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받으신 예수 (이사야 53 : 4 - 6)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275회 작성일 2013-04-02 12:26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3.3.24.주일낮예배(종려주일) 고난 받으신 예수 이사야 53 : 4 - 6 오늘은 종려주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외치며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했습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되는 주일이라고 해서 ‘고난주일’이라고도 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고난의 종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사장 뜰과 빌라도 재판장, 그리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셔야만 하셨는가? 예수님의 고난은 어떤 고난이었는가? 고난주간,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주님의 영성을 본받는 기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우리 구원을 위해 받으신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5) 죄는 뿌리이고 허물은 그 뿌리에서 나온 줄기요, 잎사귀요, 열매입니다. 죄라는 뿌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죄로 인해 허물 많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거짓말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도적질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무서운 적은 죄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과 인간관계를 갈라놓았습니다. 죄는 하나님 사랑에 대해 눈을 멀게 합니다. 우리 안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인인 인간은 스스로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는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로 가린다고 해서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죽옷을 입혀주신 것입니다. 죄 문제는 우리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보혈로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해 고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그 죄를 용서함으로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죄 문제로 고통당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친히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때문에 이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가 주는 은혜가 뭡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구원을 위해 고난 받으신 주님을 기억하며, 주님 십자가의 사랑을 힘써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 평화를 위해 받으신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고난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5)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막혀 있을 때는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 죄가 하나님과 관계를 가로막고 있으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악으로 막힌 담이 무너져야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해자로 이 세상에 오셨고, 친히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모든 두려움과 저주에서 해방되고, 평화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영이 우리 마음에 임하면 내 안에 평화가 임하고, 예수 영이 우리 가정에 들어오면 우리 가정에 천국이 임합니다. 우리 일터에 예수 영이 함께 하시면 그곳에 화목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이유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질, 건강, 의식주, 직장, 사업장 등 구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은 바로 평화입니다. 평안이 있을 때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은 평화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 받으신 주님을 기억하며 평안의 복을 받으시고, 가정과 일터, 학원에서 주님 평화를 실천함으로 주님 십자가 영성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 치유와 회복을 위해 받으신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 치유와 위로, 회복을 위해 받으신 고난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 마태복음 8장 17절에도 예수님이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상처를 치유하시고, 위로와 회복을 위해 고난당하셨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아프면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조차도 내 아픔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죽어가는 자식을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병을 대신 담당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저주를 대신해서, 우리 아픔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치유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고, 눈먼 자를 뜨게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믿음을 보시고, 귀신들린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주님 말씀이 있는 곳에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위로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신유 능력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로 괴로운 분이 있습니까? 육신의 질병으로 고난 받는 분이 있습니까? 인생의 여러 가지 답답한 문제 때문에 남모르게 눈물짓는 분이 계십니까?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피흘리신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예수님의 고난이 나를 위한 고난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고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질병을 치료해 주십니다. 우리 상처를 싸매주시고, 실패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 가난을 부요로 바꿔주십니다. 아무쪼록 우리 질병의 짐, 실패의 짐, 인생의 모든 짐을 지신 주님을 기억하며, 예수 안에서 승리자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죄 값을 치러주신 분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죄인이 의인이 되었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었으며, 하나님 자녀가 되고, 천국시민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근심과 염려, 두려움에서 건져주시고 영원한 평안의 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고통당하심으로 우리 질병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상처를 치유하시고, 아픔을 위로하시고, 실패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아무쪼록 고난주간,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십자가의 영성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부활신앙의 축복 (고린도전서 15 : 1-11) 13.05.07 다음글갈 등 (로마서 7 : 19 - 25)1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