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11.07.31. 주일낮예배 "죽음의 독을 제거하라"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713회 작성일 2011-12-09 23:47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밴드 주소복사

본문

2011.7.31.주일낮예배

죽음의 독을 제거하라 열왕기하 4 : 38-41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엘리사 시대, 길갈이라는 곳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길갈에 있는 선지자 학교를 방문합니다. 엘리사는 큰 솥을 가져다가 국을 끓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 중 하나가 국에 넣을 채소를 캐러 들에 갔다가 들호박을 따왔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국에 넣고 끓여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그 국은 독이 가득하게 되었고, 엘리사의 명대로 가루를 가져다가 국에 넣엇을 때 독이 제거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죽음의 위기 가운데 살아갑니다. 영적인 죽음의 독, 육적, 환경적인 죽음의 독... 모든 인생은 본문의 제자들처럼 죽음의 독 앞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런 죽음의 독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문이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첫째, 선택과 판단의 중요성입니다.

 

엘리사는 솥을 걸고 국을 끓이라 합니다. 그 다음 어떻게 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우리 판단이 중요합니다. 바른 선택은 삶을 복되고 보람있게 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하지만 옳지 못한 선택은 큰 손해를 가져오고 그 영향은 평생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택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날 때 신앙적인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잘못된 판단을 한 이유가 뭔가? 배고픔에 지친 한 제자가 보기에 먹음직하다는 판단으로 들호박을 따왔고, 결국 모든 제자들이 죽음의 독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영육간에 건강을 잃으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독이 우리 신앙과 삶에 침투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과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겁니다. 잘못된 판단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나만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을 준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나를 보세요.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하나님은 바다에 큰 풍랑을 일으키고 배의 선원들과 모든 승객들은 고난 뿐 아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다에 던져야 했습니다. 요나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큰 환난을 자초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바른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죽음의 독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믿음으로 우리 앞에 놓인 사건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부르짖는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제자들은 죽음의 독이 들어있는 국을 맛보고는 엘리사에게 부르짖었습니다(40). 이것이 환난당한 성도들이 행할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고통가운데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 종으로 있을 때도, 70년 동안 포로로 잡혀갔을 때도 그들 기도와 신음소리를 듣고 응답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또 나라가 앗수르 침입으로 인해 위기에 놓여 있을 때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응답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맹인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절규했을 때 그 기도를 들어주셨고,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딸의 병을 고쳐주셨으며, 나인성 과부의 통곡을 들으시고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기도는 어떤 환경과 사탄과도 대처할 수 있는 최고 무기입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앞에 놓여있지는 않습니까? 죽음의 독이 있으면 외쳐야 하며, 죽음의 독을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죽음의 독은 힘을 잃어버리고, 사망의 세력들이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과 은혜 가운데 고난을 넉넉히 극복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희생의 중요성입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가루를 가져오라고 하고는 죽음의 독이 가득한 솥에 넣게 했습니다.(41) 여기서 가루는 완전히 부서져 본래 모습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해결할 수 없는 고난이 올때 가루처럼 부서지고, 희생하며, 나를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친서와 많은 선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갑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오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그때 나아만은 분노하고 상한 감정을 표출합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들어갔을 때 나병에서 고침받았습니다. 요단강 물에 들어갔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루가 되어 완전히 부서진 존재가 될 때 화를 복으로, 재앙을 축복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제도 중에 소제라고 있습니다. 소제는 곡물을 고운 가루로 빻아 드리는 제사입니다. 고운 가루가 된다는 것은 깨진다, 부서진다는 말입니다. 덩어리를 깨고 부수고 채에 흔드는 과정을 통해 가루가 될때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할 수 있고, 영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소제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가루가 될 정도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당신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와 사망의 독을 제거하시고, 구원의 반열에 서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 되게 하고, 인간과 인간이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서지고 빻아져 고운 가루가 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가정도, 직장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죽음의 독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희생의 제물이 될 때 죽음의 독을 기적과 축복으로, 희망으로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죽음의 독 앞에 서게 됩니다. 어떤 사건을 만나든지 영적으로 해석하고 내 사건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선택과 판단에서 승리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고, 고운 가루, 희생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확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