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예루살렘에서 다시 시작하라 (에스라 7 : 6-10)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480회 작성일 2013-04-0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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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13. 2. 10. 주일낮예배

예루살렘에서 다시 시작하라 에스라 7 : 6-10

본문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말씀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주변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결국 바벨론에 나라를 뺏기고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70년 만에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셨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그 성전을 중심으로 메시아를 기다릴 수 있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으로 다시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에서 다시 시작하는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1. 떠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결단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넓은 길로 갈 것인가? 좁은 길로 갈 것인가? 생명의 길로 갈 것인가? 사망의 길로 갈 것인가? 우리는 매 순간 선택과 결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스라는 강한 결단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9절,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이날 에스라는 유다사람 2천명을 이끌고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유다 백성들이 비로소 바벨론을 떠난 것입니다. 바벨론은 우상의 나라 상징이요 불신 세상을 대표하는 나라입니다. 즉 바벨론을 떠났다는 것은 세속에서 떠나고, 불신 생활에서, 좋지 못한 습관에서 떠났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바벨론에 그대로 있어서는 축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태어난 세대로 그곳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수천명을 데리고 돌아가는 일, 돌아간다고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힘들고 어려운 고난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떠나는 일에 승리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그래서 넓은 길을 버리고 좁은 길을 선택합니다. 사망의 길을 버리고 생명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에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애굽을 떠나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바벨론을 떠나야 예루살렘에 갈 수 있습니다.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 받으려면 돌 감람나무에서 끊어져야 됩니다. 세상을 초월해야 천국이 보이는 것입니다.

혹시 떠나야 할 곳에서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분은 없습니까? 정월 초하루 아침입니다. 새 날은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바벨론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앙생활을 해치고 죄악된 길로 떨어지게 하는 것은 담대하게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다시 시작하며 승리하는 2013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손으로 천지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선하신 손으로 인생을 붙드시며 천국까지 승리하게 하십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고백합니다.

에스라는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나서 5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입니다. 에스라는 그 길을 4개월 동안 걸어오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한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짐을 지고, 사막지대 낮에는 무더위로, 밤에는 추위로 싸워야 합니다. 그 길을 걸어오는 동안 수많은 위험에 부딪혔을 겁니다.

그런데 그 길을 4개월을 걸어서 수천명이나 되는 일행이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 때 행복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류 불행은 우리끼리, 우리 능력대로 살아보겠다는데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후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 없이 살겠다고 독립을 선언하고 살아보지만 결과는 언제나 불행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호세아왕 때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호세아는 대국 앗수르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한 결과 망하고 말았습니다. 남 유다도 시드기야왕 때 망했습니다. 유다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 애굽을 의지한 결과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한 나라가 되었고 가장 번영하지 않았습니까?

성도는 스스로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이 우리를 승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성공보다 실패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희망을 갖는 이유는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시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무쪼록 2013년, 하나님의 선한 손을 기대하셔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시작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3. 분명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 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서는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듯이 인생도 첫줄부터 정확한 목표가 정해져야 합니다. 에스라는 분명한 목표의 사람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목표를 세웁니다. 자신이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고, 그래서 백성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기를 결심한 것입니다(10). 이는 영적 재건, 즉 신앙적으로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온 땅에 말씀으로 돌아가는 신앙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8장에 보면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해서 백성으로 그 말씀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자 온 백성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이방 사람과 구별되게 살지 못한 죄, 그리고 조상들의 허물을 깨닫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9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씁니다. 그리고 모든 이방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며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회개와 영적 부흥은 재건된 성전과 더불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에게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목표는 힘이 있습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오늘 심는 기쁨이 있습니다. 언젠가 맺혀질 아름다운 열매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는 기쁨이 있습니다. 2013년 여러분이 어떤 목표를 세웠든지 정월 초하루를 맞이하여 다시 그 목표를 점검하시고, 심고 가꾸는 삶을 사셔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에디슨의 '휘발유로 기계를 돌릴 수 있는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말에 확신을 가지고 자동차 엔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 3년이 지나도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3년 만에 자동차 엔진을 만들어냈습니다. 사람이 목표를 정하고 뜻을 세우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아무쪼록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목표를 세우고, 영적으로 다시 세우는 일에 승리한 것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목표가 되어 끝까지 승리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는 2013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다시한번 새해를 주셨습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서 다시 시작한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다시 시작하는 복을 받으십시다. 아무쪼록 떠나는 결단과 하나님 선한 손의 도우심, 분명한 목표를 가지셔서 하나님께서 다시 주신 기회를 신앙성숙의 기회, 축복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기념비 세우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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