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복음 16 : 13-17)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8,655회 작성일 2014-07-08 11:05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4.6.15.주일낮예배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복음 16 : 13~-17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오늘 우리는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세계도 그렇습니다. 신앙의 형태도 다양하고, 이단도 많습니다. 누가 옳은지, 어떤 신앙이 옳은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신앙의 분별력이 요구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때 어떻게 올바른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을 여행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이 주님을 세례 요한 같다고도 하고, 엘리야 같다고도 하고,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한 사람 같다고 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예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를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는 나를 누구라고 보느냐?” 주님은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들으시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고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른 신앙고백의 원칙은 무엇인가? 첫째, 성경이 근거가 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은 성경이 근거가 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신앙, 복된 신앙은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둔 성경적 신앙입니다. 성경대로 믿을 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 말씀 속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도 있습니다. 예수님 동정녀탄생이나 십자가 죽으심, 3일만에 부활하신 사건과 승천과 재림 등. 모두 이성적으로는 믿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영적인 도움이 없이는 믿기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임을 기억하며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을 근거로 해서 그 주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우리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 이해 범주 안에서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수는 이런 사람일 것이다” 생각하고는 자기 생각에 따라서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이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성인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윤리적인 예수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자기 생각대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 예수라면, 누가 예수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겠습니까? 윤리적인 예수를 위해 누가 순교를 하겠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환난과 핍박이 있었고,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다”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예수가 나의 주님이시다” 그래서 고난과 순교의 자리에서도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신앙고백이 분명할 때, 거기서 신앙의 힘이 나오고, 내 인생을 맡기게 되는 동기가 생기게 됩니다. 신앙고백은 성경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성령이 중심이 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은 성령이 중심이 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생활입니다. 물론 신앙에는 지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지만 영적인 감화가 없이는 신앙생활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령에 의한 신앙고백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성령께서 알게 하시고, 성령께서 고백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의지적이며 자의적인 고백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탁월해서도 아닙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그렇게 고백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구원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소망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이성과 지성으로, 의지와 지식으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고행과 수행으로 깨닫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움직여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끊임없이 감동하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쳐주셔서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예수 잘 믿는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고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평생을 절에 다니고, 절도 수없이 많이 지은 분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나면서 세상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999년 1월에는 세례를 받고 예수를 영접하게 됩니다. 본인이 그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합니다. 천하가 다 끝나는 것 같은 순간에, 자신이 붙잡을 것이 아무 것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때서야 예수님이 나의 구원이시고, 길이 되심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예수님만이 내 모든 짐과 문제를 맡아주시고,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감화를 주셔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은 성령이 중심이 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신앙적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은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성령에 감동되고 성경의 감화를 받아서 여러 세기 동안 고백해 온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신앙적, 신학적, 성경적인 면에서, 가장 잘 조화되고 권위 있는, 전승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해 갔습니다. 그러다가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를 향해 흩어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때 신앙으로 하나되고, 신앙적 전통을 지켜 나가기 위해 만든 조항이 사도신경입니다. 즉 사도신경의 기원은 처음 사도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또 그들로부터 고백되어져 온 것입니다. 이런 신앙고백은 시대가 지나면서 조금씩 첨가되어 404년 루피누스가 주석을 펴내면서 오늘날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조항들은 이단들로부터 순수한 신앙을 지킬 필요가 있을 때마다 내용이 첨가되기도 했고, 또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니케아 신조라든가, 콘스탄티노플 신조, 에베소 신조, 칼케돈 신조, 5차 6차 에큐메니칼 회의 등입니다. 이와 같은 논쟁을 거친 후 12세기경 서방교회 대표적인 공적인 신조로 정착하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배시간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①기독교 복음의 본질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②교회는 사도신경 신앙 고백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③사도신경은 공적인 신앙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신앙이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 중심의 바른 신앙으로 다져질 수 있습니다. 신앙 고백은 전통과 역사성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열매가 나타나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은 열매가 나타나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신앙을 고백하거나 교리를 이해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행위와 인격이 함께 드러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믿음이 있다고 고백할지라도 그 믿음이 삶으로 증거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 열매도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믿음과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서 안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행함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잘못된 믿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격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눈 덮인 벌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먼저 믿음의 사람이 된 우리는 후세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삶이 발자국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모습으로 비춰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공인의식이 필요합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빛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말 아래 숨겨진 등불이 아니라 세상 위에 높이 들려진 등불임을 잊지 맙시다. 신앙고백은 열매가 나타나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신앙의 분별력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누가 옳은지, 어떤 신앙이 옳은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데는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은 성경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성령이 중심이 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열매가 나타나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그 신앙고백이 참다운 고백이 될 수 있고, 능력이 나타나는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로마서 6 : 1-9) 14.07.08 다음글신앙과 성령 (사도행전 2 : 1-4)14.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