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09.08.23. 주일낮예배 "끝이 아름다운 인생 "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276회 작성일 2011-12-09 11:34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밴드 주소복사

본문

2009. 8. 23. 주일낮예배
창세기 50 : 1-3 "끝이 아름다운 인생"


올해는 유달리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는 한 해인 것 같습니다. 우리 곁에 계셔야 될 분들이 한분 한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보며 생각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반드시 마지막이 있다는 것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박정희 대통령도 하나의 무덤만 남아 있습니다. 돈 많던 재벌 이병철씨도, 정주영씨도 천년만년 살 것 같았지만,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심판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삶이고 신앙인의 삶이라고 하는 거,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생은 천년 살 것 같이 계획성을 가지고 살되 동시에 내일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고 하는 심정으로 살라”, 계획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되 의미가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가치가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의미가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 본문에 보면 야곱이라는 사람이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인생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은혜 받으시고, 여러분도 언젠가 마지막이 오겠는데, 그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해보자... 그래서 야곱과 같은 평가를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동시에 내 마지막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림을 그려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이 아름다울려고 하면,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끝이 더 좋은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목표는 끝이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야곱은 처음보다 끝이 좋았던 사람입니다. 창세기 47장 9절에 보면,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복중에서부터 투쟁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쌍둥이 형 에서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팥죽 한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았고,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 축복을 받았습니다. 결국 에서를 피해 외삼촌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거기서 20년 동안 종살이를 합니다.
그후 가나안 땅에 돌아오게 되는데, 돌아오는 길목에 형 에서가 400명 사병을 이끌고 자기를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세겜이라는 지역으로 내려갔다가 외동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 가정은 멸절 위기를 당하기도 합니다. 가장 아끼던 아들 요셉을 잃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요셉이 살아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가 130세였습니다. 그는 인생을 돌아보며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아픔 많은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을 합니다. 얼마나 파란만장한 인생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야곱만 이렇게 파란만장한 것이 아닙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어르신들은 인생을 돌아보면 삶 자체가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을 겁니다. 여러분 부모님들을 보세요. 얼마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야곱을 기억하시고 그의 인생 말년을 축복하셨습니다. 애굽 총리가 된 아들 요셉을 찾게 되었고, 후일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 각 지파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죽는 장면을 보세요. 본문에 보면 야곱이 죽었을 때 향을 바르는 데만 40일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애굽 사람들이 70일 동안 곡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죽은 후 모든 애굽 사람이 70일이나 곡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가서 야곱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시신을 운상합니다. 그런데 고위 권력자들은 물론이요 장례행렬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야곱은 말년이 더 복되고 아름다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녀를 잘 만난 덕분입니다. 요셉이라고 하는 아들을 잘 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만 어쨌든 야곱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름답게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거, 이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여러분, 시작은 화려하고 좋은데 끝이 불안하고 초라하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이땅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야곱은 시작은 어려웠어요.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큰 축복으로 이어지더니 마지막에는 세상 어떤 군왕보다도, 어떤 제왕보다도 화려하게 인생을 마치고 세상을 끝냈습니다.
여러분, 믿는 사람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시작보다 끝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최후 승자다."
예수님 생애도 처음보다 끝이 아름다운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태어나자마자 헤롯이 죽인다고 해서 애굽으로 피난을 갑니다. 공생애가 시작되면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모함을 당합니다. 마침내는 처참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 생애가 죽음으로 끝났다면 실패한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흘만에 약속하신 대로 다시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고, 지금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 구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여주신 것입니다. 시작은 비참했지만 나중은 위대한 분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우리에게도 약속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다 보면 고난이라는 것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너무 지쳐서 낙심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하는 거,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역전의 기회가 있습니다. 요셉도, 나오미도, 다윗도 모두 이런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욥기 8장 7절을 보세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야곱은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은 더 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믿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야곱은 사기꾼이요, 사람을 속이는데 일인자와 같을 정도로 그 머리가 탁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잘되게 하셨습니다. 야곱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을 잘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야곱의 다른 것을 보신 것이 아니라 믿음만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잘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이 있으면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지 믿음으로 여러분의 시간을 다스리시고, 믿음으로 여러분의 물질을 다스리시고, 믿음으로 여러분의 성품을 다스리시고, 믿음으로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시면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잘되는 복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것을 보시지 않고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믿음으로 사람을 보고 믿음으로 자신을 봤습니다. 믿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목동에서 장군으로, 장군에서 제왕으로... 손바닥만한 영토가 후에는 수십배, 수백배로 늘어나는 축복을 받고... 5,000년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헐벗고, 굶주리고 얼마나 많은 노략을 받았으며 얼마나 많은 것으로 고통을 받는 나라였습니까? 그런데 조공을 받는 나라로 주변의 나라들이 우습게 여기지 못하고 조공을 들고 올 정도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끝이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면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야곱과 같이 복있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비록 출발이나 과정에 슬픔이 있고, 아픔과 답답함이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셔서 야곱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잘되는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끝은 아름다워져 간다고 하는 거, 믿음으로 시간을 쓰고, 믿음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대하고, 믿음으로 자기 인생을 다스리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워진다고 하는 거, 기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소속이 분명한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49장 29절을 보면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야곱이 자손들에게 유언한 말씀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몸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총리 아버지니 애굽에 장지를 정했다면 굉장한 무덤을 세웠을 겁니다. 요셉은 당대 최고의 권력자자 아닙니까?
그러나 야곱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그런 것에 마음을 묻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묻힌 곳, 아버지 이삭이 묻힌 곳, 바로 그곳이 자기가 가야할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애굽은 이 세상을 상징하고,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죽지만 몸은 가나안 땅, 천국으로 올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야곱은 죽음을 통해 자기 소속을 분명히 자손들에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죽은 것을 죽음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조상들에게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이삭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죽음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두가지로 살펴보면
먼저 죽음이란 위치 변경입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들이 잠시 거쳐가는 여관이요 잠시 쉬는 기차역과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죽으면 우리 육신은 이 땅에 묻힐지 몰라도 우리 영혼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으로 옮겨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유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인생이 잠시 이 땅에서 살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면 죽음은 더 좋은 위치로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우리 믿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임종하는 사람들 모습을 몇 가지 유형별로 분류했습니다.
① 안죽어형 : 평생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죽음에 대한 마음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형입니다.
② 왜죽어형 : 분노를 터뜨리면서 죽어가는 형입니다. 죽을 이유가 없는데 왜 죽어야 하는지 억울해 하면서 죽는 사람입니다.
③ 간청형 : 죽음 앞에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면서, 자기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 보고자 애걸복걸하는 형입니다.
④ 절망형 : 죽음 앞에서 충격을 너무 많이 받아 정신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죽는 사람들입니다.
⑤ 승리형 : 인생 마지막 순간에는 부활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아름답게 인생을 끝내는 형입니다.
여러분, 승리형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죽음은 위치가 변경되어진다고 하는 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 위치가 변경되는 거,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죽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음에는 분리 의미가 있습니다. 영혼과 육신의 분리,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분리,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가 됩니다. 지금은 이 땅에서 다같이 살아가지만 반드시 마지막날에 믿는 자는 천국으로,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분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과 지옥은 어떤 곳이냐?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보면 천국과 지옥이 어떤 곳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1) 믿는 자들이 가는 나라입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품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이는 천국은 예수 믿는 자들이 가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곳, 믿음의 사람들만 갈 수 있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2) 위로 받는 나라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곳입니다. 나사로는 천국에 가서 이 세상에서 받았던 모든 고통과 슬픔을 다 잊고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을 보면 천국은 모든 눈물이 씻겨지는 곳, 다시는 죽음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 당했던 모든 고통과 아픔 설움이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천국과 다른 곳이 지옥입니다.
1) 고통이 계속되는 곳입니다.
지옥은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입니다. 부자는 내가 불꽃 가운데서 고민한다고 소리쳤습니다. 사람이 당하는 고통 가운데 화상 고통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시대에는 예수 믿다가 잡히면 화형을 시켰습니다. 지옥에 간 부자가 지금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손과 발이 범죄하면 찍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온몸이 성해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지옥에 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지옥은 너무 고통스런 곳이기 때문에...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곳, 고통만 계속되는 곳, 거기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자비가 완전히 단절된 곳입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두 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하나는 나사로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물 한 바가지도 아니고, 한 술도 아니고, 손가락 끝에 찍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요구가 거절되었습니다. 물 한 방울 자비도 거절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두 번째 요청은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 형제들에게 전도하여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요청도 거절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말씀 전하는 많은 전도인이 있는데 그들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전한다 해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만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만난 하나님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선인에게만 아니라 악인에게도 동일하게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지옥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작은 자비도 거절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거, 부자가 지옥에서 본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가 단절된 곳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라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3) 천국을 보면서도 접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천국에 있는 나사로는 지옥 고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 있는 부자는 천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거지 나사로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천국에서 지옥을 본다고 하면 천국이 아닐 겁니다. 독일 유명한 설교자 틸리케는 “지옥은 천국을 보면서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곳이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생활 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천국이 내 고향입니다. 저 지금 천국갑니다” 고백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은 자기 장례식 때 사용할 마지막 음성을 미리 녹음해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장례식 때 고인 육성을 들려주었습니다. 녹음기를 틀자 고인 육성이 흘러나옵니다.
“내 장례식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먼저 갑니다, 가서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가실 때 식사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여유가 있습니까? 손님들이 돌아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과연 예수 믿는 사람 종말은 이런 것이구나” 아마 큰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지막 멋있는 모습이며, 마지막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하는 거,
여러분, 스데반을 보세요. 그는 돌에 맞아 죽습니다. 예수 믿었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런데도 그 얼굴이 천사 얼굴처럼 빛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겁에 질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날아오는 돌에 온 몸이 상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순간에도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 천사와 같았다...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날아오는 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그 이유는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 겁니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천국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서서 자기를 쳐다보시는 모습을 스데반이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 소속이 뭐냐? 천국에 대한 소속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천국에 대한 소속이 분명했기 때문에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비굴해지거나 초라해지거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애굽땅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어린 시절을 생각해봅시다. 어릴 적 땅따먹기라는 놀이가 있습니다. 마당에 둥그런 원을 그리고 자기 위치를 정합니다. 그리고 힘껏 나갔다고 힘껏 자기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손톱이 아플 만큼 나갔다가... 때로는 싸우기도 하면서... 자기 땅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부릅니다. 왜? 밥 먹으라고... 그러면 다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싸우면서 땅 따먹은 거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누구도 그것에 대해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땅을 차지했다고 해도 엄마가 부르면 집으로 돌아가고 그러면 그만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렇게 바동바동 살지만 네가 잘했다 못했다 비교하며 열등의식 가지면서 욕심가지고 이렇게 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모든 것을 놓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놀이를 하고 있어도 해가 떨어지면 엄마가 부르면 그거 다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놓아두고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존재가 우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 어느 때 우리를 부르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의식으로 '오늘', '지금'이라는 시간에 최고 부가가치를 두고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몰라도 그 시간을 지혜롭게 선용하며 믿음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 나그네 인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야곱과 같이 천국이 내가 갈 곳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교회생활 승리하다가 천국에서 주님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믿음의 유산, 축복을 물려주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사람입니다. 야곱은 마지막에 자녀들에게 좋은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줍니다. 죽음을 앞둔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면서 미리 안수하고 축복을 해줍니다.
여러분, 축복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축복하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하는 거, 창세기 49장 28절,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은 유언으로 축복하면서 "나는 죽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믿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적인 힘이 있습니다. 믿음은 쓰레기에서 꽃을 피우는 신비한 능력도 있습니다. 믿음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권세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을 아들 이삭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이삭은 이 믿음을 아들 야곱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야곱은 이 믿음을 열두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수산나라는 여인은 자녀들에게 이 믿음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같은 믿음의 자손이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 자손에게 물려줄 유산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유산이라고 하면 먼저 물질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믿음의 유산을 물려줘야 합니다. 록펠러 어머니는 아들 록펠러에게 물려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신앙유산만 물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앙 유산을 물려받은 록펠러가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습니다.
금요성령집회때 말씀드린 것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은 믿음 있는 자를 축복하신다고 하는 거, 나오미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이 흉년을 피해 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갑니다. 잘 살아보려고 모압 땅에 간 것입니다. 거기서 두 아들을 장가를 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죽었습니다. 또 얼마 안되어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나오미가 생각하니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는 두 며느리를 만나 자기를 떠나라고 합니다. 나는 고향으로 갈테니 너희는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룻이라는 며느리가 어머니의 고향이 내 고향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따라나서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나오미는 사람들에게 나를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하라. 나오미라는 말은 기쁨이라는 뜻이고 마라라는 말은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자기는 괴로움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오미는 이렇게 괴로움이 많은 여인이었지만 믿음만큼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좋은 며느리 룻을 끝까지 붙여 주셨고, 며느리 룻은 남편 보아스를 만나는 복을 받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잘되는 복을 받습니다. 룻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잘되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들 믿음을 자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결국 그들 믿음을 통해 자손들이 잘되는 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 주변이 잘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사는 땅이 베들레헴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미와 룻의 믿음을 보시고 베들레헴 땅을 축복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얼마나 잘 믿든지 룻이 낳은 자손 가운데는 다윗이 태어나고, 그 자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금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자손들이 보면, 그게 바로 믿음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어려운 중에도 믿음만큼은 놓지 않고, 믿음으로 극복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면 자녀들은 그게 유산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도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 자녀들도 그 믿음을 가지고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또 승리했을 때 교만하지 않고, 어려움 당할 때 비굴해지지 않고, 그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나는 반드시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겠다고 하는 결단이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룻의 믿음은 그 자손을 넘어 전 인류에게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래서 전 인류가 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룻 계보에서 태어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전 인류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한 여인이 가졌던 신앙 때문에, 한 여인이 하나님을 바로 믿었기 때문에 누리는 축복은 엄청나다고 하는 거, 자신은 물론 함께 하는 사람, 지역과 나라와 민족까지 복을 나누어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믿음으로 살다가 우리 인생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 축복의 유산을 물려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물려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였던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이제는 자녀들에게 꿋꿋하게 믿음으로 홀로 서는 것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나아가고,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 엎드려 기도하며,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영적으로 승리하는 힘있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복을 받아야 나도 살고, 가정도, 지역도, 나라와 민족도 더불어 복을 받는다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여러분이 믿음으로 사셔서 믿음의 삶은 이런 것이다. 증거가 되고 교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합니다.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남겨야 되겠습니까? 오늘 야곱은 믿음으로 가문 속에서 역사 속에서 자녀들에게 떳떳한 이름을 남겼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출발이나 과정이 비록 힘들었다 할지라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앞으로 남은 인생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격과 신앙을 지키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끝이 좋은 인생, 소속이 분명한 인생, 믿음의 유산, 축복의 유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인생을 마무리할 때 미흡하지만 후회가 없는 인생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웃을 수 있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