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무엇이 안식하게 하는가? (마태복음 11 : 28-30)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065회 작성일 2015-11-1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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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8.주일낮예배

무엇이 안식하게 하는가? 마태복음 11 : 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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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스포츠에는 세계적인 찬사를 받는 팀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 모여 있는 팀이라고 해도, 결국 그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감독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훌륭한 감독 아래서 훌륭한 팀이 나오고, 실력 있는 선수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온 인류 감독이 되십니다. 주님은 나는 선한목자라고 하셨습니다. 내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지도를 받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107:10) 우리가 사망의 그늘에 매이는 것은 주님의 코치를 받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피곤을 호소합니다. 마음이 피곤하고 정신이 피곤하고 몸이 피곤하고 영혼이 피곤합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모두다 피곤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피곤한 인생을 살아갑니까? 주님을 내 인생의 감독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코치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떠난 사람들의 특징은 안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왜 안식할 수 있는 것인가?

 

1.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이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시작이고 근원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것이 바로에게서 온다고 세뇌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로를 떠나서는 안식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며 살도록 광야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14:14) 구름이 발행하면 성막을 거두고 이동해야 합니다. 구름이 멈추면 장막을 쳐야 합니다. 어느 것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훈련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코치를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하루하루 거두어 먹는 훈련을 통해 드디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너희들은 바로의 백성, 세상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백성임을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를 통해 세상에 매인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매인 인생, 하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으로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지금 광야를 걷고 있습니까? 광야의 삶이 피곤하고 힘이 드십니까? 우리 영혼의 감독이신 주님을 인정하며 주님의 싸인 대로, 주님께서 명령하시고 지시하시고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안식이 시작됩니다.

 

2. 하나님의 방식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면 어느 날 갑자기 생활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현재 내가 처한 환경과 처지는 그대로 있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내가 예수를 알면서 생각의 기준이 바뀌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환경에 따라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적으로는 직업이 변변치 못하고 초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늘 실패하고, 의심하고, 후퇴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자 그들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패배의식이 사라지고 용기와 담대함이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용기 있게 나아가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환경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생각과 사고가 하나님의 방법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화상을 갖게 되고 그 자화상이 그때부터 내 인생과 미래를 디자인하여 나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감독이 되시면, 주님의 코치를 받으면, 생각의 기준이 바뀌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믿음의 가치로 생각하고 해석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때 환경을 초월해서 감사하는 인생, 환경을 초월해서 승리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삶에 기쁨이 찾아오고, 자유와 평강과 안식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3. 긍정의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환경이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열두 명 정탐꾼은 모두 같은 것을 보았지만 그들의 시야, 생각, 기준은 서로 달랐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보고를 했고, 서로 다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결국 긍정의 믿음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은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나머지 열 명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부정적인 사고에 기준을 삼으면 나타나는 현실이나 미래가 다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것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믿음의 눈으로 기준을 삼으면 지극히 소망적인 환경이 내 앞에 펼쳐지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지고 있는 현실의 짐들이 가볍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깊이 알고 예수님의 지도를 받게 되면 믿음의 눈이 뜨이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가능성을 보게 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어려운 현실을 긍정적인 환경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이 확신이 믿음의 자산입니다. 이렇게 확신하는 사람은 기쁨과 행복이 넘치고 현실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무거운 짐들이 가볍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늘 그를 지배합니다. 그 짐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주는 멍에를 메라, 내가 주는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시며 강권하여 부르시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긍정의 믿음이 여러분을 지배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안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은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아무쪼록 우리 인생의 감독이신 주님 안에서 참 자유와 안식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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