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주,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20 : 19-21)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6,791회 작성일 2013-05-07 16:45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3.4.14.주일낮예배 평화의 주,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20 : 19-21 모든 사람은 평화를 원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참된 평화가 없습니다. 전쟁이 잠깐 그친 상태의 평화, 경제적인 궁핍이 사라진 상태나 아픈 몸이 나아서 찾아오는 평화, 이런 종류의 평화는 다 일시적인 평화입니다. 오직 영혼 깊은 곳에서 찾아오는 영속적인 평화, 그것이 참 평화요 진정한 평화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두려워합니다. 근심과 두려움, 긴장 속에 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셔서 하신 말씀이 뭡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화의 축원입니다. 그때 제자들의 근심, 염려, 두려움이 다 사라졌습니다. 주님은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잃어버린 평강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평안의 복을 받고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민족적인 평화가 회복되고, 가정도, 일터도 평안이 회복되는 복이 있어야 합니다. 1. 주님이 주시는 평안 예수님은 평안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평안’과 ‘세상이 주는 평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평안인가? 1) 절대적인 평안 세상이 주는 평안은 상대적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향하는 것으로, 힘의 평화, 부의 평화, 환경에 대한 평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이 있어야 평안한 사람은 물질이 없어지면 평안도 사라집니다. 명예나 권세가 있어야 평안한 사람은 명예나 권세가 사라지면 평안도 사라집니다. 환경이 좋을 때 평안함을 느끼지만 환경이 나빠지면 평안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평안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주님 주시는 평안은 어떤 평안입니까? 절대적인 평안, 영원한 평안입니다.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가면서도 원수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 그의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고 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평안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주님 주시는 영적 평안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며 찬양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세상 평안은 상대적 평안입니다. 금방 깨어지고, 조금 변화가 일어나면 근심하고 두려움에 빠지게 합니다. 이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근심 걱정 염려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 주시는 평안은 절대적 평안입니다.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고, 형편과 상태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마음의 평안과 자유가 있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평안을 소원하고 받고 누려야 합니다. 2) 마귀와 상관없는 평안 마귀는 죄가 있는 사람과 상관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주님 평안은 죄인에게 임할 수 없습니다. 왜 이 세상에 개인이나 가정, 국가나 사회에 평안이 없습니까?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질병이 있는 사람은 몸에 평안이 없는 것처럼 죄가 있는 사람은 그 영혼에 평안이 없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일 것이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이처럼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죄 때문에 갈등하고 분열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죄 때문에 육체가 망하고, 가정이 망하고, 사회와 국가와 민족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사함 받은 영혼은 어떻습니까? 그에게는 참 평안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나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 나를 끌어안아 주셨습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이 믿음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면 우리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평안이 우리 가정을 지배하고, 우리나라와 민족을 지배하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전쟁과 갈등과 두려움이 있어도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두렵게 하고 분열하게 하는 영이지만, 하나님의 영은 하나가 되게 하고, 평화하게 하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 복음화, 나라와 민족 복음화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의 영이 임할 때 이 땅에 전쟁 소식이 사라지고, 주님 주시는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성령과 보혈의 능력으로 죄에서 자유해지고, 주님 주시는 평화가 심령과 가정, 나라와 민족가운데 넘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문제를 극복하는 평안 주석가 바클레이는 세상 평안을 ‘문제를 도피하는 평화’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대로 덮어두고 피하면서 향유하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이런 평화는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가 아닙니다. 지금은 평화로운 것 같지만 결국에는 문제 앞에서 사라지고 마는 평화, 그것이 세상 평안입니다. 지금 물리적인 세계가 평화롭습니다. 비록 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다수 나라와 사람들이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비록 경제적 위기로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문제와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런 문제들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평안은 문제를 극복하는 평안입니다. 그러면 문제를 극복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문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문제를 이겨낸다는 말이 아닙니다. 비록 어려운 문제가 닥친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고통스러운 환경으로 바뀐다고 할지라도, ‘구원의 확신과 그 속에서 절대 평안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보면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의인도 일곱 번 넘어집니다. 의인도 고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의인일지라도 쓰러질 수는 있지만, 결론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뚝이는 아무리 넘어져도 반드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중심을 잡아주는 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쓰러졌다가도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힘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는 주님이 우리 중심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평안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평안은 어떤 평안입니까? 절대적인 평안, 마귀와 상관없는 평안, 문제를 극복하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이 우리 평안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어떤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비결 1) 주님과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이사야 48장 22절에 보면,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했습니다. 죄는 불안과 번민의 원인이 됩니다. 죄 때문에 고민과 두려움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과 막혀 있는 관계가 회복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과 막힌 담이 무너지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평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복이 평안입니다. 그때 개인의 평안도, 가정의 평안, 나라의 평안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군사적 긴장과 여러 가지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9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죄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죄까지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가정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 숨겨진 죄 문제를 회개해야 합니다. 나 개인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할 때 주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평화가 임합니다. 아무쪼록 죄를 회개함으로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평안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평안이 없습니까?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환경이 일시적으로 평안을 빼앗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안에 확실하게 거하면 환경에 매이지 않고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멀리보아야 합니다. 세상 삶에만 마음을 두고 당장 형편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무르는 곳이요,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아무쪼록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으로 평안을 소유하고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 중 하나가 화평의 열매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 심령은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께서 나를 다스려주시고 나를 조정하여 주옵소서’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평안이 찾아옵니다. 환경은 변한 게 없는데 모든 것이 평안입니다. 지금 이 땅은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갈등과 분열, 전쟁의 위협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사탄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평화가 오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때 이 땅에 전쟁의 소문이 그치고 진정한 평화가 강물처럼 넘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이 나라와 민족을 지배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평안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아무쪼록 성령 충만하셔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평안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평안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속에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다스리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을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통치하도록 맡기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사회를 예수님이 다스리도록 하고 있습니까? 이 나라 이 민족을 예수님께 맡기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한 세상에 어떤 풍파가 몰려와도 끄떡없습니다. 전쟁 소문이 그치지 않고 온갖 소란이 있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평화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 주님 주시는 참된 평화가 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이 나라와 민족 위에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주님 주시는 평화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세 가지 위대한 자원 (사도행전 2 : 43-47) 13.05.07 다음글믿음의 회복 (요한복음 20 : 24-29)13.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