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남은 자의 은총 (이사야 10 : 20-23)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852회 작성일 2014-07-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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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29.주일낮예배

남은 자의 은총   이사야 10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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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남은 자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은 자 사상은 신구약성경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며, 성서학자들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관되게 남은 자 사상이 등장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면 남은 자가 누구인가?

 

첫째, 남은 자 사상이란 무엇인가?

 

남은 자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대 재난 가운데 남겨진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남은 자는 더 깊은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심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복 있는 백성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저버리고, 죄악의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심판하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과 더불어 남은 자를 택하셔서, 구원 역사를 계속해 가셨습니다. 이것이 남은 자 사상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노아 홍수심판 사건을 보세요.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함을 보시고 홍수 심판을 계획하시지만, 남은 자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은 자를,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에 그루터기니라”(6:13)고 하였습니다. 그루터기는 남은 자를 말합니다. 우리가 농사를 지으려면 아무리 흉년이 와도 씨앗은 남겨둡니다. 하나님도 새로운 구원 역사를 위해 거룩한 씨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오늘시대가 아무리 악하고 어둡더라도 하나님은 거룩한 씨를 남겨두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둘째, 남은 자는 누구인가?

 

1)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남은 자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를 말합니다.(20) 여기서 자기를 친 자는 앗수르를 말합니다. 당시 앗수르는 가장 강대한 나라였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백성들 가운데는 앗수르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습니다.

남은 자들은 대세를 역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은 다수결 원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다수결 결정이 옳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좁은 문 좁은 길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믿음만이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 아합 왕은 왕궁에서부터 바알숭배를 하여 온 나라가 우상숭배로 가득 찼습니다. 왕비 이세벨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박해하며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서 신앙을 포기하며 우상 앞에 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살기 위해 권력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신앙을 타협할 때, 남은 자 7천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걸고 우상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천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하나님은 그들을 남은 자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거룩한 씨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곧 망할 것 같은데, 끊어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 이유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자들, 바로 남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처럼 신앙을 타협하지 않은 신앙의 선배들의 믿음이 그루터기가 되어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준 것입니다.

 

2)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사람입니다.

남은 자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들 죄악에 물들고, 욕망을 따르며 살지만 하나님을 향해 삶의 방향을 전환하고, 회개하는 사람, 하나님과 멀어진 영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사람이 남은 자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에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20) 하나님은 넘치는 공의로 이스라엘과 유다, 앗수르를 크게 심판하실 것인데, 그러나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은 그 환난에서 보호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타락해서 하나님과 멀어질 때마다 고난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마다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어 그들에게 단비를 내리시며 형통한 날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멀어진 영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회복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이킬 때, 영적인 회복은 물론 모든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이 없음으로 멸망한 도시입니다. 타락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죄가 많은 도시였지만, 이 성의 멸망 원인은 정확하게 말하면, 의인이 없어서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 10명이 남아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그루터기로 삼으시고 그 성을 구하셨을 것입니다. 그 성에는 하나님께로 방향 전환하는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펼치실 남은 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기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아무리 모든 것이 불안하고 염려가 되는 시대라고 해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남은 자가 있다면 그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되는 것 같고, 모든 게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 같은 시대라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남은 자가 없다면 그 사회는 희망 없는 사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국 근현대사는 비극의 역사입니다. 사람들은 일제 36년 동안 우리 역사가 끝나는 줄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끝나지 않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또 분단이 시작되고, 6.25동란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망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 역사를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계속 이어가게 하시고 오늘의 축복을 주신 것인가? 남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배운 것은 없어도, 가진 것은 부족해도 대한민국의 역사 위기 때마다, 차가운 교회 바닥에 무릎 꿇고 밤을 새우며,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름도 빛도 없지만, 남은 자들 때문에 이 땅에 구원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이 시대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은 물론 우리 사회와 역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와 이 민족 위에 제2의 부흥과 성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남은 자를 찾고 계십니다. 아무쪼록 이 시대 남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고, 희망의 역사를 이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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