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7. 주일낮예배 "믿음으로 승부하라"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604회 작성일 2011-12-08 15:37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09. 6. 7. 주일낮예배믿음으로 승부하라 창세기 6 : 9-22의사 해멀린이라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자기는 예수를 위해 바보가 되기로 작정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40평생을 나만 위해 살았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보자, 그래서 나는 바보같은 일을 벌이기를 시작했다“ 그 분이 바보같이 일을 벌인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재산을 털어서 방황하는 10대를 위해 센터를 건립하고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둘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진료소를 열었습니다. 셋째는 더 많은 시간을 선교사역에 동참하다가 마침내는 병원 문을 닫고 의료선교사가 되어 하와이로 떠난 것입니다. 그는 처음 선교를 시작할 때는 혹시 그곳에 가서 죽지 않을까, 가난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 비전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열심히 섬기고 봉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뜻이기에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위해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전 재산을 바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문에도 하나님을 위해 바보처럼 산 사람이 나옵니다. 노아입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극도로 타락한 세상이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쾌락과 충족을 위해 살던 시대입니다. 그 시대가 얼마나 타락했던지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했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슬퍼하시고, 근심하셨다고 했습니다. 마치 자식 때문에 속을 썩는 부모처럼 슬퍼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당신이 스스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다르게 살았습니다. 그는 의롭고 완전하게 살았으며, 하나님 뜻을 위해 자기를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다르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이 분명한 삶,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죄와 싸워 승리하는 삶,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삶,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이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고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우리가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 많이 한다고 놀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다르게 살 때 불편해 하면서도 충격을 받는다고 하는 거... 물론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감동하시고 세상도 감동할 만한 삶에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그런 시대를 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노아가 시대 흐름을 이기기까지 그가 취했던 믿음에 승부수는 무엇이었는가? 오늘 우리도 노아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노아처럼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아무쪼록 노아의 삶이 여러분 삶의 방식이 되셔서 하나님께서 감동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노아는 믿음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행위가 하나님 보실 때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도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약합니다.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자기를 이길 수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여기서 의인이라는 말은 윤리적 차원에서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의’라는 말은 관계적인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는 것을 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의인이었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든지 윤리적으로 완벽하다는 것보다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노아는 죄의 편에 서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서 의로운 삶을 살기로,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했다는 말입니다. 그는 악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 흐름과 풍조를 따라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성도들이 교회 밖에 나가면 세상풍조와 흐름을 좇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의롭게 살려고 해보지만 세상을 역류하여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을 선택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공적인 삶을 사느냐 아니면 실패하는 삶을 사느냐가 결정됩니다. 순간의 선택이 우리 삶이 되고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소유가 증가하여 함께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분가를 제안합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 이때 롯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선택합니다. 롯이 선택한 곳은 죄악이 관영한 곳이었지만 물 좋고 기름진 요단들이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물질이 그를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롯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물질도 잃고 가족도 잃고 하나님도 잃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5절에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할렐루야!아브라함이 조카에게 우선권을 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롯이 떠난 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보라, 보이는 땅을 다 네게 주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내가 선택했다고 다 내 것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내 것이 된다고 하는 거,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세상논리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논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왜냐? 하나님을 선택하면 모든 것이 더하여지는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렐루야!룻기에 보면 룻과 오르바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둘 다 이방여인으로 유대인 가정에 시집을 왔습니다. 그런데 시집온 지 얼마 안되어 둘 다 남편을 잃었습니다. 이 때 시어머니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그들 민족인 모압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합니다. 그러자 큰 며느리 오르바는 시모를 버리고 모압 땅으로 돌아갔고, 룻은 나오미를 끝까지 따라갑니다.오르바는 자기 민족 모압을 선택했고 하나님 대신 모압 신을 선택했습니다. 어찌 보면 오르바 선택이 인간적으로 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희망도 없는 어머니를 따르기보다 새 남편을 찾아 희망을 찾아 떠난 것은 인간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하나님을 버리는 세상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서는 성경이 더 이상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그러나 룻은 하나님을 선택한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룻의 선택은 미련한 선택이었고 희망 없는 미래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룻의 인생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룻은 훗날 다윗에 증조할머니가 되는 영광을 얻었고, 그리고 그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 편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선택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인 삶을 선택하기보다 교회중심의 삶을 선택하고, 이 땅에서 잘되는 삶보다 천국에서 잘되는 영생의 삶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내 욕심을 선택하기보다 하나님 영광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승리하고 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하는 거, 아무쪼록 세상적으로는 부족하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세상을 넉넉하게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선택하는 삶이 노아의 삶의 방식이었더라" 할렐루야!둘째, 노아는 믿음으로 모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모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축복을 위해 모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선택이라면 그 선택은 결국 모험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노아가 하나님 명령을 따라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 방주에 크기는 길이가 3백 규빗, 넓이가 오십 규빗, 높이가 삼십 규빗입니다. 현재로 보면 웬만한 운동장보다 더 큰 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큰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지만 일꾼을 붙여주신 것도, 물질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지 명령만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명령만 하신다...” 얼마나 큰 은혜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일꾼을 붙여주시지도, 물질을 주시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 거, 단지 명령만 하십니다.그런데도 노아가 순종합니다. 순종하기 위해 자기 재산과 전 인생을 거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세상말로 바보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 안에서 거룩한 모험을 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런 노아를 비웃고 조롱했을 겁니다. 그러나 노아가 모험을 한 결과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홍수심판을 면하게 되었고, 노아는 인류 두번째 시조가 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위해 모험을 한 신앙의 거장들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 말씀만 믿고 자기 고향을 떠나는 모험을 했고,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80세 나이로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모험을 하여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모욕하는 거인 골리앗을 상대로 모험을 했고, 결국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이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궁의 법도를 무시하고 왕에게 나아갑니다. 그때 자신도 살고 민족도 살고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게 되었습니다.마가복음 2장에 보면 중풍병자가 나옵니다. 그 중풍병자는 사람들에게 들려져 예수님을 찾아갔지만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께 더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의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 내려가는 모험을 합니다. 결국 예수님으로부터 구원과 치유의 복을 받았습니다. 지붕을 뚫는 모험이 기적을 불러온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먼 곳에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성내에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각오로 성내로 들어와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결국 고침 받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들이 모험하지 않고 운명으로 받아들였더라면 치유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런 용기를 가지고 모험을 하라고 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크든 작든 여러 형태의 일을 만납니다. 때때로 산을 넘어야 할 때도 있고 터널을 지나기도 하고 강을 건너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위해 여러분 삶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모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나를 던져 모험할 때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부흥사 지망생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로 하여금 아브라함 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아브라함같이 되고 싶으냐?, 그러면 아들을 바칠 수 있느냐?” 듣고 보니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나를 모세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모든 부귀영화를 버릴 수 있느냐” 그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니엘 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음성이 들려옵니다. “네가 사자굴 속에 들어갈 수 있느냐” 그것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신앙에는 반드시 희생이 필요하고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명령만 하십니다. 그 명령에 내가 어떤 자세로 믿고 나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여러분, 하나님을 위해 믿음으로 모험하고 도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부천에 있는 어느 교회 권사님 이야기입니다. 이 권사님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집도 넘어가고 온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수중에는 500만원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 것인가? 고민합니다. 그러다가 작은 가게를 얻어 칼국수 집이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곤 알아보러 다녔습니다.그런데 이 권사님 마음에 자꾸만 교회 건축헌금을 하라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그때 교회 건축이 어려운 상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심을 하고는 건축헌금을 드렸다고 합니다. 이제 살 길이 없는 두 부부는 날마다 교회에 와서 건축 일도 돕고, 교회 청소도 하고, 전도도 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데 핸드폰 케이스가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도안을 해서 아는 사람과 합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박이 났습니다. 당시 시중에 나온 핸드폰 케이스는 다 그분이 만든 것이라는 겁니다. 결국 이것을 계기로 사업을 크게 일으켰고,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일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그는 고백합니다. "믿음으로 모험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하셨다고..."여러분, 하나님은 믿음으로 모험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하나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과감하게 모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고 노아와 같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모험하는 삶이 노아의 삶의 방식이었더라" 할렐루야!셋째, 노아는 믿음으로 초지일관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쉬지 않아야 합니다. 고난이 찾아오고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초지일관하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 인정받게 된다고 하는 거,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배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배도 그냥 배가 아니고 운동장보다 더 큰 배입니다. 거기다가 산꼭대기에 가서 만들라고 하십니다. 거기다가 배를 만드는 기간이 120년이나 됩니다. 이것이 납득이 가는 일입니까. 그러나 노아는 그 명령을 받고 배를 만듭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조롱하고 비웃었겠습니까?여러분,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전적인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에 노아 혼자서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조롱과 비웃음에도 믿음으로 초지일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에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라는 절대 믿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믿음은 이방나라에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증명합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정복한 것입니다.여러분, 오늘은 전적인 믿음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노아와 같이 내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내 계산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에 아멘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의 절대믿음, 초지일관하는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스펄젼 목사님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절대 믿음을 갖는 것이다. 계산은 하나님이 하신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환경에도 계산하지 않고 믿음으로 초지일관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 죄악된 세상을 이기는 승부수가 된다고 하는 거,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은 초지일관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3년 동안이나 주님과 동거동락했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께서 돌아가신 후 주님 가르침을 다 버리고 자기들 삶의 자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형편없는 제자들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가십니다. 특히 베드로에게는 3번이나 '네가 날 사랑하느냐?' 고 물으시면서 그에게 복음 증거의 사명을 부여해 주십니다. 주님을 배반한 제자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끝까지 양육하셨고 그들을 믿어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뜻이었고 그것이 복음을 위해 옳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자들은 위대한 사도가 되어 전 세계를 뒤흔드는 위대한 복음증거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져서 기독교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초지일관하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의 기복이 얼마나 심한지 모릅니다. 너무 사랑해서 헤어지면 못살 것 같던 사람도 한동안 지나면 다 잊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갑니다. 금방 좋다가도 금방 싫어집니다.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어제 믿음이 아주 좋았는가 하면 오늘 큰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기쁨이 없고, 삶의 평안이 없고, 늘 무기력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노아처럼 큰 믿음주셔서 초지일관하는 신앙인이 되게 해달라고, 예수님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뜻이라면 인내하며 초지일관할 수 있는 넉넉한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신안 앞바다 섬에서는 호파 농사가 주 농사라고 합니다. 어느 장로님이 그곳에서 호파를 재배합니다. 재배해 놓으면 도시 사업가들이 와서 밭떼기로 사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장로님은 교회를 짓는데 헌금해야 하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적기인데도 팔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몇 일후 값이 1/10까지 폭락했습니다. 그러자 이분이 너무 사람들 보기에 장로가 욕심쟁이라고 욕할까 봐서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집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호파농사를 망쳐 놓았습니다. 그런데 신안 섬마을에는 날씨가 온전해서 호파농사가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이 호파 값이 비싸져서 전보다 두 배를 더 받고 팔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거,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그 삶을 책임져 주신다고 하는 거,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조금 상황이 어렵다고 조금 현실적인 문제가 생겼다고 믿음생활을 이탈하거나 신앙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문화와 풍조가 우리 삶을 아무리 뒤흔든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믿음으로 초지일관하셔서 천국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초지일관하는 삶이 노아의 삶의 방식이었더라" 할렐루야!말씀을 마칩니다.랄프 왈도 에머슨은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지 말고 대신 길이 없는 곳으로 가라, 그리고 자취를 남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로 하여금 이 세상에 그런 발자취를 남기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불러내셔서 그 길을 가게 하시고 그런 발자취를 남기라고 하십니다. 그 발자취는 바른 선택에서 주어지고, 신앙의 모험생활에서, 초지일관하는 신앙 행동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노아를 통해 믿음생활이 무엇인가 배우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노아처럼 믿음으로 선택하고, 믿음으로 모험하고, 믿음으로 초지일관하셔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죄악이 관영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확장하는 포도원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2009.06.14. 주일낮예배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11.12.08 다음글2009.05.31. 주일낮예배 "사람은 언제 소망을 잃는가?"11.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