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09.10.04. 주일낮예배 "핵심가치에 집중하라"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598회 작성일 2011-12-0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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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4.주일낮예배

핵심가치에 집중하라 누가복음 2 : 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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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살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생을 의미있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단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단순하게 하고, 재정을 단순하게 하고, 시간, 관계, 가정, 그리고 자신의 생활을 단순화시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핵심에 집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 본질에 집중하고, 인생은 인생 본질에 집중하고, 가정은 가정이 무엇인가? 그 본래 의미를 찾아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믿음의 핵심, 복음의 핵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가 모든 인류 문제의 해결이라고 하는 거, 예수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없고, 예수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이 땅에 하나도 없습니다. 죄의 문제도, 영생의 문제도 예수로 풀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 문제도 예수로 풀리고, 사회 문제도, 국가 문제도 예수로 풀립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 갈등도, 자녀 문제도, 고부간 갈등도 예수만 그 가정에 들어가 보세요. 예수 안에서 다 해결되어진다고 하는 거, 그래서 예수는 복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믿음의 본질이요, 핵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본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나옵니다.

본문은 어린 예수님이 이스라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맞이해서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한 주간 명절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룻길을 간 후에야 비로소 예수가 없어진 것을 알고, 예수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핵심가치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주님 전에 나와 예배드리고 있지만, 혹시 예수님을 잃어버린 예수쟁이는 아닌가? 우리가 예수를 잃어버린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이 시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핵심에 집중하는 신앙생활, 교회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은혜받으시고 본질을 잃어버리지 말고, 핵심가치에 집중하는 결단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착각하는 신앙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기들과 동행하고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본문 44절을 보면,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과 동행중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막연히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생각없이 집중하지 않고 길을 갔습니다. '자신들 뒤를 따라오겠지' '친척들과 함께 따라오겠지',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착각 때문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하는 거,

여러분, 우리는 착각 속에서 인생을 살아갈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이솝 우화중에 '이리의 그림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리 한 마리가 산 속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저녁때라 이리 그림자가 굉장히 크게 보였습니다. 그것을 본 이리는 뽐내며 말합니다. '나는 내 몸이 이렇게 큰 줄을 미처 몰랐구나. 이런 몸집이라면 사자라도 이길 수 있겠지. 내가 지금까지 바보노릇만 했어. 왜 지금까지 사자에게 꼼짝 못하고 무서워 떨기만 했을까? 나야말로 동물의 왕으로 대접받을 만하지 않은가?' 이리는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쭐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사자가 이리를 보고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도망갔을 텐데, 이리가 사자를 보고 큰 소리를 칩니다.

"살살 걸어오지 말고, 어서 빨리 오너라. 이제 네 임금 자리를 내게 내놓아야 될 때가 왔다" 이리는 거만한 태도로 사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자는 이리에게 쏜살같이 달려들어 한 발로 쳐서 죽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착각 속에서 살 때가 많습니다. 그림자의 허상이 사실의 진상인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만큼은 대박이 날 꺼다 라고 하는 착각, 돈을 많이 벌면 자기 인생이 행복할 것이다 라고 하는 착각, 저 사람이 날 사랑하는 것 같다고 하는 착각, 그런데 이것이 착각이었음을 알 때 그 삶이 얼마나 허무하고 고통스럽습니까?

착각은 세월을 낭비하게 합니다. 착각은 본분을 망각하게 하고, 세상에 속아 살게 합니다. 인생을 손해 보게 하고, 물질을 허비하게 합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생명까지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착각하지 않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착각은 일상생활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앙생활에도 '착각 신앙'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 신앙의 착각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면 신앙의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정복했습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없습니다. 작전도 전략도 전술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 그들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여리고성을 돌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을 정복한 이스라엘은 그것을 자신들이 이룬 승리로 착각을 합니다. 이들이 착각했다는 증거는 그 다음 성 아이성을 치러 가는 과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한 후에 아이성을 정탐한 이스라엘은 다 올라갈 것 없다고 자만합니다. 그래서 이삼천명만 가도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이성은 작고 사람이 적다. 그러니 백성들 모두가 다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은 이스라엘 백성 수에 있지 않았습니다. 전략에 있지도 않고, 전술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것, 그 믿음과 순종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영적 무기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승리 후에 착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여리고성을 정복한 것으로 자만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처절하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착각하는 신앙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이런 결과 속에서 오래 신앙생활하면 안됩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 물었더라면, 하나님을 의지했더라면, 하나님과 동행했더라면 이런 실패, 이런 고통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착각하는 신앙이 되지 않기 위해 진리를 옳게 분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신앙의 핵심인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알았다고 하면, 예수님의 소중함을 알았다고 하면, 그래서 예수님을 앞세우고, 예수님의 손을 잡고, 관심을 가졌다고 하면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사흘동안 근심하며 고통과 괴로움, 슬픔 속에서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착각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신앙의 범위 안에 있다고, 종교 행위의 범위 안에 있다고, 그것이 마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정작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지 않으면서 교회에 나오고, 예배드리기 때문에, 신앙형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자신이 마치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 것처럼, 믿음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예수가 없는 신앙생활, 예수를 잃어버린 신앙생활은 착각하는 신앙이라고 하는 거, 어느 목사님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옆자리에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그러자 그 젊은 남자는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장로님입니다. 제 아내가 집사이고, 저도 교회 집사입니다" "아니, 교회 직분 말고 선생님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목사님은 이런 질문을 남기고 다음 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떠나고 난 다음 그 사람 귓가에 쟁쟁거리는 소리가 남아있었습니다. "당신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그래서 그는 정말 내속에 예수님이 계신 것일까? 내 생각속에 예수님이 계실까? 내 언어속에, 내가 행복하다고 하는 이 심장 속에 예수님이 계신 것일까?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 예수 안에 들어가 있는가? 예수 밖에 있지는 않는가?

여러분, 내가 교회 다니니까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지, 내가 교회 다닌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교회 집사가 되었으니 예수님이 계시겠지, 그런 막연한 추측 말고 정말 내 삶속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걸어가는 삶의 자국마다 예수님이 계신 걸까? 내가 몸부림치고 고통하고 힘들어하는 그 현장에 예수님이 나를 지켜주고 계시는 것일까? 내가 기뻐하는 그 기쁨 한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는 것일까?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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