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유턴하라 (사도행전 9 : 1-9)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464회 작성일 2014-09-16 12:57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4.7.27.주일낮예배 복음으로 유턴하라 사도행전 9 : 1~-9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전환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계기나 사건을 말합니다. 곤충의 세계를 보면 곤충들은 일생동안 몇 번씩 변화를 겪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애벌레가 변화해서 곤충이 되고, 이 곤충이 몇 번씩 껍질을 벗다가 나중에는 나방이 되고, 나비가 되고, 매미가 됩니다. 처음 모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곤충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비스런 삶을 살아갑니다. 곤충들도 이렇게 변화하고 몇 번씩 거듭나는 동안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생 동안 큰 전환점을 몇 차례 겪게 됩니다. 그 전환점이 성숙하게 만들고, 한 단계 더 발전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본문의 사울이 그렇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그는 자기 판단대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데 앞장선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사건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사울이 바울로, 박해자가 복음 전도자로, 죽이던 자가 살리는 자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 나은 삶으로 갈 수 있는 것인가? 첫째,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만남으로 시작해서 만남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울은 세계 최초 기독교 박해 사건 때 앞장을 선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스데반을 향해 돌팔매질 하도록 증인을 선 사람이기도 합니다. 당시 초대교회 사도들을 제외하고 성도들은 모두 예루살렘에서 흩어져 숨어 있었습니다. 이때 사울은 숨어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메섹으로 도망쳤다는 정보를 듣고는 다메섹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다메섹 가까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는 땅에 엎드러졌고,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그는 두려움에 싸여 묻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자신이 부정하던 주님, 3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이 사울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 사건은 사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박해자가 복음 전파자로 유턴하게 된 것입니다. 사울의 전환은 단순한 종교적 개종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에 순복한 순교적 결단입니다. 세상 부귀와 영화,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며, 회심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된 인생, 성장하는 인생이 되려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변화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변화되는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누구나 사울이 바울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아무쪼록 예수님과의 만남이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고 승리로 이끄는 지름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영적 지도자의 지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받침목을 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뿌리를 든든히 내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돌아서면, 그 사람이 홀로 설 때까지 돌보는 손길이 필요합니다. 사울은 주님을 만난 후에 좋은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사울이 처음 만난 사람은 아나니아 라는 제자입니다. 주님은 아나니아를 가리켜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사실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 아나니아는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그때 사울은 눈먼 상태로 직가 거리에 있는 유다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아나니아는 말씀대로 사울을 찾아가 안수하고, 그를 품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나니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수를 하자, 눈의 비늘이 벗겨졌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고, 강건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멘토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웃시야 왕은 유다를 52년 동안 성공적으로 통치한 왕입니다. 그가 성공한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스가랴 선지자가 그의 옆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웃시야 왕에게 바로 전해주었습니다. 웃시야는 모든 일에 스가랴 선지자의 지도를 받아 늘 순종하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승리하는 비결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가 죽자, 웃시야는 자기 교만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지도를 더 이상 받지 않습니다. 결국 그 말년은 나병으로 고통을 받았고, 왕의 묘실에 들어가는 특권을 잃어버렸으며,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의 지도를 감사하시고, 기쁨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의 영적 지도를 통해 사울이 바울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는 영적 질서가 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가 있습니다. 그들의 영적 지도와 돌봄으로 믿음의 뿌리가 든든히 내려지고, 여러분의 신앙이 크게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복음 안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자신을 발견하고, 그래서 신앙의 세계를 알게 되면 그때 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사울은 스스로 율법적으로 흠이 없다고, 도덕적으로 예수 믿는 너희보다 내가 낫다고, 이만하면 내가 너희를 정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에서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교만한 이유는 자신을 보지 못해서입니다. 함부로 남을 정죄하는 이유도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을 보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교만한 사람었는지, 그래서 함부로 판단하고, 내 생각에 갇혀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정죄한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후,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니라”고 간증하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변화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깊은 내면을 보고, 그래서 주님 앞에서, 복음 앞에서 자아가 깨어지고, 속사람이 부서져야 합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동안 자기를 발견합니다. 그리고나서 깨지고 부서졌습니다. 그런 후에 20년 동안 원수로 지내던 형과 화해하게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3일 동안 회개를 통해 깨지고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니느웨로 보내셔서 구원의 복음을 외치게 하셨습니다. 탕자는 아버지 품을 떠나 방탕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돼지 쥐엄 열매를 먹어가며 내가 누구인지 깨닫고는 부서집니다. 그래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발견하고 깨지고 부서지는 아픔을 통해 새 인생을 맞이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누구인지 나를 발견하고, 깨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부서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사울 그대로 있지는 않습니까? 복음 안에서 깨지고 부서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군지 자기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울이 바울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삶의 내용이 분명해지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책임지시고, 인도해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을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살아가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전환점, 다메섹 도상의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으로 유턴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역사를 바꾼 사도 바울처럼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고, 여러분의 가정을 바꾸고, 여러분이 속한 이 사회를 바꾸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아버지의 마음 (누가복음 15 : 18-24) 14.09.16 다음글감사절과 축복 (출애굽기 34 : 21-24)14.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