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은혜를 사모하라 (열왕기하 4 : 1-7)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8,164회 작성일 2012-01-25 14:48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2.1.15.주일낮예배 큰 은혜를 사모하라 열왕기하 4 : 1-7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방법은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아무리 도와주시려고 해도 믿음이 없는 자는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이것을 믿느냐?” 물으신 후에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하시면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큰 믿음이 있는 자에게 크게 역사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운영하는 선지학교, 요즘 말로 말하면 신학교에 다니는 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가 부인과 두 자녀를 두고 갑자기 죽은 것입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잃고 살 길이 막연합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 근근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엄청난 빚더미 위에 앉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자녀가 노예로 팔리게 되었고, 그래서 여인은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가 도움을 호소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때 엘리사는 이웃집에 다니며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려라... 그런 후에 문을 닫고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두 아들과 열심히 다니며 그릇을 빌려왔습니다. 그리고 엘리사 말대로 그릇마다 기름을 부었더니 기름이 그릇마다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그릇이 다했을 때 기름이 그쳤다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을 밑천으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큰 은혜, 차고 넘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 말씀은 믿음의 분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만일 이들이 그릇을 10개를 빌렸다면 하나님은 10개만큼 채워주시고, 30개를 빌려 왔다면 30개만큼 채워주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태산 같은 믿음이 있어 이웃 동네를 다니며 온갖 항아리를 빌려와 마당 가득 채웠다면 그 집은 기적의 기름 공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 하실 때, 믿음의 크기만큼 역사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 말씀은 네 믿음의 그릇만큼 내가 역사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저녁부터 군포지방 연합성회가 우리 교회에서 시작됩니다. 이번 성회, 불같은 성령의 은혜가 임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7, 80년대 임한 성령의 불이 강하게 역사하는 성회... 초대교회 임한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성회... 잃어버린 첫 사랑을 회복하고, 문제 해결 받고 응답과 기적을 체험하는 성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릇을 준비하되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큰 그릇을 준비하되 많이 준비하고, 그래서 믿음대로 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합니다. 아무쪼록 큰 믿음 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고 풍성하게 받고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큰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인가? 본문의 여인이 큰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뭡니까? 첫째, 자기 부족을 알고 엘리사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부족함 가운데 살아갑니다. 물질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사랑이 부족해서 마음이 상하고, 건강이 부족해서 아픔 속에 살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부족해서 원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아시고 이 땅에 오셔서 오병이어 기적으로 물질 부족을 채워주시고, 병자들을 치료해주셔서 아픔을 극복하게 하시고, 사랑을 이 땅에 하수같이 흘리셔서 위로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부족함을 고백하며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여인은 부족함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남편도 죽고 두 아들은 종으로 팔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에 얼마나 고통이 되었겠습니까? 어떤 노력을 해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때 이 여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뭐냐면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엘리사가 돈이 많은 부자이기 때문에?...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호소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나 지금이나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사건으로 인해 야밤에 외삼촌 라반 집으로 도망가는 처지가 됩니다. 어찌 보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벧엘이라는 광야에서 기도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하늘 문이 열리는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자손 번성의 축복과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 임마누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평생 동안 꿈속에서 만난 하나님, 그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마침내는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다가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다 보면 새로운 하나님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120문도도 오로지 기도에 힘쓰다가 하늘 문이 열리면서 성령이 비같이 쏟아지고, 불이 쏟아져 불 체험을 하고, 방언의 은사가 터지고, 각양각색 은사가 터지면서 성령충만을 경험했습니다. 교회가 전혀 기도에 힘쓸 때 감옥에 갇혔던 베드로는 극적으로 천사의 도움을 받아 탈옥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옥중에서 전혀 기도에 힘썼던 바울과 실라가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니 그와 그 가정이 구원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큰 은혜는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그릇이 큰 사람이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81편 10절에 보면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누구나 부족한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요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유가 뭐냐면 기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족한 것을 주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저녁부터 있는 성회, 본문의 여인과 같이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부르짖는 성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입을 크게 열어 기도하셔서 믿음대로 되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내 영혼이 배고픕니다. 진리로 은혜로 축복으로 내 영혼을 채워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을 살려 달라고... 우리 가정을 살려 달라고... 우리 교회를 살려 달라고... 우리 민족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7절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무쪼록 구하고 찾고 두드리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내는 축복 성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다 응답받고 간증거리가 많은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큰 은혜는 큰 기도를 통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내게 있는 것을 주님께 맡기는 헌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희생과 헌신의 통로를 통해 역사하시고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심지 않는 것은 거둘 수가 없습니다. 심은 것만을 거두게 됩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고, 미움을 심으면 미움을 거두고, 축복을 심으면 축복을 거두고, 용서를 심으면 용서를 거두고, 물질을 심으면 물질을 거두고, 헌신을 심으면 헌신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항상 심은 것보다 많이 거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여인은 기름 한 병을 드렸더니 빌려온 그릇마다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모든 빚을 갚고, 남은 여생을 살아갈 수 있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려움이 닥치면 다른 곳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데 있는 것이나 남이 가진 것이 아닌 내게 있는 것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적을 베푸실 때 우리가 가진 것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든 적든 하나님께 드릴 때 그것을 기초로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실 때도 예수님은 한 소년의 헌신을 사용하셨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귀하게 보시고, 그것을 크게 보셨습니다. 마태복음 14장 17절로 18절에 보면,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제자들이 보는 것과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단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오병이어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떡과 고기를 보신 것입니다. 여러분, 헌신은 귀한 것입니다. 오병이어는 작지만 어린아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헌신을 축복하십니다. 이런 헌신에 감동하시고 응답하십니다. 이런 헌신을 통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결국 어린아이 헌신을 통해 남자 장정만 5천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엘리야 시대 3년 6개월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기근이 계속되었습니다. 얼마나 어려웠던지 사르밧 땅에 사는 한 과부는 마지막 한 끼니를 아들과 먹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그 마지막 남은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 말대로 두 식구 생명과도 같은 것을 엘리야에게 드렸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 내 전부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그 흉년이 다 지날 때까지 가루 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않는 축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건강이 있으면 건강으로, 시간이 있으면 시간으로, 물질이 있으면 물질로,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모여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금식하며 헌신했습니다. 6절에 보면,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막지대로 물이 아주 귀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물을 하나님 앞에 쏟아 붓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꼭대기에 무슨 물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880m 꼭대기까지 물을 길어 나르는 것입니다. 이는 전적 헌신을 의미하는 겁니다. 또한 물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즉 물을 쏟아 부었다는 것은 내 생명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종일 금식했다는 말씀도 생명을 드리는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산꼭대기까지 물을 길어다 붓고, 그러면서도 종일 금식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겠다, 내 생명까지도 드리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결국 이런 헌신이 있을 때 하나님은 블레셋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셨고, 잃어버렸던 땅을 회복시켜 주셨으며, 평안의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 영광이 임합니까? 마음과 삶을 헌신하는 사람, 생명도 드릴 수 있는 헌신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 가정에 회복과 평안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과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우연은 없습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누군가 희생하지 않고, 순교하지 않고는 교회가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쏟으셨습니다. 그때 풍성한 은혜와 구원이 넘쳤습니다. 가장 부요한 자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제대로 믿는 사람의 주변은 늘 부요합니다. 늘 평안합니다. 늘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연합성회, 본문의 여인과 같이 기름을 붓는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물을 쏟아 붇는 미스바성회의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부를 드리고, 산 아래서 물을 구해다 하나님께 바치는, 전폭적인 희생과 땀과 피와 눈물이 있는 성회가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수고할 자리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교회가 여러분을 필요로 할 때 구경꾼이 아니라 같이 기름을 붓고 물을 쏟고 기도 제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믿음으로 큰 그릇을 준비하는 순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말을 순종하고 따릅니다. 그 사람을 위해 쓰는 물질이나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그의 그림자라도 밟고 싶고 그가 있는 곳에 같이 있고 싶어합니다. 어떤 희생의 대가를 치른다 할지라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은혜가 있고, 사랑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은 어떻게 표현되는 것입니까? 순종입니다. 어떻게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경험하고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까? 바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여인은 엘리사 말에 순종합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가 시키는대로 순종합니다. 그릇을 빌리되 많이 빌려옵니다. 문을 닫으라는 말대로 문을 닫았습니다.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대로 기름을 부었습니다. 왜 그릇을 빌려와야 하는지, 굳이 많이 빌려와야 할 필요가 있는지, 꼭 문을 닫아야 하는지, 기름은 한 그릇 밖에 없는데 이 많은 그릇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한 마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기적이 일어나는데 그릇에 붓는 대로 그릇에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많은 빈 그릇에 기름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그것을 가져다 팔아서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적이요 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은 인간의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기적을 준비해 두셨다가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 받는 비결 세 번째가 뭡니까?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고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왕 군대장관 나아만이 나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를 통해 “병을 고치기 원한다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 고 합니다. “그러면 네 살이 회복될 것이라” 고 전했습니다.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내 생각에는’ 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물론 이런 때 내 생각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요단강물에 일곱 번 목욕하면 병이 낫는다고 하셨다 해도 우리에게는 이때 내 생각, 내 경험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내 생각과 경험과 상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생각을 고쳐 요단강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병이 깨끗하게 낫고 어린아이 살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하인들에게 물을 채우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물을 손님들에게 가져다주게 하셨습니다. 그때 하인들은 그 이유를 물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그 물을 손님들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이유를 묻지 않고 순종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 말씀하실 때 순종하며 따르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시골 한 통나무집에 한 병약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어서 집을 출입하는데 불편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집 앞에 있는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 남자는 하나님이 주신 응답이라고 믿고 매일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습니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날 무렵 그 남자는 점차 자신의 꿈에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바위 위치가 변한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위 위치를 정확히 측정해 보았더니 역시나 바위가 1인치도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현관에 앉아 지난 8개월 헛수고가 원통해서 울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찾아와 옆에 앉으며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울고 있느냐?” 그 남자가 대답합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만 했을 뿐이다. 이제 거울로 가서 네 자신을 보아라” 거울 앞에 선 남자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쳐진 그 남자는 더 이상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런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밤마다 하던 기침이 어느 새 사라져 버렸고 매일 기분이 상쾌했으며 밤이면 잠도 잘 잔 것 같았다’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은 바위 위치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일어난 변화는 바위를 옮겼기 때문이 아니라 바위를 밀었기 때문에 즉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순종하기가 어려운 것은 순종을 통해 표적이 일어날 것이란 기대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종은 표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의 증표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증표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 가장 큰 기적은 내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정이 변하고 일터가 변하고 나라와 민족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믿음의 그릇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큰 순종은 큰 그릇이요, 작은 순종은 작은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그 그릇에 따라 채워 주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했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무엇이든지 응답해 주시고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성회로 모일 때마다 순종의 빈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이 뭡니까? 은혜의 자리에 나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역사 현장에 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은혜 받기 위해 집중하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기도할 때 기도하고, 주님 말씀하시면 그대로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성회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렇게 순종해서, 나는 이렇게 헌신해서 이런 축복을 받아야지. 나는 이런 그릇을 준비해서 이런 은혜를 받아야지... 하는 영적 목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성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한 부자가 종들을 자유롭게 살게 해 주기로 작정하고는 종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내일부터 자유인이 되게 해 줄테니 마지막 부탁이 있다. 내일 아침까지 가늘고 긴 새끼를 꼬아라” 이 말을 듣고 어느 종은 내일이면 자유인이 될텐데 하며 그날 밤 친구 집에 놀러 갔습니다. 또 한 종은 그 동안 정을 생각해서 새끼를 꼬긴 꼬았는데 두껍게 대충 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종은 주인이 원하는 대로 가늘고 길게 정성을 다해 꼬았습니다. 다음날 주인은 엽전을 내주며 종들에게 자신들이 꼰 새끼에 엽전을 꿰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한 사람은 물끄러미 앉아 있었고, 한 사람은 몇 개 엽전 밖에 꿰질 못했으며, 오직 한 사람만이 많은 엽전을 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합니다. “이제 그 엽전을 꿴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가라. 내 선물이다”결국 최선을 다해 준비한 사람만이 최고 행복 최고 기쁨 최고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준비된 자에게 준비된 만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번 성회를 작정하시고 준비하셨습니다. 복을 주시려고, 은혜를 부어주시려고 축복을 작정하시고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 받기를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변화를 소원하시고, 기적을 소원하시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의 큰 그릇, 헌신의 큰 그릇, 순종의 큰 그릇... 하나님은 믿음으로 준비한 만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큰 은혜를 사모함으로 간증할 것이 많은 성회,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리는 교회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1-9) 12.02.06 다음글믿음으로 출발하라 (마가복음 5 : 25-34)12.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