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밴드 주소복사

본문

2016.3.6.주일낮예배

사순절과 하나님 사랑  마가복음 14 : 3-9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사랑은 긍휼입니다. 사랑은 능력입니다. 사랑은 축복입니다. 사랑은 소중한 것입니다. 사랑만 있으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이 되고, 어떤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그곳이 천국이 됩니다.

본문에 보면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의 인정을 받고 영원히 복을 받은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 집에서 식사하실 때 일입니다. 한 여자가 와서 아주 값비싼 향유를 주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그러자 이를 보고 있던 제자들은 귀한 향유를 허비한다고 책망합니다. 사실 이 나드향 한 옥합은 당시 돈으로 따지면 삼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가치입니다. 이 금액은 당시 노동자가 일 년을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액수로 적은 돈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불평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주님은 이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본문 9)

사순절,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이 여인이 행한 일을 전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순간까지 그의 행함은 영원한 기념비가 되어 찬란하게 빛이 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주님의 마음에 들고 주님 인정을 받게 한 것일까? 무엇이 오늘까지 기념이 되는 인생이 되게 한 것일까?

 

1. 계산하지 않는 사랑 때문입니다.

 

참 사랑은 계산이 아닙니다. 이해관계가 아닙니다. 참 사랑은 섬김이며 희생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지불하고도 낭비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 어른으로 성장시키기까지 그 일을 계산하고 따진다면 결코 해낼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사랑하는 의미로만 성립되는 것이지, 이해타산을 가리는 계산적인 행위로는 불가능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해관계로만 보셨다면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쏟으신 사랑의 가치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계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그 사랑이 들어가는 곳마다 구원의 역사, 위로와 평화와 소망과 천국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사랑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구원해주시고, 죽은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주시고 영생의 복을 주신 은혜와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계산하지 않고 옥합을 깰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 이웃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이해타산을 앞세워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까? 그래서 관계가 무너지고 갈등하고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그곳에 예수 사랑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사순절, 황금의 논리가 아닌 주님 은총의 논리로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순절의 영성입니다. 그때 우리 인생은 성공적인 인생, 주님께 기억되는 인생,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행복을 안겨주는 인생으로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을 다한 사랑 때문입니다.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본문 3) 나드 향유 한 옥합, 그것은 마리아에게 있어 가장 값지고 귀중한 것입니다. 그 옥합을 깨뜨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어드린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본문 6) “그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본문 8)

여인은 가장 좋은 것을 최선을 다해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주님 십자가 길을 준비한 것입니다. 주님 복음 사역에 동참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마음을 아시고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참 사랑은 낮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고귀한 것이요 최고를 드리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22:37)

사순절, 전부를 내어주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 힘을 다하면 그곳에 주님의 향기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주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3. 사람들의 책망을 뛰어넘는 사랑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본문 4-5)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12:4-5)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우리 사랑과 섬김에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오해와 비난, 그리고 분노와 책망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랑과 섬김은 거기서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노아는 말씀에 순종하여 120년 동안 배를 만듭니다. 그때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조롱과 비난을 받았을 것입니다. 노아를 한심하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다 순종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람들의 비난과 책망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마리아는 비난과 책망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은 신앙으로 주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면, 사람들의 비난과 책망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2세기 디오그네터스 서신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했지만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모든 것에 풍성했다. 그들은 학대당했지만 학대하는 사람들을 축복했다. 선행을 베풀었지만 행악자로 처벌받았다. 처벌받는 가운데 새 생명을 얻고 기뻐했다

사순절, 비록 주변의 비난과 책망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가정과 교회, 일터에서의 삶이 빛과 소금이 되어 주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진정으로 기쁘게 한 사람은 절대적인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온 마리아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향기를 진동할 수 있는 사람, 곧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계산하지 않는 사랑의 사람, 나의 모든 것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드릴 수 있는 사랑의 사람, 그리고 주변의 비난과 책망도 뛰어넘는 사랑의 사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마리아와 같은 사랑을 통해 주님 복음 사역에 동참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고 기념비 세우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