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 (사도행전 3 : 1-10)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803회 작성일 2013-01-28 15:47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2.12.9.주일낮예배 존귀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 사도행전 3 : 1-10 오래 전 일입니다. 어느 사기꾼이 당시 정권 실세로 통하던 청와대 인사 이름을 사칭해서 기업체에 협조공문을 보냈답니다. 그러자 대부분의 기업이 확인 절차도 없이 상당한 금액을 송금해 주더라는 겁니다. 이 사건은 어느 한 기업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건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름이 가진 권세와 능력 때문입니다. 이조시대 암행어사 제도가 있었습니다. 암행어사는 임금이 직접 임명하는 관리로 지방을 다니며 탐관오리를 색출합니다. 평소에는 잠행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마패를 꺼내들고 나타납니다. “암행어사 출두요!” 그러면 누구나 벌벌 떨었습니다. “어명이요!” 하면 그 앞에 엎드리고 절대 복종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암행어사 당사자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임금의 이름을 갖고 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름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대표하는 것이 이름입니다. 이름에는 그 사람 성격이나 특징, 인격, 지위, 권세, 능력...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름을 사용하면 그 사람의 권세와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 보면 40년 동안 한 번도 혼자 일어서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걸어본 적도, 뛰어본 적도 없습니다. 혼자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몸만 상한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영혼은 병들어 하나님과 단절되고 마음도 병들어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의사들도 포기하고 가족들도 포기한 희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어난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일어난 것입니다. 굳어져 버린 저주의 자리, 불가능의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입니다. 안된다는 부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40년 만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걸었고, 처음으로 뛰었습니다.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발을 옮겨 하나님 전에서 예배드렸습니다. 그는 인생의 행복을 찾았고, 새로운 인생,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는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것이 인간 문제에 대한 성경적 신앙적인 해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정치, 경제, 교육, 질병, 가난, 환경, 모든 문제의 해답은 바로 '예수'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능력과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일찍이 초대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고, 예수 이름으로 고침 받고, 예수 이름으로 해결 받았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성령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 이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예수 이름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예수 이름의 능력위에 세워진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세상 힘을 가지지 못해도 세상이 가지지 못한 힘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신령한 힘이 있고, 인간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영원과 영생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내 실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실력, 예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은 우리 인생에 가장 큰 힘이요 가장 큰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예수 이름을 소유하고, 예수 이름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 이름에는 어떤 능력이 있는 것입니가? 첫째, 예수 이름에는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은 구원의 이름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죄 문제, 영생 문제는 은이나 금과 같이 물질적인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이름으로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무조건 예수 이름을 믿으면 구원받고, 의롭다 인정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의로워지 위해 필요한 요소가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은혜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는 우리가 의로워지는 시작입니다. 은혜는 구원의 원천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 피가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그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구원의 수단입니다. 셋째,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내 일이 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내게 효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구원의 매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고, 의롭다 인정받는 길은 오직 예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 외에 어떤 이름도 구원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 바알을 믿는 사람들은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침부터 정오까지, 심지어는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왜입니까? 죽은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이름은 다릅니다.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 이름이 불려지자 곧 구원이 선포되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십자가 우편 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예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예수여, 당신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그 순간 그에게 구원이 선포되었습니다. "네가 오늘날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것이 '예수' 이름이 가진 구원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여러분, 예수 이름에는 구원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이름이 구원임을 믿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잃어버려도 예수 이름만은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이름이 구원임을 전해야 합니다. "믿음"과 "증거"가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믿음과 증거가 없으면, 예수 이름의 능력도 없습니다. "예수 이름이 구원임을 믿는데, 전하지는 못하겠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구원의 능력을 맛본 자는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은 구원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을 믿고 전함으로, 구원 역사를 체험하는 강림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예수 이름에는 기도 응답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은 기도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때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예수 이름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예수 이름이 중요한 것은 유일한 중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도는 "예수 이름"이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올라갑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응답도 "예수 이름"이라는 통로로만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23절에서,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언젠가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 100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 내용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하는 설문이었습니다.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는 엉망이었습니다. “품행이 나쁘고 믿을 수 없는 아이. 희망이 전혀 없으며 다른 아이들과 싸움질만 일삼는 문제아….” 성적도 초라했습니다. 겨우 낙제를 면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3수 끝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는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처칠은 전쟁터에서나 국회에서나 늘 기도가 앞섰습니다. 언제나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이 믿음이 그를 가장 존경 받는 인물, 그 땅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는 ‘희망이 없는 소년'을 ‘희망을 주는 지도자’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무명의 골프 선수를 사랑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내 남편은 예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남편이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선수가 되게 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새벽제단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크리스천의 삶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모습, 예수로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준 것입니다. 골프 연습장 코치로 일하던 남편에게 이런 아내의 모습이 각인되었고, 그 후 남편은 프로골퍼가 되었습니다. 아내 기도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한국인으로 세계적 골프 선수가 된 탱크 최경주 집사입니다. 그는 자신이 골퍼로서 달란트를 발휘하게 된 것도 아내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경기 전날에는 교회에 가서 골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경기를 하면서도 내내 찬송을 부르거나 성경 구절을 외우며 걷는다고 합니다. 경기가 잘 안 될 때는 언제나 "내가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이름은 기도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할 때, 무엇이든지 응답받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예수 이름에는 치유와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은 치유와 회복의 이름입니다. 이사야 9장 6절에 보면,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때문에 깨지고 부서진 인생, 부러지고 망가진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두 명씩 짝지어 전도를 보내십니다. 그들이 돌아와 자랑하며 보고하는 내용이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이 직접 동행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 이름을 가지고 나갔더니 귀신들이 꼼짝 못하고 도망가더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이름이 선포되는 곳에 해결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 이름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내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사람을 온전케 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이름이 선포되자 그는 일어섰습니다. 아주 완전해졌습니다. 예수 이름이 온전케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육체적인 앉은뱅이만 고쳤습니까? 아닙니다. 육체의 질병에서 고침 받는 순간, 그를 지배하고 있던 모든 영적인 질병까지 한꺼번에 치료받았습니다. 생활에 질병까지 치료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질병 뿐 아니라 인생 전반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약해진 인생, 불구된 인생을 치료하시고, 병들고 상처난 인생을 완전한 모습으로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인 선교사 중에 스탠리 존스라고 있습니다. 그는 인도 선교사로 간디를 감동시킨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 그런데 89세 되던 해,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됩니다. 그는 그대로 하나님 나라에 가기를 원했지만, 사람들이 강제로 보스톤에 있는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리고 치료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남은 생애 더 열심히 충성하리라 결단하게 됩니다. 그러자 감동이 오기를, 의사, 간호사는 물론 병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올 때마다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말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후 6개월 만에 완쾌되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일어난 치유 역사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질병으로 고통받을 때,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병이든, 그것이 육체적인 질병이든, 영적, 정신적, 생활적 질병이든 여러분을 괴롭게 하고 고통을 가져다주는 사탄을 향해 예수 이름으로 꾸짖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과 자녀, 남편과 아내 문제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가족, 친척, 이웃을 향해 예수 이름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치유해 달라고 예수 이름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이름을 선포할 때, 예수 이름의 능력이 그곳에 나타날 줄 믿습니다. 질병이 치료되며, 악한 마귀는 떠나갈 줄 믿습니다. 심령이 온전해지고 가정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나라와 민족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예수 이름에는 치유와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넷째, 예수 이름에는 인생을 풍요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은 인생을 풍요케 하는 이름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고, 예수 이름이 있는 곳에 풍요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차고 넘치는 만선의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누가 앉은뱅이 인생을 풍성하게 해 주었습니까? 누가 이 사람에게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충만하게 했습니까? 누가 이 사람에게 찬양의 능력이 충만하게 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앉은뱅이는 그날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우선 가장 큰 변화가 뭐냐면, 이제는 사람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 스스로 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남에게 짐스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앉은뱅이 신세가 어떠했습니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신세였습니다. 빌어먹는 신세, 평생 이웃에게 짐이 되는 신세... 이런 앉은뱅이가 은혜 받고 운명이 바뀐 것입니다. 그가 예수 이름 안으로 들어오자 이제 거지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불구자의 모습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자가 아니라,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가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하는 축복된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이름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 초대교회 역사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동교회 초대 장로인 고찬익 장로님. 그는 본래 갖바치 출신으로 당시 천민 중에 천민이었고, 노름꾼에다 술꾼이며 사기꾼이었습니다. 한번은 관가에 끌려가서 매를 실컷 맞고 벙어리 신세가 되었습니다. 빚 독촉까지 받게 된 그는 자살을 기도합니다. 농약을 먹었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때 연동교회를 시무하던 게일 선교사님의 전도를 받습니다. 그는 야곱 이야기가 담긴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전도지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 고찬익은 꿈에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말을 못하고 “고... 고... 고...”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내 이름은 ‘고’가고, 싸움꾼, 술꾼, 망나니올시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때 흰옷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이제부터 너는 내 아들이다” 말하고는 사라지더라는 겁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전도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혀가 풀리고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고찬익은 게일 선교사에게 복음을 듣고 거듭나고 새 사람이 됩니다. 그는 나중에 손수 지은 신발을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나는 도적놈에다 싸움꾼, 사기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만든 신발을 드릴테니, 예수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민이며, 노름꾼, 술꾼, 사기꾼이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변화를 보고 하나님 힘이 아니고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스스로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성령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믿을 때 이런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로버트 콜리스는 환경적으로 불리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자기 처지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연구했다고 합니다. 결론은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열등한 상태에 있었지만,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더 성공했다고 하는 연구였습니다. 콜리스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강한 내적 힘의 원천, 예수님을 소유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수를 만남으로 더 이상 불행한 상태에 있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통해 더 강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은 희망입니다. 예수 이름에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에는 삶을 풍요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에는 인격이 상승하고, 가치가 상승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의 앉은뱅이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이름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구걸하며 살던 자가 복음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부흥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이름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풍요해지고 넉넉해지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어떤 형편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예수 이름을 의지하셔서 더 강한 사람, 더 풍요해지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이름의 권세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사탄을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능력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 가장 존귀한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구원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는 복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면 기도가 응답되는 복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면 치료와 위로, 회복의 은혜를 받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의지하면 풍요와 넉넉함의 축복을 받습니다. 모든 승리와 영광이 예수 이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강림절,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 (요나 2 : 1~10) 13.01.28 다음글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 1 : 1-5)13.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