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 (느헤미야 2 : 1-5 )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8,131회 작성일 2012-03-12 12:07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2.2.26.주일낮예배(3.1절기념주일)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 느헤미야 2 : 1-5 미국 남북전쟁 전에 신시내티라는 곳에는 캔터키에서 목숨 걸고 강을 건너오는 흑인 노예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판사가 한 노예를 심문합니다. “왜 강을 건넜는가?”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러자 판사는 다시 묻습니다. “주인이 나빴는가? 호되게 일을 시켰는가? 아니면 음식이 나빴는가? 아니면 잠자리가 나빴는가?” 계속되는 질문에도 대답이 없던 노예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편안했어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그 무엇보다도 자유를 갖고 싶었습니다” 자유, 그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왔다는 것입니다. 요즘 중국이 탈북자를 강제북송 한다는 소식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탈북자는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동남아 등... 수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언제 잡힐지 모르는 두려움과 인권 유린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될 수 있도록, 속히 민족복음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유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장 고귀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담보로 압록강을 건너고 두만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1775년, 미국 핸리 주지사는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앞두고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이런 의미에서 뜻 깊은 날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 국민이 되어야 함’을 세계만방에 선언한 1919년 3월 1일입니다. 3.1운동은 잃어버린 자유를 찾기 위한 독립운동이며, 교회가 민족 운명에 동참한 역사적이며 위대한 신앙적 사건입니다. 한국교회가 3.1운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목회자 등 신앙인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인중에 16명이 목회자였고, 그 중에 9명이 감리교 목회자였습니다. 그리고 전국 감리교회와 학교, 5만여명의 감리교인과 4백여명 목회자들이 독립운동을 이끄는 핵심세력이었습니다. 카톨릭은 침묵했고, 유교도 뒷짐지고 있었지만, 감리교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예외 없이 항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감리교회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하나님나라 복음을 위해 온몸으로 실천한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도 컸지만, 감리교회는 당시 민족의 등불이고 희망이었습니다. 이들의 값진 희생은 국내외 항일독립운동의 모체가 되었고, 민족해방을 이끌어낸 숨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회는 3.1절 기념주일을 제정하여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고 다시 한 번 민족사랑의 영성을 회복하자... 결단하는 예배로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은 신앙인이 가져야할 애국애족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느헤미야는 형제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당시 느헤미야는 왕의 술관원이었습니다. 포로 신분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요, 명예와 권세를 누리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바사 왕궁의 편안함도, 왕의 술관원이라는 부와 명예와 권력도 버립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모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느헤미야의 애국하는 마음과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느헤미야의 이름을 성경에 남기시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높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3.1절 93돌을 맞이하면서 말씀을 통해 은혜 받으시고 나라사랑 민족사랑의 영성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처럼, 3.1운동 중심에 선 신앙의 선배들처럼 여러분이 나라와 민족의 등불과 희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아가 이 민족의 평화적인 통일, 복음적인 통일을 주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은 기도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애국도 종류가 있습니다. 총칼을 들고 나가 싸우는 것도 하나에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애국은 총과 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릎에 있습니다. 무릎으로 하는 애국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무릎으로 애국한 사람입니다.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 사람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1장과 본문에 보면 기슬르월부터 니산월, 즉 4개월 동안 조국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왕도 느헤미야의 수척해진 모습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조국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해야 할 일이 뭡니까? 기도입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기도해서 유다 민족을 살렸습니다. 니느웨 도성이 살게 된 것은 왕이 솔선수범하여 회개하며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블레셋에 포위당한 이스라엘 민족이 살게 된 것도 모든 백성이 사무엘을 중심으로 미스바에 모여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애국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1980년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한 김용기 장로님이 책 한권을 출판해 주목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어떻게 어려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가? 제시하고 있는데 그 책 제목이 참 은혜가 됩니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이것은 실제로 김용기 장로님이 자기 기도실에 친필로 써 붙인 휘호였습니다. 이 분은 매일 나라를 위해 4시간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면서 ‘내가 나라의 파숫군이다’ 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기도하는 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을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이런 기도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최고 애국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나라를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를 위해 기도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7, 80년대 나라가 어려웠을 때, 우리는 여의도광장에서, 삼각산에서, 기도굴에서, 교회에서 철야하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최고 부흥의 역사, 경제성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기도의 불을 끄면, 이 나라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어렵다고 걱정하기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불평하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느 때보다도 지금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갈라진 백성들이 하나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일의 희망인 청소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업과 경제가 살아나기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평화적인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 이 나라에 모든 문제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고, 우리 민족과 교회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은 나라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에 유익이 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크든 작든, 나라에 유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애국이고 애족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업을 해도 나라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직업을 가져도 나라에 유익을 주는 직업을 갖고, 공부를 해도 나라에 유익을 주는 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내가 하는 일이 나라에 도움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책이 대영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입니다. 이 책을 세일즈하는 사원들에게는 8가지 신조가 있다고 합니다. 그중 8번째 신조가 뭔고 하니, “나는 내 직업을 통해 나라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뜻있는 생각입니까? “나는 내 직장과 내가 하는 일과 내 사업을 통해 이 나라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런 정신에 떳떳함이 있고, 자신감이 있고,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라사랑이고 신앙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조국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찾아서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조국의 유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가서 조국을 위해 한 손에는 무기, 또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합니다. 여기에 느헤미야의 위대한 면이 있습니다. 그는 왕궁에서 얼마든지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통당하는 조국과 백성들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조국 땅으로 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자의 정신이고 의식이고 책임있는 모습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서 책임지는 것, 그것이 나라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모모세 타다시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 주재원으로 와서 40년 넘게 거주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책 내용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아무리 돈이 되는 일이라도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회사가 부도 위기를 당하면 먼저 자기 집을 팔아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본 기업인의 정신이라고 합니다. 초대 감리교인들은 이런 정신과 책임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지식있는 자 없는 자, 남녀노소 누구 할 것 없이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입니다. 감리교인이었던 유관순은 어린 여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3.1운동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그는 이화학당을 다니다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휴교령이 내려지자 충남 천안(매산감리교회)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19세 어린나이에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여러분, 나라사랑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정신이 구체적으로 헌신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에 유익이 된다면 때로는 물질도, 때로는 우리 생명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3.1운동 정신인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 유익이 되는가를 연구하고 헌신하고 책임지고, 그런 성도가 많은 교회, 그런 교회가 부흥하고 소망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가 복을 받고, 그런 성도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환경이 변해도 그에 따라 신앙이 변한다고 하면, 조금만 고난이 와도 소속감이 흔들린다고 하면 거기에 무슨 권위와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어떻게 그 삶이 교회에 유익이 되고 나라와 민족에 유익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난 24일 강영우 박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분은 살아서도 하나님께 유익이 되고, 교회 유익이 되고, 또한 나라에도 큰 유익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어서도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는 열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듬해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시력을 잃었습니다. 같은 해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 10대 시각장애인 가장으로 불우한 청소년기를 지냅니다. 그런 중에도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유학중 시각 장애인의 악조건을 극복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이후 일리노이대 교수와 주정부 특수교육국장을 거쳐, 2001년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장애인위원회 정책 차관보로 발탁되었습니다. 당시 한인 백년 미국 이민사에서 최고위 공직이었습니다. 두 아들도 그는 지난해 10월 말기 췌장암으로 한 달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명한 것도 암진단 받은 것도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으로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한 평생을 살아왔다. 실명을 통해 하나님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역사들을 이루어내셨다. 많은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이런 인연을 통해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봉사를 결심할 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여러분들로 인해 내 삶이 사랑으로 충만했고 은혜로웠다, 감사하다”고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는 힘든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인도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고난의 인생이었지만,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세상에 빛과 희망의 메시지를 준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위상을 높이는 일에 기여하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인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나만 잘 살고, 나만 잘 먹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어두운 사회를 밝히고, 바르게 세워나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유익한 자가 되자, 내 삶이 내 가정에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그리고 내 나라와 민족에도 유익한 자가 되자” 결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위대한 신앙은 위대한 국가를 건설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이 나라의 살 길입니다. 진정한 애국애족은 뭐냐면 우리 민족이 죄악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전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갑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민족, 하나님이 통치하는 민족... 그런데 예루살렘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속력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부귀도 권세도 다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백성을 살릴 수 있고, 복음만이 내 민족을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능력이 있고,죄인을 회개시켜 의인으로 만드는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억압과 압제에서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예수 안에서 의인으로 다시 태어날 때 이 민족 미래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우리 민족이 예수 안에서 하나될 때,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와 자유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성장하고 발전하게 합니다. 동양사회보다 서구사회가 더 발전하게 된 원인을 보면 거기에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교사회보다 서구사회가 더 발전하게 된 원인도 그곳에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통계에 보니까 이 지구상 여러 나라들 중에서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 치고 가난한 나라가 없고, 미개한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유럽을 생각해봅시다. 원래 유럽은 바이킹 민족과 게르만족이 자리잡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잔인하고 어두운 무지의 땅, 그런데 그 땅에 복음이 들어가자 우상숭배가 사라지고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그 땅에 미개한 폭력 정권이 사라지고 기독교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그 땅에 무지가 사라지고 대학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킹 민족이 변해 의회민주주의가 나오고, 청교도가 나오고, 급기야 미국이 탄생했습니다. 게르만 민족이 변해 종교개혁이 나오고, 문명과 과학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영향력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128년 기독교 역사에 기념비적인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학교가 세워지고, 병원이 세워지고... 한 사람이 예수 믿어 무당 집이 축복의 가문으로 바뀌고, 백정도 노비도 예수 믿고 변화되어 이 나라 독립과 발전을 위해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발전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성장하게 해줍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같은 발전과 성장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살 길은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 그것이 애국 중에 애국입니다. 우리가 살 길은 이 민족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 돌아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 살 길은 이 땅에 주인을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가 움직이지 않고, 전도하지 않고... 그래서 발전이 정지된 교회는 교회만 발전이 정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성도들도 발전과 성장이 정지되는 것입니다. 생활뿐 아니라 의식도 정지되고, 생각하는 것도 정지되고, 생활에도 큰 진전이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불화하고, 퇴보하고, 침체되고, 발전이 없으면, 교회만 발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생활환경도, 가정환경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회가 왕성하고, 힘있게 움직이고 새로워지는 교회, 그리고 뭔가 의욕이 있으면, 그런 교회 안에서 인물이 배출되고, 신앙이 성장하고, 성도들의 생활도 향상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교회가 전도하고, 새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움직이는 그곳에는 성도들의 정신도 새롭고, 살아가는 자세나 의식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전도는 주님을 위해 해야 되고, 또 우리 자신의 성장을 위해 해야 합니다. 내 가정의 발전과, 그리고 내 나라와 민족을 발전을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민족이 3.1독립운동을 통해 억압과 압제에서 자유해지는 길이 열렸던 것처럼, 전도는 영적인 독립운동입니다. 죄에 묶여 있던 내 민족 내 백성이 영적으로 자유해지고 해방되는 축복이 전도를 통해 일어나게 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은 복음전하는 자를 가장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우리 민족이 온전히 주님 앞에 돌아오는 그날까지 복음 전파에 힘쓰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3.1절 93돌을 맞았습니다. 나라가 곧 나 자신이고, 내 가정이고, 내 운명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라 없는 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주신 나라이고, 우리 민족을 위해서 주신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의 느헤미야가 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 나라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줄 아는 사람, 온 백성이 하나님을 신앙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느헤미야 때문에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고,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애국애족의 사람, 자랑스러운 감리교인이 되어 나라와 민족의 등불과 희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의 위기가 하나님 구원의 복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축복의 기회가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영적 독립운동이 일어나 제2의 부강한 나라와 민족으로 세워지는 역사, 세계를 품고 세계로 나아가는 자랑스런 감리교회가 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 (마태복음 5 : 10-12) 12.03.12 다음글큰 사람 (창세기 37 : 5-11)1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