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인생 (열왕기하 5 : 8-14)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887회 작성일 2012-10-2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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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16.주일낮예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인생 열왕기하 5 : 8-14

오늘날 성공한 인생 같은데, ‘그러나’의 문제로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 많습니다. 나아만은 아람나라 군대장관으로, 왕에게 인정받는 존귀한 자였습니다. 명예와 부와 권력,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1). 이 말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당시 나병은 저주받은 병, 평생 격리되어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야 하는 병입니다. 그러니 2인자면 무엇하고, 큰 용사면 무엇합니까? 이런 인생을 가리켜, ‘그러나’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공했다고 하나 실패한 인생.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아만은 나병환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깨끗이 나음을 받았고, 오히려 나병 때문에 이방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신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더 존귀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그러나’의 문제가 있습니까? 나아만처럼 ‘그러나’가 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인생, 축복된 인생으로 바꿔지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러나’의 인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인생, 축복된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첫째, 복음을 들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가장 복되고 좋은 소식입니다. 나아만은 외견상으로는 국방장관이었지만 내면으로는 나병환자입니다. 유명하다고 하는 의사는 다 찾아다녔을 겁니다. 그러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나아만 부인에게 말합니다. 나아만이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면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그분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나아만은 이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왕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결국 나아만은 하나님을 만났고 병도 고치고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처럼 나아만이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뭡니까?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순수한 자세가 있었습니다. 나아만은 어린 여종의 말을 듣고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한 생명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죽은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깊은 곳을 변화시키십니다. 복음만이 사람의 영혼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나아만과 같은 자들로 가득합니다. 저마다 문제를 가지고 고통 중에 있습니다. 세상적인 영화는 누리지만, 속사람이 부패해가는 고달픔과 허무함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나아만에게 복음을 전한 작은 소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 문제를 해결해주고 생명을 구원하는 생명의 은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러나 인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으로 바뀌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내 생각을 내려놓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만이 말들과 병거들과 많은 시종을 거느리고 엘리사 집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종이 나오더니 “선생님 말씀이 요단강 물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깨끗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왜입니까? ‘자기 생각’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는”(11) 내가 누군데 나를 이렇게 대접하느냐는 것입니다.

적당한 체면이나 자존심은 품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가나안 여인도 체면을 던지고 자기 딸의 흉악한 귀신 들린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삭개오도 자존심 버리고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 만나고 구원받았습니다.

긍정적 반응을 하느냐 부정적 반응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정적으로 반응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 기준, 자존심을 버려야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라”(사55:8)

그때 화가 나서 그냥 돌아가려는 나아만을 종들이 만류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보다 더한 일을 시켰으면 안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야 합니다. 권면해 주는 사람,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요, 그런 사람이 주변에 많은 사람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결국 나아만은 즉시 요단강으로 가서 7번 몸을 씻었습니다. 그러자 나병이 깨끗하게 나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적인 기준이나 방법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내 사고, 내 생각, 내 선입견, 내가 정한 경계선... 그것을 버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나아만도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결단이 있을 때 나병으로부터 놓임 받고, 더 큰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신앙과 삶의 기준이 됨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인생, 축복받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완전한 순종이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순종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잣대가 됩니다. 나아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을 받은 비결은 순종입니다. 그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고, 응답과 축복의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14) 이 말씀에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① ‘내려가서’/ 문제를 풀려면 내려가야 합니다. 자세를 낮추어야 합니다. 겸손해져야 합니다. 나아만은 문제를 풀기 위해 요단강으로 내려가는 순종을 선택했습니다.

②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이것이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이성이나 경험이 아닌,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단강물이 무슨 효험이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니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③ 일곱 번 몸을 잠그니/ 이것은 가감 없는 철저한 순종, 완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나병은 사라지고 살결이 어린 아이 살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만일 나아만이 요단강에 여섯 번만 담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여전히 나병환자요, 여전히 ‘그러나 인생’으로 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끝까지 인내하고 순종할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마지막 일곱째 날에 일곱 번 성을 돌때 무너져 내렸습니다. 마가다락방에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한 120명에게만 성령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순종, 끝까지 하는 순종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하신다면, 완전한 순종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아만처럼 치료와 회복의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순종하는 자가 되어 존귀한 인생, 복있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나병’이라는 문제가 있습니까? 살아가는데 항상 힘들게 하는 ‘그러나’라는 문제가 있습니까? 늘 하나님과의 만남을 소원하며, 내 생각 내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인생, ‘그러나’의 인생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고 축복된 인생으로 전환되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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