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사도행전 26 : 24-29)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506회 작성일 2013-09-2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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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9.8.주일낮예배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사도행전 26 : 24-29

자부심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교만이다. 자기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비굴이다. 그러나 자기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자부심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자부심은 곧 힘이고 용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정확하게 평가하면 실수하지 않고, 거짓되게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아주 소중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평가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를 다스리던 베스도 총독 앞에 끌려가 재판을 받습니다. 지금 바울은 피고자 신분입니다. 베스도 총독 한마디에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도 “내가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자리에 결박된 것 말고는 여러분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증거한 것입니다. 그 자리를 오히려 복음 전하는 자리가 되게 한 것입니다.

얼마나 당당하고 확고합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 정체성입니다. 적어도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사건이나 처지, 환경 앞에서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는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는가? 어떤 자부심이 있었기에,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오히려 당당할 수 있었는가?

첫째, 신분에 대한 자부심

이는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기 신분이 어떠하냐에 따라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가 하면, 낮은 자부심을 가지고 초라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자부심은 다른 사람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기준에 따른 자부심이 아닙니다. 바울은 다소에서 태어나 로마 시민권을 가진 특권계층의 사람입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을 터득한 사람. 유대사회가 인정해주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입니다. 흠잡을 데 없는 신분 계급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의 고백이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빌3장)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자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어떤 조건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고, 또 그렇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용기와 담대함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수없이 감옥에 가기도 하고, 풍랑을 만나기도 하고, 고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어떤 환경에도 비굴하거나 초라해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수의 몸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하는 자부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처지와 조건 앞에서도, 초라해지지 않고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신앙 양심에 대한 자부심

바울은 신앙 양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3:1을 보면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걸림돌이 없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도 바울은 죄수 몸으로 묶여 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떳떳하게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교만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스스로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다는 말입니다.

믿음과 양심은 수레바퀴와 같아서 서로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깨끗한 양심을 가질 수 없고, 또 깨끗한 양심 없이 믿음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참 믿음이 있는 곳에 어디든지 깨끗한 양심이 따라다닙니다. 양심은 우리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롬2:15) 또한 양심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기 원하실 때, 우리 양심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양심은 우리가 그릇된 길로 가려고 할 때는 경고해 줍니다.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재판할 때 양심의 경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은 무죄한 사람이라고 하는 경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경고를 무시해서 저주받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을 보세요. 그도 보디발 아내에게 유혹을 받을 때 신앙 양심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찌 악한 일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겠느냐고 하면서 유혹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셉과 함께 하시고 형통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양심은 이와 같이 소중한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 승리하게 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끗한 신앙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신앙과 삶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기에 양심을 지킬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교회를 가리켜 진리와 양심의 터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어떤 사건 앞에서도, 상황과 환경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열매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가 필요합니다. 아무쪼록 수준 높은 신앙양심에 대한 자부심으로 신앙생활 승리하시고, 성숙한 의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복음 전하는 삶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명에 대한 자부심

사도 바울은 사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자기를 복음 전도자로 부르시고 세워주셨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나를 부르신 이유, 다메섹 도상에서 나를 부르신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1:15) 그래서 바울은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사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죄인의 몸으로 묶여 있지만, 예수 십자가 사건과 부활과 승천을 전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20:24에 보면, 바울의 사명관이 나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전하는 일이라면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명을 생명보다 더 크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만큼 사명에 대한 자부심, 보람과 긍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있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피하지 않고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이 주신 길을 가는 것, 이것이 사명의 삶이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난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비굴하거나 초라해지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아무쪼록 사도 바울과 같이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당당하게 사명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고, 성도로서 가치를 드러내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도 사도 바울의 자부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 누가 뭐라고 해도 신앙양심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자부심,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증거되고 있다는 사명에 대한 자부심. 이 자부심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살 때 그리스도인의 가치가 있고,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가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사도 바울의 이 아름다운 모습이 여러분 인생 가운데 충만하게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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