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1-9)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583회 작성일 2012-02-06 19:00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2.1.22.주일낮예배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1-9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을 약속하십니다.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복, 그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은혜로 택하시고, 네 가지 약속을 주십니다. 큰 민족이 되는 복, 이름이 창대해지는 복, 복의 근원이 되는 복, 하나님 보호의 복입니다. 이것은 오늘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첫째, 옛 삶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첫 말씀이 떠나라는 것입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그러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떠나라’는 말씀의 의미가 뭡니까?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직장을 버리고, 부모 형제를 포기하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것은 우리 옛 습관, 옛 사람, 우리 옛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옛 사람이 깨지고, 옛 사람이 무너지고, 옛 사람이 죽지 않으면 새 사람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풍속을 따르려는 우리 옛 사람과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자아가 깨지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삶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이유는, 그곳이 하나님을 섬기기에 온전치 못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기에 적합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내 옛 생활이 아무리 내게 만족을 준다 해도 그 생활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갈대아 우르에서 떠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주인공, 복의 통로로 쓰임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을 통해서 자랍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때 아브라함 반응이 뭡니까?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4)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때도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합니다. 순종은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외로움의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을 들은 후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큰 고민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내에게도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갑니다. 이것이 순종의 길입니다. 또한 순종은 불확실의 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앞의 일을 미리 보여주시면서 순종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실 때도 목적지를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 일단 먼저 떠나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앞에 두고 요단강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요단강 물에 발을 내딛으라고 하십니다. 여전히 물은 넘실거리지만 믿음으로 건너라는 것입니다. 가나혼인잔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물을 떠서 갖다 주라고만 하셨습니다. 결과를 미리 알고 행하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환경을 보지 말고,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만 보고 행하는 것, 그것이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오직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순종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았고,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 가나안 땅은 광야와 산지밖에 없는 메마른 땅이었습니다. 당장 먹을 양식조차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낭패와 위기를 당하고 맙니다.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한 아브라함은 다시 가나안으로 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위기 가운데서 보호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생각과 관점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삶을 결단하고,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우리 인생과 사역의 방향을 정해줍니다. 우리는 흔히 복이라고 하면 건강, 물질, 출세 등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복된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이 불의한 세상에서 어떻게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면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은혜를 체험하면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예배드리다가 부정한 자기 입술의 정결함을 체험했듯이, 이 세상이 악해질수록 예배에 힘써 더 이상 세속화되지 않도록 나를 하나님께 묶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의 통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비결은 예배 중심의 삶입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난 사람은 아브라함 혼자만이 아닙니다. 조카 롯도 함께 떠났습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지 못했습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갔다가 그 자손들이 다 멸망하고 맙니다. 결국 아브라함만이 믿음의 조상,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같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우리 길이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쪼록 아브라함 같이 축복의 길을 향해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의 통로가 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주께 피하는 자 (시편 17 : 6-9) 12.02.06 다음글큰 은혜를 사모하라 (열왕기하 4 : 1-7)12.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