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09.09.06. 주일낮예배 "사방을 평안케 하는 은혜"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682회 작성일 2011-12-0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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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6.주일낮예배

사방을 평안케 하는 은혜 요한복음 14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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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포드 라는 분은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한 대학 교수이며 변호사입니다. 그는 신앙이 좋은 부인과 예쁘고 똑똑한 네 딸을 둔 가정의 가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가정에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시카고 대화재로 모든 재산을 다 잃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위로 차 부인과 네 딸을 프랑스로 여행을 보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가다가 대서양에서 그들이 탄 배가 파선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220명이 죽었는데, 그 중에는 네 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프랑스로 가서 유일한 생존자인 부인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배가 침몰한 지점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때 부인이 말합니다. "여보, 우리 아이들 넷이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잠깐 헤어져 있는 것뿐이고 천국에서 만날 거예요"

그때 부인 말을 들은 스페포드 씨가 가슴이 너무 뜨거워져서 그 입에서 시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시가 바로 찬송가 413장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 이해할 수 없는 평안, 환경을 초월한 평안입니다.

여러분, 이런 평안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누구를 만나시든지 구원의 복과 평안의 복으로 축복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안의 복을 빌어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 모습은 본문에서도 나타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면, 왜 예수님은 평안에 대해 강조하신 것일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가장 필요한 복이 평안의 축복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은 고해와 같은 세상.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 것과 같은 세상.

- 용서보다는 돌을 들어 사람을 치려 하는 세상.

- 제자가 스승을 배신하고 그것도 모자라 스승을 팔아 버리는 세상.

- 강도 만나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세상.

예수님은 이런 세상 한가운데서 불안과 두려움으로 살아가야 할 제자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축복보다도 평안의 복, 영적인 축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평안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 갈등과 다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자연 재해와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종 플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합니까?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 가진 사람이나 가지지 못한 사람, 올라간 사람이나 오르지 못한 사람, 누구 할 것 없이 평안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안의 복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거, 환경까지도 초월하는 평안의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이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 은혜 받으셔서 여러분 모두 주님 주시는 평안이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평안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사람은 평안의 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평안을 잃어버리고 두려워하며 불안한 인생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1)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 에덴동산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범죄하게 된 순간 평안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범죄했을 때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이 두려움이었습니다. 죄를 짓고 나자 하나님이 두려워 숨은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의미하는 게 뭡니까? 평안이 깨졌다는 말입니다. 죄가 있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 결코 평안을 누릴 수 없다고 하는 거,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얼마나 큰 죄입니까? 다윗은 몸은 비록 궁궐에 있었지만 마음은 지옥에 있었습니다. 시편 323절로 4절에 보세요.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지만, 마음이 괴로워서 목을 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원수되게 합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면 평안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하는 거,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2)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때문입니다.

지나친 욕심은 평안을 빼앗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면 원망과 불평이 앞서고, 욕심이 극대화됩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사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욕심 때문에 사도 베드로를 속였습니다. 결국 둘 다 그 자리에서 죽지 않았습니까? 사울왕은 욕심과 시기 때문에 평생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이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사무엘상 1614절에 보면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다" 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평안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죽음을 가져온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 사람들은 더 가지고, 더 많이 쌓아두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망이 결국 평안을 빼앗는다고 하는 거,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왜 근심과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난다는 말씀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말씀은 십자가 죽음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손에서 곧 구원하실 거다. 그래서 나름대로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도 같았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믿고 따랐는데, 아무 보상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허탈하기도 하고 장래가 두렵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다면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을까 염려가 앞섰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제자들의 무지이고 불신앙이었습니다. 모든 근심과 두려움은 무지와 불신앙에서 온다고 하는 거,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셔야 한다는 것을 믿었다면,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면, 즉 하나님 구원의 섭리를 믿었다면 근심도 걱정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하고 근심한다고 하는 거, 그래서 삶의 목표가 흔들리고 초점 없는 인생,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염려나 근심은 사탄이 사용하는 무기라고 하는 거, 사탄은 염려와 근심이라는 무기를 이용해서 믿는 자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마침내는 신앙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면 어떻게 평안의 복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1)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은 죄를 범할 때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양심이 소리를 치고 성령이 속에서 근심하게 되니 평안이 깨지고 불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의 삶을 살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세요. 주님의 평안은 먼저 의로웠기에 누리는 평안입니다. 이제 주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그런데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주님은 평안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오르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주님은 의로우셨기에 마음이 평안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안은 의로울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죄 때문에 지는 십자가라면 마음이 평안했겠습니까?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요,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지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려울 것이 없고, 평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만 필 박사는 하루에 두번 이상 마음을 비워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영과 혼과 육이 튼튼해서 능력있는 생활과 창조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쓰레기통에 음식물 찌꺼기가 있으면 날파리가 몰려들듯이 우리 마음속에 잘못된 죄를 그대로 쌓아 두면 마귀가 몰려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슬픔, 고민, 불안과 같은 것을 깨끗이 씻어 버려야 합니다. 특별히 죄를 회개하고 씻어 버려야 합니다. 날마다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화의 삶이 강해야 합니다. 말씀을 대할 때 성화되고, 때로는 은혜로운 분을 만날 때도 성화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혹시 은혜롭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도 그때 자신을 돌아보면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 거, 그때 우리 죄악 된 자아가 깨지고 인격과 신앙이 바탕이 된 자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때 거룩해지고, 거룩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성화의 삶을 살아갈 때, 그때 어떤 환경에서도 평안할 수 있다고 하는 거,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지각으로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각으로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추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우리 뜻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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