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편을 선택하라(디모데후서 4 : 10-11)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5,750회 작성일 2016-05-17 11:33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6.1.17.주일낮예배 좋은 편을 선택하라 디모데후서 4 : 10-11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 집으로 가십니다. 그때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분주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로 하여금 자신을 돕게 해달라고 불평하며 청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편을 선택했다는 영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든지, 좋은 선택, 영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선택인가 영적인 선택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영적으로 복을 받고, 우리 육도 행복하고, 정신도 모든 것이 평안하고 행복해지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데마는 세상을 선택해서 주님과 끊어지는 자가 되었고, 누가는 주님을 선택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그들의 인생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영적인 사람으로서 좋은 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좋은 편을 선택할 수 있는가? 어떻게 영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인가? 1. 영적인 가치에 눈을 떠야 합니다. 좋은 편을 선택하고 영적인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영원한 것, 영생과 참된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눈을 떠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적한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육체적인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적인 것의 의미를 모릅니다. 세상의 행복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한 축복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을 합니다. 데마가 그런 사람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10) 사실 데마는 열심 있는 신앙인이었고, 바울 곁에서 바울을 도운 동역자였습니다.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몬1:2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골4:14) 그런데 그런 데마가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등지고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주어진 영적인 축복과 영광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데마로 하여금 주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사람 바울을 떠나게 한 것입니까? 무엇이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가게 했습니까? 바로 현세중심적인 가치관입니다.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복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전, 사명, 하나님의 자녀 됨도 다 버리고 주님의 곁을 떠난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과 충성에 대한 하나님의 상급을 생각하지 않고 육적인 감각에 자신을 내어준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세상으로 내려가 잠시 잠깐의 부를 누리고, 쾌락을 맛보면서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게 더 많았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영혼의 만족과 기쁨, 영생, 그리고 천국의 복락과 상급 등 많은 것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순간의 가치 때문에 영원을 놓친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에서입니다. 에서는 순간적인 육신의 욕망 때문에 영원한 가치를 포기하고 맙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창25:34) 그러나 야곱은 에서가 배가 고플 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 명분을 양도해 받고자 했습니다. 영적인 가치에 눈을 열린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도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영적인 가치를 알지 못해 버림을 받았지만, 야곱은 영적인 욕심 하나로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영적인 가치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형편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킴으로 갈수록 복을 누리고, 영원한 복을 누리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세상과의 관계에서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좋은 편을 선택하고, 영적인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우선순위를 바로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세상의 가치를 영적인 가치보다 더 좋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영적인 일보다 세상 일에 더 우선순위를 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도와 교회를 등지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린 것입니다. 데마는 은혜를 받고, 사명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으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교회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세상보다 무가치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저버리고 주님을 떠난 사람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반하고, 사명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저주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시132:15,18)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시147:14)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출23:25) 주님 품이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어떤 것보다 주님의 일을,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우리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영적 원리를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삶의 모든 가치를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분토와 같이 여겼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의 삶에 우선순위를 두고, 받은 은혜와 사명을 소중하게 여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영원한 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헌신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좋은 편을 선택하고, 영적인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헌신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헌신은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드리신 것처럼 우리 또한 십자가 앞에 내 생명을 드리는 것이 헌신입니다. 내 생명뿐만 아니라 내 시간, 내 재물, 내 재능,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되는 과정이 헌신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복, 영원한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합니다. 때로는 배고픔도, 때로는 가난함도, 때로는 울어야 하는 아픔도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데마는 헌신이 두려워 신앙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헌신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또 한 사람 누가가 나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10)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리라”(11) 모두들 바울의 곁을 떠나갔는데 누가만 여전히 바울 곁에서 바울을 도와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바울과 함께 다닌다는 것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닐 것입니다.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닙니다. 끊임없이 전도여행을 다녀야 했고, 그 여행 중에 때로는 죽을 고비도 넘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 모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결코 바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함께 했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바울을 곁에서 지켜주고 바울의 건강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대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생각할 때 누가가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바울이 얼마나 힘이 되고 그 사역에 불이 붙었겠습니까? 누가는 바울에게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누가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에게 누가와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누가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가와 같이 헌신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십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믿음으로 충성하는 자에게 주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가 헌신할 때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되는 것입니다. 헌신할 때 주님 사역에 힘이 붙고, 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헌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주님의 십자가 지고 끝까지 승리합시다. 데마처럼 중간에 내려놓지 말고, 누가처럼 끝까지 사명의 십자가를 잘 감당하므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행복과 미래는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이 행복하고 정신과 육이 행복하고 삶이 행복하고 모든 것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영적인 사람들로서 좋은 편을 선택해야 합니다. 영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좋은 편을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꼭 필요한 주님의 일꾼이 되고, 영적인 사람들에게 주시는 영원인 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믿음으로 얻는 구원(사도행전 16 : 31) 16.05.17 다음글있는 것으로 시작하라(요한복음 21 : 5-14)1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