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 (디도서 2 : 11-14)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6,747회 작성일 2015-07-06 14:10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5.4.19.주일낮예배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 디도서 2 : 11~-14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구원을 선포하며 살아야 합니다. 받은 은혜를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구원과 은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 위해 영적으로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방향에 대해 말씀합니다. 구원을 누리고 은혜를 지키는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무엇인가? 첫째. 자신과의 관계에서 신중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방향은 신중함에 있습니다.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12) 신중함이란 자제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자제력을 가졌다는 말이며, 그러므로 신중함은 자신과의 관계에 해당되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입니다. 사람들이 겪는 대부분의 불행은 자제력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감정이나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할 때, 분노조절장애 등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미국과 우리나라 사람의 위기 관리능력에 대한 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기준을 7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비교했는데, 여러 항목에서 한국인과 미국인은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인과 비교해서 부족한 부분이 감정통제력이라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흥분하고 쉽게 분노하고 쉽게 절망하는 등 자기통제가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관리를 잘해야 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느니라”(잠16:32) 아무리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신중하지 못하고 자제력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됩니다. 성공한 것 같은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실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명예욕, 권력욕, 소유욕 등 욕망을 조절하지 못해 실패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매주 한 번씩 안식일을 가졌는데, 그날 3가지를 한다고 합니다. 뒤를 보고, 위를 보고, 앞을 본다는 겁니다. 이는 과거를 깊이 반성하고, 위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 영혼은 얼마나 건강한가를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조금 떨어져서 자기 영혼을 점검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기를 다스리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이른 아침 조용히 하나님과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영적, 육체적 에너지를 재충전하신 것입니다. 군중들의 박수갈채에도 흥분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에게 배신당하실 때도 침착하셨습니다. 십자가로 끌려가실 때도 온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내면세계가 그만큼 관리가 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자기 관리 영성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망들을 넉넉히 제어할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자기와 힘써 싸워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방향은 의로움에 있습니다.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12) 의롭다는 말은 정해진 규범이나 법을 지키며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의’는 율법을 잘 지키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공동체의 덕을 해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의로움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해당되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어둡고 혼란스럽습니다. 곳곳에서 편법과 불법이 난무합니다. 이는 의로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 이 말씀은 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공평하고 바르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공의와 정의를 온 나라에 흘려보내라는 것입니다. 성경 인물 중에 다니엘은 의롭게 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다리오가 바사 왕이 됩니다. 그러면서 120명의 고위 관리를 한꺼번에 교체하고, 그 위에 총리 세 명을 두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세 총리 중 하나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지도적 위치에 다니엘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고발할 근거를 찾습니다. 하지만 아무 근거나 허물도 찾지 못합니다.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시간이 지나면 허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달랐습니다. 정적들이 함정을 파고 다니엘을 모함하면 할수록 그의 성실성과 정직성이 더 돋보이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입니다. 이런 정직함과 의로움이 세상에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성경적인 방법, 신앙의 정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타협하거나 편법에 흔들리거나 동화되지 말고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움으로 인해 이 시대 어둠을 몰아내고, 위험에서 건져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가 있는 곳에 공의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치유를, 분열이 있는 곳에 평화를 임하게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성령의 도우심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셔서 나와 내 이웃, 이 민족을 평안한 길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건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은 경건함에 있습니다.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12) 경건하다는 말은 ‘존경한다’라는 말입니다. 경건은 마음에 하나님으로 가득한 상태, 온 삶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즉 경건함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입니다. 다니엘 3장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가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왕의 조서가 발표됐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절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왕이 타일러도 보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한번만 절하고 나서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않는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분명합니다. 왕은 세상 어떤 권력도 함부로 덤비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 앞에서 그들은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이상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단3:16).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목숨처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 내시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낼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8) 이들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계획을 관철시키고 우리의 요구를 응답받는 게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계획 앞에 우리가 설득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를 포기할 수 있는 게 신앙입니다. 이것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을 존귀케 하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열왕기상하가 있습니다. 열왕기서는 왕들에 대해 기록할 때, ‘이 왕은 이러하였다’라고 평가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평가 기준은 그가 얼마나 영토를 넓혔느냐, 그가 얼마나 많은 건물을 지었느냐, 그가 얼마나 여러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떠하였느냐?” 그것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경건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경건의 영성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늘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자신과의 관계에서 신중하며, 이웃과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의로운 행실을 드러내며,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절대적으로 신앙하는 경건한 믿음의 삶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성도가 살아야 할 신앙과 삶의 방향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물고기가 역류하는 것처럼 계속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고, 세상과 싸우는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지키고, 받은 은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아무쪼록 신중하며, 의로우며, 경건함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하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 1 : 11-19) 15.07.06 다음글거기서 나를 보리라 (마태복음 28 : 10-20)1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