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 (마태복음 5 : 10-12)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726회 작성일 2012-03-12 12:13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2.3.4.주일낮예배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 마태복음 5 : 10-12 명예살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회교나 힌두교를 믿는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버림당하고 핍박을 당합니다. 심한 경우는 가족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타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 압둘 라흐만씨가 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기독교 선교단체에서 일하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게 되면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검찰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자 세계 영향력있는 지도자들이 이러다간 종교분쟁이 일어나겠다고 염려해서 중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이탈리아로 망명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는 개종하면 사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나는 기독교를 선택한 대가로 죽을 각오를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만일 그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형제들에게 동족에게 이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어 사형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도 예수 믿으면 직장에서 쫓겨나고, 예수 믿으면 동네에서 왕따 당하고, 형제들이 버린다고 하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올까? 여러분, 우리에게 복음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세상에 복음의 자유가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외적인 박해 외에도, 오늘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고난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주일 성수를 위해 당하는 고난, 불의와 타협을 거절하기 위해 당하는 고난,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확장을 위해 당하는 고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는데, 믿음으로 살기 위해 핍박 받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고난과 핍박이 올 때 우리는 어떤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사순절기간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의를 위해, 인류 구원을 위해 고난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류 구원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길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무쪼록 말씀 들을 때 우리 가슴이 뜨거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의를 위해 박해받는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핍박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자기 잘못 때문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기 잘못 때문에 받는 핍박은 본문이 말씀하는 핍박이 아닙니다. 이것은 핍박이 아니라 징계요 처벌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핍박이 아닌 것은 어떤 것이 있느냐? ① 죄나 우리 실수 때문에 받는 고난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절에 보면,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짓고 자기 실수로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은 의를 위한 핍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가서 70년 동안 고생을 합니다. 이것은 의를 위한 핍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처벌이고 징계라는 것입니다. ② 지혜롭지 못해 당하는 어려움도 핍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혜롭지 못해 예수 믿는 사람이 고통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공부를 소홀히 해서 성적이 떨어졌다면, 그래서 부모님께 책망을 듣는다면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데서 온 결과입니다. 지혜롭게 믿음 생활하려면 신앙생활 하는 것만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해 성적이 떨어진다면 어느 부모가 교회 나가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목회를 하다보면 가끔 이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며느리가 들어와서 집안 망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예수 믿는 며느리가 들어오면 그 집안에 복덩어리가 들어오는 것인데 그 무슨 말씀이냐?”고 하면, 예수 믿는다고 제삿날에도 안 오고,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때도 도대체 발걸음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평상시나 큰 일이 있을 때나 더 효도하고, 더 가족화목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가족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찮기도 하고, 조상숭배는 우상숭배라는 신앙적 이유도 있고, 그래서 발걸음을 딱 끊어버린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갔습니까? 환난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롭지 못해 당하는 어려움은 성경이 말하는 핍박이 아닙니다. ③ 극단적인 신앙행위로 받는 비난도 성경적인 핍박이 아닙니다. 가끔 보면 극단적인 신앙행위 때문에 본인은 물론 교회 전체가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맹신적이고, 미신적이고, 광신적이고... 맹신적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미신적이란 바르고 옳은 삶보다는 복 받는 것에만 치우치는 믿음을 말합니다. 광신적이란 미칠 정도로 지나치게 믿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달 보성에서 일어난 3남매 치사사건... 이 사건을 일으킨 박씨는 신학대학을 다니지 않은 사이비입니다. 목사가 아니라 자칭 목사입니다. 그들 부부에게는 4남매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약을 먹였는데 차도가 없습니다. 그러자 기도로 감기를 낫게 하겠다고 아이들에게 밥도 주지 않고 귀신을 쫓아내겠다며 허리띠와 파리채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죽은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하면 아이들이 살아난다고 믿고 죽은 아이들과 열흘간 지냈습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지만 거짓말로 둘러댔습니다. 그들의 광신적인 행동은 친척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주변 교회에서 이단으로 소문났습니다. 여러분, 이런 극단적인 신앙생활로 오는 고난은 성경적 고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정은 팽개치고 교회만 와서 사는 것, 자녀도 돌보지 않고, 남편도 돌보지 않고, 그래서 핍박이 온다면 이는 성경적인 핍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핍박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당할 때 그것을 핍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의를 위해 박해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는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에 대한 설명은 11절에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즉 성경에서 말하는 핍박이란, ‘나로 말미암아’, 즉 ‘의’이신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말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고난,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받는 어려움,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에 받는 고난, 그것이 의를 위해 받는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갈등도 핍박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갈등과 핍박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빛입니다. 빛은 반드시 어두움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리스도인은 소금입니다. 소금은 부패와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 좌우편에는 두 강도가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두 강도는 너무 악해서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는 너무 의롭기 때문에, 너무 선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예수님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그런 핍박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그를 시기하는 자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모함합니다. 잠시 기도를 쉬면 고난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고자,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기도합니다. 결국 사자굴에 던져지고 만 것입니다. 다니엘 세 친구 역시 한 번만 왕이 세운 우상 앞에 절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상숭배를 금하신 하나님 앞에 의를 지키기 위해 풀무불에 던져지는 쪽을 택합니다. 초대교회를 보세요. 초대교회는 이중적인 박해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단으로 몰려 박해를 받았고 로마인들에게는 황제숭배를 거부한다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과거나 현재나 세상 풍조에 순응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성주 인터내셔날’ 대표 김성주 집사, 이분은 사업을 시작하며 세 가지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을 하려면 세 가지를 잘 해야 한답니다. 첫째는 술자리입니다. 술을 안 먹으면 사업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얼마나 통설적인 일이면 ‘술상무’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둘째는 돈 봉투입니다. 뇌물 없이는 사업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비자금을 조성하려고 합니다. 셋째는 정직해서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식회계를 하고, 이중장부를 만듭니다. 김성주 집사는 ‘나는 이런 식으로는 사업하지 않겠다.’ 선언을 했습니다. 1년 동안 철저하게 왕따를 당했습니다. 여자라고 왕따 당하고, 뇌물 안 준다고 왕따 당하고, 술 안 먹는다고 왕따 당하고, 세금 정직히 내니까 너 잘 났다고 왕따 당하고... 그런데 이렇게 왕따 당한 김성주 집사는 1년 뒤에 사업을 완전히 역전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당시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라는 책을 냈고,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주목 받는 여성 최고경영자라고 합니다. 세상도 진짜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핍박 받지 않으려면, 경건하게 살지 않으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철학대로, 세상 사람들이 사는 윤리대로,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법대로, 그렇게 살면 핍박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계명과 윤리와 생명은 세상과는 분명한 구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분되게 살려고 할 때 반드시 핍박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핍박은 겉으로 보기에는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 신앙과 삶을 더 큰 은혜와 축복으로 이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러면 의를 위해 박해받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인가?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의 영광도 없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상급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의인들이 고난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받을 상급이 크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은 길지 않으며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복이 있습니까? 1) 주를 위해 고난 받으면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 고난 받고,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는 사람이 결국에는 복의 주인공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을 보세요. 욥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온전하게 믿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사탄에게 욥을 자랑합니다.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10자녀를 잃고 가진 재산을 다 날리고 몸에 병이 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살았는데... 함께 살던 부인까지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핍박합니다. 그러자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욥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고난을 참았습니다. 결국 욥기 42장에 보면, 욥 말년에 갑절의 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위해 고난 받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고난에 대한 복을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안산 어느 교회에 김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얼마나 교회 일에 헌신적으로 충성하는 분인지 모릅니다. 늘 말씀드리는 것처럼 나와 가정과 교회와 민족은 하나다... 이런 마음으로 진실하게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안산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떨어지면 시골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도 부인에게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으니 아들에게만 신경 쓰고, 교회 일은 그만두라고 자꾸 신앙생활에 참견을 하더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 집사님은 어떻게 하나님 일을 그렇게 하느냐고 변함없이 봉사를 하고,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합니다. 12월이 되어 시험을 쳤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인문계 시험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얼마나 많은 수모와 질시를 받았는지... 남편도 시어머니도 다 너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책망하고 그렇게 고통을 줄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집사님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주말이 되면 아이가 있는 학교 기숙사에 반찬을 갖고 오가면서 차에서 많이도 울었답니다. 제발 전화위복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아들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이라 할 일이 없기도 하지만, 아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 처지가 기가 막히더라는 겁니다. 안산에 있는 학교도 못가고 지방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기가 한심했습니다. 그러더니 한순간 아이가 변해 공부에 집중하더니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학기 지나고 1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는데 안산시내에 간 친구들은 대학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그 아이는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무슨 걱정이냐면 시골학교는 교장 추천으로 수시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전교 1등이니 어떤 대학을 가야할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동시합격을 했답니다. 그래서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도 못 들어간다고 핍박하던 남편과 시어머니, 시댁 식구들이 예수 믿게 되었고, 그리고 조롱하고 놀려대던 친구들과 부모들도 모두 부러워하는 가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진실하게 믿고, 주님의 영광 위해 살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 일을 책임져주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선한 것으로 갚아주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어떤 핍박이 와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고난은 우리를 강하고 성숙하게 만듭니다.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 형통하고, 안되던 일도 술술 풀려야지 왜 믿는 자에게 고난이 오느냐고, 복음 전하던 스데반 집사가 왜 돌에 맞아 죽어야 하고, 말씀에 순종해서 산위에 방주를 만들던 노아가 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느냐고, 전능하시고 세상을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셨다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일 수 있느냐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환란과 핍박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게 하신 것도 은혜이고, 또한 믿는 가운데 핍박을 당하게 하신 것도 은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점점 자라서 신앙의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핍박은 겉으로 보기에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 신앙을 더 성숙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 깊게 이해하고 새로운 차원의 인생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난과 박해를 통해 우리 신앙은 큰 성숙을 가져옵니다. 고난 받게 되면 기도 못하던 사람이 기도하게 되고,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던 사람이 가족을 사랑하게 되고, 자기를 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가 때때로 겪는 고난과 박해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유익을 주시려고 박해를 허용하신 것입니다. 욥을 보세요. 욥은 의인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으로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큰 시련과 고통이 왔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고난을 통해 그가 지금까지 믿은 하나님은 피상적이고 자기편의적인 하나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나 생각으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큰 시련과 고통을 통해 자신의 무지와 교만을 깨닫고 겸손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박해와 고난은 우리 눈을 열어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보도록 합니다. 그래서 박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하며 살아왔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나 핍박이 올 때는 “하나님이 내 신앙을 자라게 하시고 진짜 성도로 만드시려고 그러시는구나”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주를 위해 고난 받으면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의를 위해 고난 받으면 주어지는 축복이 있는데 천국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그리고 12절에 보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때문에 박해 받은 자가 받을 복인 것입니다. 천국에는 두 가지 천국이 있습니다. 내세에 들어가서 누리는 천국이 있는가 하면, 이생에서 누리는 천국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해 핍박 받은 자가 이 두 가지 복을 다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남모르는 행복이 있고, 내 속에 체험되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막크 갈리’라는 사람은 기독교 2천년사에서 순교를 당한 사람들의 사적을 연구한 학자입니다. 그분이 많은 순교자들을 연구한 다음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한 가지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그 순교자들은 자기 죽음의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임재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스데반을 보세요. 돌멩이가 날아오는 현장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계심을 봤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서신 것을 보노라” 자기 마음에 임한 천국을 환상으로 보면서... 그래서 천사 얼굴을 하고... 그래서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은 군대에 있을 때 예수 믿게 되었는데, 그 믿게 된 동기는 한 졸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고참일 때 그리스도인 신병이 전입해 왔다고 합니다. 그는 그 사병을 아주 심하게 다루었다고 합니다. 어느 비오는 날 밤, 야간 보초 근무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왔는데 그 졸병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는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아무 이유 없이 진흙이 잔뜩 묻은 군화로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졸병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계속 기도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군화가 깨끗하게 닦여져 침상 밑에 가지런히 놓여 있더라는 것입니다. 졸병이 닦아놓은 것입니다. 그날이 예수 믿기로 작심한 날이 되었고, 결국 목사까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 내무반은 전원 예수 믿는 내무반이 되었고, 그곳이 천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매를 맞고, 착고에 매인채로 옥에 갇힙니다. 그런데 감옥 안에서도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그곳에 천국이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면 간수장이 예수 믿고 그 가족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핍박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복음이 증거되고, 이 땅에 천국이 임하고, 하늘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핍박을 당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고난 받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곧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핍박이 저주이거나 패배 상징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핍박을 통해 영광에 이르며 구원에 이르게 되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부터 예수사랑축제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위해 박해 받는 자가 진정한 행복자임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전도함으로 주님을 위해 핍박 받을 수 있습니다. 그 핍박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주님을 위해 핍박 받으면 주님께서 다 갚아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음이 성숙해집니다. 영원한 기쁨, 천국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사순절, 그리고 예수사랑축제를 통해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고난이 인생의 문을 두드릴 때 (마태복음 15:21-28) 12.05.01 다음글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 (느헤미야 2 : 1-5 )1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