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눈 (시편 139 : 13-14)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6,137회 작성일 2015-07-06 15:39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5.5.17.주일낮예배 믿음의 눈 시편 139 : 13-~14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는 보는 것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 나름대로의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안경, 무신론이라는 안경, 자기 경험이라는 안경 등. 그러나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벗고 믿음의 안경을 써야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안경을 쓰고 보면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지금 내 안에서, 내 삶 한 가운데서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자기 기준의 안경을 벗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믿음의 눈이 열림으로 살아계신 하나님, 나와 늘 동행하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믿음의 눈으로 자연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첫 번째 방식은 자연입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학자들은 지구가 축으로 23도 기울어져서 스스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만일 22도만 기울었거나 24도 기울었다면 지구는 지금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되었을 거라고 합니다. 달은 지구로부터 38만km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달이 8만km만 지구와 가까이 있어도 지구는 조수 인력으로 인해 물바다가 되고 만다는 겁니다. 또한 지구 표면이 지금보다 3m만 높아도 지구 모든 생물은 산소 부족으로 진멸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묘하고 정교합니까? 누가 이 지구를 만들고, 누가 그렇게 정확하게 우주를 설계했으며, 누가 그렇게 정확하게 우주를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까? 창세기 1:1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빛을 창조하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를 창조하시고,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고, 땅위에 모든 생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주 주인이 되셔서 그것을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자연 안에 계셔서 자연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로마서1:20) 다윗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통해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음으로 나를 아시나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7-10절에 보면, 가는 곳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 때문에 10년을 쫓겨 다닌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고난을 이겨낸 힘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그를 보고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계속해서 피난 다녀야 했지만, 그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유다 광야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침이면 떠오르는 태양과 저녁이면 떠오르는 달과 별들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시로 노래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편 8:3-4)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광야 안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 하나님은 계십니다. 가정에도, 일터에도, 하나님은 어디든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름답게 핀 꽃 한 송이를 보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먹이시고 자라게 하시고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자연을 보면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은혜를 체험하시고, 다윗처럼 그 하나님으로 위로 받으시고 어떤 환경에도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믿음의 눈으로 역사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은 물론, 우리 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과 국가, 나아가 세계와 우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을 보세요. 하나님은 기근에 앞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요셉은 큰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실 계획을 진행하신 것입니다. 요셉을 먼저 애굽 총리가 되게 하시고, 가정과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부족해서 전체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앞날을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께서 역사 주관자이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내 삶 속에 계시고 역사 안에 계신다. 그래서 선악을 주관하시고 역사를 통치하신다. 지금 사울로 인해 고난을 당하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에게 쫓길 때도 담대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가정과 국가, 나아가 세계와 우주 흥망성쇠를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인되셔서 여러분 인생을 경영하시도록, 또한 이 세상이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믿음의 눈으로 사람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가깝고도 구체적으로 사람 가운데 계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영적인 인격체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2:10)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대한 걸작품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①육체적인 걸작품 ②영적인 걸작품 ③영원한 걸작품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고백이 뭡니까? 13절,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절,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본문 시편 139편을 보면 다윗이 계속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나의”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나 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넓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나 한 사람과 관계 맺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 장수의 아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사기꾼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간 제자들을 찾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어간 오른쪽 강도를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상 장수 아들을 찾으시고, 사기꾼 야곱을 찾으셨습니까? 주님은 왜 도망자를 찾으시고 평생 강도짓만 한 사람을 찾으신 것입니까? 하나님께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 기준의 안경을 쓰고 보니까 우상 장수의 아들이요, 사기꾼이요, 도망자요 강도인 것이지,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볼 때는 얼마나 복되고 귀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누구나 그 속에 거룩하게 살고 싶고, 선하게 살고 싶은 본성이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해요, 다른 하나는 신뢰입니다. 이해는 하나님을 이성의 눈으로, 합리적 판단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해는 과학 공식처럼 딱 들어맞아서 우리 머릿속에 ‘맞아’ 하고 받아들이는 합리적인 가치체계입니다. 그러나 신뢰는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과학 공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영적 가치체계입니다. 이해는 머리로 시작하고, 신뢰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신앙생활은 이해가 아닌 신뢰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연 안에 계십니다. 역사 안에 계십니다. 사람 안에 계십니다. 아무쪼록 이해가 아닌 믿음으로 자연 안에 계신 하나님, 역사 안에 계시고,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성령이 임하시면 (사도행전 2 : 1-4) 15.07.06 다음글자녀들아, 이것이 옳으니라 (에베소서 6 : 1-3)1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