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나인성의 기적(누가복음 7 : 11-17)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6,367회 작성일 2016-05-1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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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3.주일낮예배

나인성의 기적  누가복음 7 :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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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성은 기쁨의 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성에 큰 슬픔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한 과부의 독자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인성은 슬픔과 절망의 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절망의 길, 멸망의 길을 따라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 이 절망의 길이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기쁨의 길, 생명의 길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청년을 다시 살려주신 것입니다. 나인성에 예수님이 들어가시자 슬픔의 성이 기쁨의 성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길이 생명의 길로, 저주의 길이 축복의 길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절망의 나인성이 기적의 나인성으로 바뀌었는가?

 

1. 예수님이 나인성에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본문11-12) 오늘날 이 세상은 나인성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나인성이란 뜻 그대로 즐겁고 복되게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독자 아들의 죽음으로 나인성에 비극이 찾아온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죽음과 슬픔의 행렬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벗겨주시기 위해, 삶에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기쁨과 소망과 안식과 자유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호렙산 동굴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얼마나 낙심이 되고 절망이 되었든지 주여 나를 죽여주옵소서탄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낙심한 엘리야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리고는 용기를 주시고 새 힘을 주시고 다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후 디베랴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씩 물으시면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실수해서 낙심할 때, 실패해서 주저앉아 있을 때에도 우리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10:10)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11:25-26)

 

2.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리 말라 하시고”(본문 13) 지금 나인성 과부는 죽은 아들로 인해 절망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절망의 땅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아픔을 아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9:36)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1:41)

예수님은 아들을 잃은 여인을 보시고 울지 말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어 서게 하시고 죽은 청년을 향해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위로와 기쁨과 희망으로 돌려놓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슬프고 외로운 자,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자, 병들고 가난한 자, 길 잃고 방황하는 자, 애통하는 자에게 찾아오셔서 모든 문제를 맡아주시며 울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절망하게 하는 일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위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나인성 이름대로 기쁨과 즐거움이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긍휼의 사람이 되어 슬픔과 절망의 나인성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울지 말라위로하시고, 그리하여 슬픔의 나인성이 기쁨의 나인성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이 친히 손을 대셨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본문 14)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14:18) 예수님은 이 슬픔의 행렬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가까이 오셔서 불행과 슬픔의 행렬을 멈추시고 친히 관에다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본문14-15)

주님은 우리 슬픔에 친히 동참해주셔서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손이 터치하시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15:26)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5:13)

또한 예수님이 터치하시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26:12-13)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1:11)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6:14-15)

주님이 만져주시면 다시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치료의 역사,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의 기적의 손길이 나 자신과 우리 자녀들에게, 그리고 이 땅 백성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소원하며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인성에 예수님이 오시자 슬픔의 성이 기쁨의 성으로 바뀌었습니다. 저주의 성이 축복의 성으로, 죽음의 성이 생명의 성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무쪼록 날마다 예수님을 깊이 만남으로 나인성의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즐거움을 회복하고, 생명을 회복하고, 기적을 체험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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