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 (요나 2 : 1~10)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886회 작성일 2013-01-28 15:54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2.12.16.주일낮예배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 요나 2 : 1~10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들은 어떤 박해와 환난, 시련 앞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환난이 크면 클수록 더 하나님을 크게 바라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더 크게 외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르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성격이 전혀 다른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아밋대 아들로 12소선지자 중 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셔서 말씀하십니다.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끊임없이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는 나라였습니다. 요나는 원수 민족인 니느웨가 구원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다. 결국 큰 풍랑을 만났고, 바다에 빠지게 되었고, 큰 물고기 뱃속에 삼킨바 되었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는 요나를 삼켰지만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요나를 감당치 못한 것입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들어가 회개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요나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세상이 요나를 감당치 못한 것입니까? 우리도 요나와 같은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시련에도 쉽게 넘어지고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인생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위로와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요나를 감당치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사명의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사명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명은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요나는 사명의 사람입니다. 요나의 사명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사명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큰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요나가 제비 뽑혔고, 그래서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가 삼켜 버렸습니다. 그런데 물고기가 요나를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그 큰 물고기도 그를 소화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왜입니까? 요나에게는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십에 한 대 감한 매를 몇 번이나 맞고 강과 동족과 바다 위험에 처하고 굶주리고 헐벗고 매를 맞았습니다.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던지움을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난과 박해가 그의 사명을 꺾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향한 열정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사명의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하나님은 복음 전도를 위해, 주님 나라 확장과 주님 교회 부흥을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이 사명에 붙들림 받고 복음 전하는 일에 쓰임받게 하옵소서!’ 기도하셔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도의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기도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나서 2장은 요나의 기도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요나를 연단시켜 변화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간절한 기도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스올 같은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사면이 꽉 막힌 것 같은 환경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때가 요나처럼 엎드러질 때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중병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었을 때, 낯을 벽으로 향하고 간절히 기도함으로 그 병으로부터 자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 등창암이 히스기야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정적들의 모함을 받습니다. 30일 동안 누구에게라도 예배하거나 기도하면 사자굴에 넣는다는 칙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세상을 살리는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세상이, 사탄이 예수님을 삼키려 했지만, 오히려 주님은 세상을 살리는 인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폭을 넓히기 위해 기도 폭을 넓혀야 합니다. 기도하면 민족의 역사가 움직입니다. 기도 방향대로 기도자의 인생방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용기도 힘도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회개의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회개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회개는 잘못된 길을 가다가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는 지정의적인 결단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은 버리고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요나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다시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잃어버린 영혼에게 복음을 증거하겠다고 결단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회개를 들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물고기에게 말씀하셔서 요나를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통회하며 회개하는 사람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회개할 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3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 앞에서 저주까지 했고, 모든 사명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회개하니까 성령을 부어주시고 주님께서 영혼을 맡기시고 초대교회 위대한 사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세상 권세도 회개한 베드로를 삼키지 못한 것입니다. 회개해야 사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우리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할 때 능력이 임하고, 회개할 때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넷째,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믿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자기 고집대로 다시스로 가려고 한 사람입니다. 요나는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큰 실패 가운데서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고백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실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넘어져도 그때마다 다시 주님을 바라보며 일어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가가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얼마나 주님을 바라보며 일어섰느냐는 것입니다. 실패가 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성령께서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담대함을 주십니다. 그때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욥에게 엄청난 고난과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열 남매가 한번에 죽었고, 그 많던 재물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 실수로 인한 실패든지, 아니면 까닭 없는 실패든지, 어떤 실패에도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 그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불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의 믿음이 더 빛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 금신상에 절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고백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풀무불 속에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신앙고백, 위대한 선택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신앙고백, 신앙 결단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결국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고, 그들을 높여 나라 통치자로 세웠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크면 클수록 더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실패해서 영육 간에 피곤할 때는 내가 주님으로부터 멀어져야 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 가까이 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살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어떤 인생의 폭풍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사명과 기도, 회개와 믿음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 사망의 바다에서 생명의 땅으로 토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기다림의 신앙 (누가복음 2 : 36-38) 13.01.28 다음글존귀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 (사도행전 3 : 1-10)13.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