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인생의 기초 (시편 33 : 10-12)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420회 작성일 2012-10-22 16:18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2.10.7.주일낮예배 복 있는 인생의 기초 시편 33 : 10-12 지난 두 주간 미국 캐나다를 다녀오면서 그들의 선진문화(인사문화, 이해와 용서문화, 칭찬문화, 죽은 사람을 대하는 문화 등)를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문화를 이룬 배경이 무엇인가? 거기에는 기독교 정신이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을 기초로 한 청교도 신앙입니다. 물론 지금은 여러 가지로 위기를 겪고, 옛날 청교도 신앙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신앙의 뿌리를 둔 나라와 백성에게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는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심을 체험하고 이스라엘 전성기를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인생 황혼기에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깨닫고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도 후손들에게 신앙의 복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복 있는 나라, 복 있는 가정과 인생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성경이 기초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과 만물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생존과 안정, 질서와 보호, 언약과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아름다운 법을 주셨습니다. 그 법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생명과 구원, 영생과 소망을 주시고, 약속된 복을 받고 누리게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1:3) 신28장에도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이 짧은 역사 속에서도 복을 받은 이유는 성경 말씀을 신앙의 기초, 인생의 기초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청교도 신앙은 성경 중심입니다. 청교도들은 생활과 도덕 표준을 성경에서 찾았고 교회와 국가 정치적 표준도 성경에서 얻었습니다. 뉴욕 타임즈가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같은 미국 초일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조사한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①부모와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많았고, ②성경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즉 성경을 많이 알고 부모와 대화를 많이 나눈 자녀들이 비교적 일류대학에 많이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축복의 길로 안내하는 나침반입니다. 세상지식이나 상식, 학식, 지혜나 학문이 아니라 말씀을 중심으로 살 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곳,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해주십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인격이 풍성해지고 생활이 풍성해지고 온전해집니다. 때문에 우리가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살고 실천할 때 그리스도의 정신이 우리 개인과 사회의 기초가 되어질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신앙과 삶의 기초가 되어 성경에 약속된 모든 복을 누리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배가 기초된 신앙입니다. 예배는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에게 주신 특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은 복 있는 삶의 기초요,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제일 신조는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출애굽 목적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12) 본래 미국의 정신은 청교도 정신입니다. 청교도 정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신입니다. 신앙의 박해를 받던 영국 청교도들이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미국 신대륙에 상륙합니다. 그들은 모든 의식주의를 배제하고 주일을 지켰으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하나님 뜻이 가정에, 사회에, 국가와 정치에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건전하고 깨끗한 생활, 세상에 물들지 않는 삶이 그들 신앙의 근본 원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의 예배를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실된 예배자에게 부흥의 은혜를 주십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영이 부요해지고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귀의 복과 장구한 재물과 의의 복도 주신다고 했습니다.(잠8:17-18) 솔로몬은 일천번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감동케 하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은 그런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축복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 솔로몬이 예배를 등한시하고 우상을 들여왔을 때 그의 나라는 약하게 되었습니다. 미국도 세속문화가 들어오면서 예배가 무너지고 교회는 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경제가 흔들리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예배자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살면 그 인생이 살게 됩니다. 예배 성공하면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민족도 삽니다. 그래서 예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생명선으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백성,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예배가 여러분 인생의 기초가 되고 중심이 되어,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교회가 기초된 신앙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세우신 주님의 몸입니다. 또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거룩한 단체이며 지체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응답과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개인이나 가정, 나라와 민족은 반드시 평강의 복, 넘치는 은혜와 형통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6)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에 학교, 마지막에 자기들 집을 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집을 지을 때 교회를 향해 문을 내고, 교회를 중심으로 길을 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신앙이 형통과 번영의 복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이 초기 한국기독교 성격을 일곱 가지로 요약한 글이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가, 교회가, 민족을 이끄는 중심에 있었다’는 내용으로, 당시 교회는 사람들의 의식을 개화하고, 새로운 도덕가치들을 만들어내고, 사회복지에 공헌하고, 사회 어두운 부분들을 앞장서서 개혁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인재들을 신앙으로 길러내 민족정신의 지도자가 되게 했습니다. 문맹타파와 농촌 계몽에도 앞장을 섰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나라가 복을 받고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영적 유산을 이어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처음 신앙 처음 사랑 처음 열정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다시 교회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이 무너졌을 때, 이방민족에 의해 민족도 가정도 개인도 큰 고난과 수치를 당했습니다. 북한이 교회를 문 닫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고 있습니까? 그래서 러시아는 굳게 닫았던 교회 문을 다시 열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문을 열자 그 나라 경제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연결되어야 복 있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연결될 때 위대한 정신이 되고, 위대한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교회중심 신앙을 가지셔서 교회를 통해 주시는 약속의 축복을 누리며, 교회가 더 왕성하게 부흥성장 하는데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백성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서는 신앙생활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신앙의 기초가 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기초가 된 신앙, 예배가 기초가 된 신앙, 교회가 기초가 된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경험하고, 후대에까지 복을 물려주는 복 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신앙과 성숙 (고린도후서 5 : 16-17) 12.10.22 다음글브니엘의 새 아침 (창세기 32 : 24-32)12.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