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해 (마가복음 6 : 1-6)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366회 작성일 2013-04-02 12:01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3.2.17.주일낮예배 오 해 마가복음 6 : 1-6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것에 가치기준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얻으려고 애쓰지만, 가치 있는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가치를 모르고 오해한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30년을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사람들은 누구보다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장 과정, 가정 형편, 형제 관계, 목수로 일한 일 등. 그런데 어느 날 그 청년 예수가 선지자가 되어 그들 앞에 나타납니다. 그때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불신하고 배척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을 떠날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진리와 생명이 그들 앞에 있는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오해하고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고 시간마다 말씀해 주시는데,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내 방법대로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살펴봄으로 우리 신앙이 사순절과 함께 성숙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나사렛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오해했습니까? 1. 예수님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편견은 진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판단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기도 전에, 만나기도 전에 마음으로 결정하고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편견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편견은 오래갑니다. 한 번 가진 편견은 수정되기 어렵습니다. ②편견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않습니다. ③편견은 이유 없이 미워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을 편견의 눈으로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편견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3)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본 것이 아니라 마리아 아들로만 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보다, 외적인 인성만 보고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선지자가 아닌 가난한 목수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조롱하고, 배척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편견을 가지고 타인을 볼 때가 많습니다.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출신과 직업, 배경을 보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간에 오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편견은 어리석은 죄입니다. 들어온 복도 쏟아버리는 것이 편견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편견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도 먼저 복음을 받아야 될 특권을 받고, 큰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권을 편견 때문에 놓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편견은 없는가? 그리고 대인과의 관계에서 편견은 없는가? 점검하며 승리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영적인 눈이 닫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믿음의 눈으로 교회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영안으로 보지 않고는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으며,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내 곁에 해결책을 예비해 두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들은 영안의 눈이 닫혀 있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니 그 가르치는 것이 서기관보다 나았습니다. 병자를 고치는 것이 바리새인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감탄하고 그 신비에 놀랍니다(2).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신성과 권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저가 목수인데, 저가 배우지 못한 사람인데, 저가 마리아 아들인데”하고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맹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방 사람들도 그 빛을 보았습니다. 가나안 여자도, 이방인 백부장도 그 빛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과 한 동네에서 30년이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성도, 권능도 믿지 못한 것입니다. 눈이 어두우면 하나님의 세계,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고 육신에 속한 얘기만 하게 됩니다. 에서는 장자권은 보이지 않고 팥죽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장자권과 축복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사랑받는 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가나안 열 두 정탐군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지역을, 똑같이 정탐했습니다. 그런데 열 명은 불가능하다고 보고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눈에는 불가능만 것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열 명과 원망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막에서 장사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봅니다. 결국 가나안은 이 두 사람 때문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신앙인은 깊은 곳을 봐야 합니다. 높은 곳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 깊은 곳에서 나타납니다.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기초로 해서 봐야 하나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영적으로 어두웠기 때문에, 믿음에 근거한 눈, 말씀에 기초한 눈이 없었기 때문에, 받은 특권도 빼앗기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사순절, 믿음에 근거한 눈, 말씀에 기초한 눈으로 주님을 보고, 교회를 보고, 삶의 현장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지식이 신앙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와서 체험이 되고, 생활 속에서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지식은 아주 중요하지만 지식이 지식으로 있는 한 힘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머리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이 누구인지, 바울이 누구인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를 통해 신앙 성숙, 인격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지식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믿지 못한 지식으로 끝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에게 어떤 남다른 신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문제는 믿지 못한 것입니다. 끝내는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알기는 아는데 구세주로 믿지 못하고, 심판주로 믿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지식이 신앙이 되지 못하면 그 지식은 죽은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신앙이 변화가 없고, 힘이 없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최우선 순위로 복음을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받아들여 믿지를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이 신앙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 신앙이 체험이 되고, 그 체험이 간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화의 삶, 영화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순절 기간, 고난 받는 예수를 머리로만 믿지 말고, 마음으로 부딪쳐 만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사순절입니다. 혹시 나는 나사렛 사람은 아닌가?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사순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편견을 버리고, 영적으로 깨어 있으며, 지식이 신앙이 되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을 체험하며, 신앙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세상을 복되게 하라 (창세기 13 : 14-18) 13.04.02 다음글예루살렘에서 다시 시작하라 (에스라 7 : 6-10)1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