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10.12.19. 주일낮예배 "희망의 주가 오신다"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248회 작성일 2011-12-0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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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9.주일낮예배

희망의 주가 오신다 이사야 40 : 1-11

중세 사람들은 포르투칼이 지구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스본이라는 항구에 해안이 끝나는 곳에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이 바위에 다음과 같은 말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가 끝이다. 이 너머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1492년 한 사람이 이 항구에서 작은 배에 오르면서 외쳤습니다. “이 글은 사실이 아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저 너머엔 위대한 희망의 세계가 있다그가 바로 콜롬부스입니다. 그는 결국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여정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문제가 있습니까?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 오심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와 오랜 기간 힘든 삶을 살면서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러분, 포로생활이란 내일의 희망이 전혀 없는 암흑의 시간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소망의 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든 것이 끝난 것과 같은,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과 자유를 주신다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탄은 희망의 절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떻게 희망으로 오시는 주님을 은혜롭게, 복되게 맞이할 수 있는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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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내 백성을 위로하라.

 

모든 사람은 누구나 슬픔과 고통 중에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일일이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아픈 사연을 갖고 살아갑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게 뭡니까? 바로 위로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면 위로가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통과 슬픔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살펴주십니다. 그 모든 고통과 슬픔을 딛고 일어서게 해줍니다.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고통받는 자기 백성들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메시지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존엄성도, 자존심도 다 뺏긴 채 이방 민족에 잡혀 강제노동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국으로 돌아갈 꿈마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희망이 끊어지고, 고난이 극에 달했을 때, 그 정확한 타이밍에 하나님의 위로 메시지가 선포된 것입니다. 너희 포로생활이 끝났다... 이제 고난의 삶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끝이 났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상처받은 영혼, 고통가운데 있는 영혼을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수없는 고난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위로해주심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1700년대 아주 뛰어난 음악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재능이 뛰어났는데도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돈을 들여 음악회를 열었는데 계속 실패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빚을 지고,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실망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56세가 되었을 때 몸 한쪽에 마비 증상까지 오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여러 빚쟁이들이 찾아와 괴롭히고, 삶의 의욕을 잃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실망에 가득한 음악가에게 책 한 권을 주면서 이 책을 읽고 한번 작곡해 보게. 이 말씀 주인이 자네를 다시 일으켜 줄 것일세.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아직 너무 빠르지 않은가?” 라고 했습니다.

음악가는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 깊이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그 분을 주제로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24일간 침식을 잊은 채 작곡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곡이 바로 헨델의 메시야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낙심하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존엄성도 자존심도 다 뺏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힘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마음 깊은 상처와 실패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우리가 남은 인생 자유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뭡니까? 바로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상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감추고 싶은 문제까지도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깨진 자아도, 실패도, 무너진 자존심도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찾아와 어루만져 주시고,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성탄을 맞이하면서 주님의 위로의 은총을 경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지난 금요일 우리 지방에 원로목사님들이 방문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들 섬기는 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어떻게 섬길까 하다가 홍삼을 준비해서 대접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목사님들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누군가 손님이 온다고 하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들을 할 것입니다. 집안을 청소하기도 하고,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오늘 영유아 세례식이 있습니다. 영유아 세례는 부모 믿음을 근거해서 베푸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부모 준비가 필요합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세례교육을 통해서 준비하고, 또한 지혜와 총명과 믿음을 겸비한 아이로 양육하기 위해 계획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세례 받는 모든 유아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건강과 세계 모든 민족가운데 뛰어나게 되는 복이 임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 부모님들 성령 충만해서 믿음으로 잘 양육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모든 일에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 그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포로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될 것이 뭡니까? 성탄절,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이 본문 3-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마음의 골짜기를 돋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골짜기는 사람의 어두운 마음을 말합니다. 즉 골짜기를 돋우라는 것은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는 죄악을 깨끗이 하라, 죄로 물든 마음을 밝은 마음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영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보다 앞서 온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인생의 길을 죄로 물들이고 있지는 않았는가? 올 한해 죄로 인해 고통가운데 보내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마음에 어둔 골짜기가 생기지는 않았는가? 성탄을 기다리며 먼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해야 살고, 회개해야 주님 모실 수 있고, 회개해야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멸망이 예고된 두 도시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돔성이고, 또 하나는 니느웨성입니다. 두 도시 모두 죄악이 넘쳤던 곳입니다. 소돔성은 롯을 통해 하나님 경고를 들었고, 니느웨성은 요나를 통해 하나님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두 도시 중 소돔성만 멸망당하고, 니느웨성은 구원받았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바로 회개 차이입니다. 소돔은 회개를 거부했고, 니느웨는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짐승까지도 모두 회개했습니다. 결국 니느웨는 구원받았지만, 소돔성은 유황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회개해야 살고, 회개해야 우리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회개해야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성탄절,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실 수 있도록 먼저 여러분 심령을 정결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2) 높은 곳을 평탄케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온갖 교만과 이기심으로 마음이 높아져 있습니다. 높아져 있는 우리 마음이 낮아지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낮아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낮아지지 않으면 하나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 문제는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자기들 의를 내세우면서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판단했습니다. 자기 의를 사람들 앞에 내세우기 좋아하고, 자기 공로를 내세우고, 스스로 자기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높아진 바리새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모시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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