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신앙과 성숙 (고린도후서 5 : 16-17)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062회 작성일 2012-10-22 16:23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밴드 주소복사

본문

2012.10.14.주일낮예배 (남여선교회 전도주일)

신앙과 성숙 고린도후서 5 : 16-17

성숙한 문화, 수준 높은 문화는 그 사회를 안정시킬 뿐만 아니라 안정된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하지 못하면 불협화음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성숙하지 못해서 갈등하고 고통 받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좀 더 성숙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질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성숙한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면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이는 몸과 정신과 영성이 조화를 이루고 균형 있게 발달된 사람을 말합니다. 특히 인간 내면 깊이 존재하는 영성, 하나님의 성품이 성장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고, 또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사회를 이끌어 갈 때 우리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신앙목표 가운데 하나가 성숙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성숙해집니다.

1) 유아적 단계/ 이 단계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자신 위주입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는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자기 입 밖에,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남의 것이라고 해도 제 손에 넣기 위해 떼를 씁니다. 신앙도 유아적 신앙이 있습니다. 유아적 신앙은 자기중심적입니다. 내 입장을 먼저 내세웁니다. 이런 신앙은 멋과 향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다 그런 사람만 있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2) 청년기 단계/ 청년의 특징은 용기가 있고 열정이 대단하지만, 그에 반해 생각의 깊이, 인생의 깊은 지혜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실수가 많습니다. 신앙의 청년기도 용기가 있고 열심이 있습니다. 처음 은혜 받으면 얼마나 뜨거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런데 열정만 갖고 하다 보니 실수가 많습니다. 타인에게 피해가 되든 안 되든 열정만 앞세웁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다 자기만 안다고 하는 것이, 이 부분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기독교의 참 모습이 아닙니다.

3) 성년기 단계/ 곡식이 익으면 저절로 고개를 숙입니다. 신앙도 성숙해지면 원숙해지고 더불어 조화를 이룰 줄 압니다. 이 단계는 스스로 수고할 줄 알고, 어떤 환경에 처했든지 기뻐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자기만이 아는 신앙의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4) 이타적 단계/ 신앙의 가장 성숙한 단계로, 헌신과 순교의 신앙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납니다.

① 희생/ 이 단계는 예수를 위해 희생하며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예수 때문에 목숨을 바치게도 됩니다. 역사상 위인이나 순교자, 희생적인 삶을 산 사람들은 여기에서 출현한 것입니다.

② 진실의 용기/ 어떤 환경에서도 진실합니다. 오늘날 세속되고 탁한 세상을 이기고 새롭게 하는 힘은 개혁, 제도, 법이 아닌 진실함, 영적인 성숙함입니다.

③ 세상을 품는 마음/ 하나님은 한 개인을 사랑하시지만 이 세상 만민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전 세계 모든 인류가 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우리 지방만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함께 울기도 하고,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참 기독교인은 이타적 신앙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삶을 살 때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인가? 예수님을 바르게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격과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삶에 성숙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까? 예수님을 만날 때 주어지는 몇 가지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만나면 의인이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밝은 빛 앞에서 우리 죄는 모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자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남의 죄만 질책하던 그가,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죄가 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도 우리 죄를 대속할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구원자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옮겨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알 때 겸손해질 수 있고, 누구든지 하나님 존귀한 자로 여기며, 하나님 은혜와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타적인 신앙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둘째, 예수님을 만나면 건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에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막8:17) 예수님은 병든 것을 고치시고, 상한 것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받습니다. 여기서 질병은 영적, 정신적, 육적, 생활적인 질병을 말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정신은 물론 영과 육과 생활이 온전해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희망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공기업 중역을 지낸 분이 퇴직금으로 친구와 동업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러자 두 딸이 가출을 하고, 셋째 아이는 병들어 죽어가고, 부인은 이혼하자고 합니다. 좌절한 나머지 집을 나가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자 생활을 합니다. 폐인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친구 전도로 교회에 가게 되고, 예수 믿고 치유와 회복을 경험합니다. 그리고는 남편을 찾아 함께 교회 다니며 제멋대로 산 과거를 회개합니다. 그 후 하나하나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부부관계가 좋아지고, 가출했던 딸들이 돌아왔습니다. 그 딸은 나중에 명문대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박사가 됩니다. 셋째 아이도 치유 받았습니다.

상처와 불신으로 가득했던 가정이 사랑과 이해로, 행복이 충만한 가정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제는 나처럼 불행한 가정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해서 복음 전하는 가정으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가정이 새로워지니까 인생이 건강해지고, 참 평안을 나누는 복된 인생으로 새로워진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만나면 가치관이 새로워지는 복을 받습니다.

가치관이 맛과 멋이 있으면 품위 있는 인생이 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 때문에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이 변화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삭개오는 돈은 많지만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자기 방식으로 살던 모습이 소명 중심의 삶으로, 자기만 위해 살던 사람이 이웃을 향해 사명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삶의 가치관과 목적이 변합니다. 참된 구원은 삶의 변화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나 가슴만이 아니라 ‘삶의 변화’가 따르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숙은 축복입니다. 벼도 제대로 영글어야 주인에게 기쁨을 줍니다. 우리 신앙도 성숙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사람이 있는 곳에 희망과 기대와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성도, 특별히 이타적인 성도가 되어 어느 곳에 있든지 빛과 소금이 되는 인생,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 있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은 물론, 가정을 아름답게 세우고, 나아가 부강하고 평안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쓰임 받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