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마가 다락방의 체험(사도행전 2 : 1-4)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6,286회 작성일 2016-08-01 10:48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밴드 주소복사

본문

마가 다락방의 체험 사도행전 2 : 1-4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고 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성령을 받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라”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드디어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고, 그곳에 모여 기도하던 120명이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 후부터 제자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며 제자훈련을 받았어도 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했지만, 성령 충만을 받은 후부터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 받은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가? 왜 우리는 마가 다락방의 체험을 해야 하는가?
 

1. 성령 충만하면 항상 기뻐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2:46-47)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13:52)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기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기쁨입니다. 성령은 기뻐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죄의 사슬이 끊어지고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해집니다. 그리하여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변하지 않았지만, 속사람이 자유해지니 거기서부터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괴롭고 힘든 일이 많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신 이유는 성령 안에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10:2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
 

2. 성령 충만하면 고난을 이기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4:28-29)
초대교회 제자들에게 유대인의 위협과 극심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협을 없애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위협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능욕받고 고난 받는 것을 합당하게 여겼으며, 고난 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5:41)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당당하게 고난에 맞섰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의 열매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가 있는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이 있고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기 전에는 작은 여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성령 충만을 받고나자 담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의로운 일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치가 있고 위대한 일을 위해, 아름다운 비전을 위해 다가오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안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힘을 주십니다.
 

3. 성령 충만하면 하나 되게 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4:32)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 물건을 통용할 정도로 한 마음 한 뜻을 품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는 자나 받는 자나 천국의 은혜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마음은 너무 굳어졌습니다. 너무 갈라집니다. 부부간에 갈라지고, 형제간에 갈라지고, 고부간에 갈라지고, 이웃 간에 갈라지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나누이고 분열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상처와 아픔과 갈등이 있습니까?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분열하게 만들고 일치를 파괴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일치와 연합의 영이십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의 은혜가 임하시면 메마른 심령이 부드러워지고, 갈라진 심령들이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36:26) 4:3에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고, 이 시대 우리 믿음의 사람이 가져야 할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 되게 하는 일에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을 하나 되게 하고, 일터를 하나 되게 하고,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 나라와 민족을 하나 되게 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성령 충만하면 능력 있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
성령은 능력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치유하고 회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 받은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 나면서부터 40년 동안 앉은뱅이 된 자가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5:12)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5:15-16)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민 없는 사람이 없고, 실패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고민과 염려로 가득하고 실패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통 가운데 절망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고통과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고, 희망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자에게 일어날 능력을 주시고, 새 힘을 공급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은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4:31)
성령 하나님은 겁쟁이가 변하여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게 하셨고, 박해자가 변하여 전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부흥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가 다락방 체험이 내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성령 충만함으로 고난을 이기고, 항상 기뻐하며, 하나 되기를 힘쓰는 능력 있는 성도, 이 시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포도원에서 땅끝까지 쓰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