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정한 주인은? (로마서 14:7-8, 에베소서 4:22-24)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6,782회 작성일 2015-02-02 19:35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4.11.23.주일낮예배 나의 진정한 주인은? 로마서 14:7~-8, 에베소서 4:22-~24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사람은 주인을 잘 만나야 합니다. 누가 주인이 되는가에 따라 그 인생도 달라집니다. 짐승도 보면 주인을 잘 만나면 좋은 것으로 배불리 먹게 됩니다. 그러나 고약한 주인은 짐승을 부려먹을 줄만 알지 배려하지 못합니다. 주인을 잘 만나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중요한 것은 나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나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를 생각하면서 우리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 우리가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 ① 자기 자신이 주인인 사람/ 자기 자신이 주인임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나의 운명과 영혼까지 주장하는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되고 내 영혼의 선장이 될 때 그는 행복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명이 나의 것인 줄 알고 스스로를 함부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적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이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하고, 한없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결코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② 명예가 주인인 사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좌우편 자리에 누가 앉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자리다툼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좌편과 우편에 누가 앉는가는 중요치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그 자리는 언제든지 예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자리에 연연하게 될 때 상처와 아픔이 내 삶 속에 찾아옵니다. “내가 누군데, 나를 이렇게 대접하는가? 나를 이것 밖에 안보는가?”라고 하며 분노가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명예가 주인인 사람은 명예 때문에 인생을 허무하게 마칠 수밖에 없습니다. 명예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③ 물질이 주인인 사람/ 사람들은 물질이 넉넉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이 물질의 양에 비례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물론 물질이 있음으로 편리하긴 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해결해 줄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물질 때문에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발람은 선지자였지만 물질에 눈이 어두워져 저주받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 때문에 성령을 속이는 죄를 범하고 저주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물질 속성상 잘 다스리면 물질이 충성스러운 종이 됩니다. 그러나 잘못 다스리면 악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물질은 다스림의 대상이지, 결코 믿음과 섬김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질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④ 마음에 상처가 주인인 사람/ 마음의 상처를 빨리 치료하지 못해서 그것에 포로가 되어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준 상처, 믿었던 누군가의 배신 등 상처를 끌어안고 분노의 감정을 품은 채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삶 전체가 불행하고,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됩니다. 듀크대학 정신과 레드포드 윌리암스 교수는 ‘분노가 사람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분노와 마음의 상처에 묶여 산다면, 결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받은 상처를 주인으로 삼고 살지는 않는가? 치료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라마나욧에서 치료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라마나욧은 오늘날 교회를 말합니다. 이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치료와 회복을 경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은혜로 치료받아 자유한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가? 오직 한분, 우리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에 보면 주님이 주인 된 사람의 삶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있었던 종과 주인의 관계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종은 주인의 재산이었습니다. 주인은 자기 종을 내다 팔수도 있고, 사올 수도 있었습니다. 주인이 종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주인 되신 예수님께 귀속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소유요, 주님께 전적으로 매여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면 삶의 모든 것에서 우리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본문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의 삶을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②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그의 인생관이 바뀐 사람입니다. 그는 사는 목적과 목표가 오직 주님이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주님이 주인 되어 사는 삶입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뜻이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② 나를 위해 죽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해 죽는 사람/ 바울은 죽을 때 자기 목적 때문에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주를 위해 죽었습니다. 복음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를 위해 죽습니다. 자기 일 때문에 죽습니다. 자기 일만 하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를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도 자기가 아니라 오직 주님을 위해 죽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떻게 죽게 될 것인가? 아니 죽기 전 지금의 평안한 가운데서도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순교에는 죽는 순교도 있지만, 살아서 하는 순교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는 하루하루를 지금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하는 신앙으로 산 것입니다. 우리도 순교신앙으로 예수님을 위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③ 사나 죽으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 이는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몸도 마음도 물질도 주님의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신앙생활 교회생활 하는 사람은 그 신앙 자체가 천국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한 삶은 이 땅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한 삶은 죽음을 넘어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삶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 삶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아니면 애써 피하려고 합니다.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죽음이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여는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이 고통이 되고 갈등을 겪으며 산다 하더라도 인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린다는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으로 소망가운데 인내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존 템플턴은 “습관이란 학습과 연습 과정을 거쳐 굳어지게 된다. 당신이 습관의 주인이 되면 습관은 당신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충직한 하인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습관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 사는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변화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옛 사람의 행실을 끊습니다. 마음에 기쁨과 소망이 넘치고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합니다. 아무쪼록 “나의 진정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늘 마음에 새기며 그 은혜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빛으로 오신 예수 (요한복음 1 : 4-5) 15.02.02 다음글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 (시편 100 : 1-5)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