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신앙 (누가복음 2 : 36-38)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585회 작성일 2013-01-28 16:00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2.12.23.주일낮예배 기다림의 신앙 누가복음 2 : 36-38 복중의 복은 예수님을 만나는 복입니다. 본문에는 ‘안나’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그는 바른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안나만 아기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나는 아기 예수님을 구주로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 있었습니다. 남들은 아기 예수를 아기로만 보았지만, 안나는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구세주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구주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셨다고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안나는 어떤 신앙으로 주님을 기다렸는가? 첫째, 고난을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신앙입니다. 안나는 고난을 축복으로 승화시킨 믿음의 사람입니다. 안나는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사람입니다. 남편을 잃었을 때 안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늘을 원망할 정도로 고통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고난을 오히려 축복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고 섬기며 살았습니다. 이것은 혼자 몸이 되었기에 가능한 선택입니다. 안나는 과부가 되었다는 아픔을 성전에서 기도하며 사는 거룩한 생활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고난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고난의 때,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체험했습니다. 오히려 고난 때문에 그들의 신앙과 인격이 더 빛나는 존재가 되었고, 더 큰 축복으로 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어떤 환경과 처지 속에서도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욥도 고난 때문에 신앙이 더 빛난 사람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고난을 요리하고 해석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신앙은 고난을 인생 보석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안나는 인생 고난을 만났지만, 그 고난을 축복으로 해석하고 끌고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는 믿음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체험하며, 주님의 구원사역에 쓰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처음과 나중이 한결같은 신앙입니다. 누구든지 인생의 마지막을 미리 알 수는 없습니다. 성경도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경우를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내 신앙이 어느 상태에 있는가? 늘 신앙의 좌표를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안나는 과부가 되고 팔십 사세가 되기까지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어떤 환경에도 주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 신앙이 한결같았다는 말입니다. 신앙의 최고 상태를 한결같이 지킨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최고 신앙 상태를 지켰습니다. 포로로 잡혀갈 때도, 풀무불과 사자굴 위험을 받을 때도, 형통할 때도, 그들은 한결같은 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영적 에너지를 주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신앙의 사람이라면 초지일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바뀌는 신앙이 아니라, 끝까지 승리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중이 처음과 다르기 때문에, 불행이 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솔로몬은 나중이 처음과 달라졌기 때문에, 불행한 인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진노하셨다”(왕상11:9)고 했습니다. 마음을 돌이켰다는 것은 그의 믿음이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데마도 처음엔 복음 전파에 열심을 품고 바울을 따라다닌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마를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사랑해서 고향으로 갑니다. 그의 신앙의 변질은 그의 명예를 영원히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데마 하면 중도에 변질한 사람, 이런 오명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유가 변질되면 마실 수 없습니다. 버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변질되면, 하나님은 쓰실 수도 축복하실 수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처음과 끝이 최고 상태에서 유지되어야 합니다. 변질되어서는 안됩니다. 안나는 하나님과 관계에서 최고 상태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 믿음으로 살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복, 메시야를 만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한결 같은 신앙으로 날마다 주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셋째, 교회 중심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할 때 주님을 체험하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84년을 성전중심으로, 성전을 터전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중심으로 사는 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서원기도로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사가 되었습니다. 사무엘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복이 그 가정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까지 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다윗의 성전 사랑함을 보시고 이스라엘 오천년 역사가운데 가장 위대한 성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교회 중심으로 살고, 교회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22:6에,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교회사랑, 교회중심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영성을 부러워하고 소원해야 합니다. 그때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때 교회에 약속된 축복을 받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한 결과 주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무쪼록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 하셔서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과 동행하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넷째, 금식과 기도로 사명을 감당하는 신앙입니다. 안나가 팔십 사세가 되기까지 모든 고난을 이기며, 교회를 떠나지 않고, 신앙생활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은 금식과 기도, 섬김에서 나온 것입니다. 금식은 능력 있는 기도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금식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면 언제 금식기도를 합니까? 대개 회개하는 기도를 할 때 금식을 했습니다. 니느웨 성이 요나 설교를 듣고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합니다. 그리고 급한 응답이 필요할 때 금식합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그때 금식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안나의 금식기도는 회개 기도나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그는 금식과 기도를 섬김으로 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은혜와 복을 받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더 발전해서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는 늘 낮은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섬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릴 때는 섬김을 받지만 성장하면서 섬기는 자리로 가는 것처럼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며 이웃과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안나처럼 팔십 사세가 되기까지 섬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때로는 금식하면서 도와 달라고, 능력 있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무쪼록 안나처럼 기도와 금식과 섬김으로 성도의 사명을 감당하며, 예수님을 기다리고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강림절 마지막주입니다. 안나처럼 바른 신앙으로 주님을 기다리셔서 구원의 주, 위로와 회복의 주, 축복의 주님을 만나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감사, 그리고 비움과 채움 (여호수아 1 : 1-9) 13.01.28 다음글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 (요나 2 : 1~10)13.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