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기다린 사람들 (마태복음 2 : 9-11)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426회 작성일 2014-01-13 13:00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3.12.22.주일낮예배(성탄주일) 성탄을 기다린 사람들 마태복음 2 : 9---~11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신앙생활은 영적생활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순간마다 흔들립니다. 신앙의 힘이 없습니다. 쉽게 지치게 됩니다. 이천년 전,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누구보다 메시야가 오시기를 고대한 사람들입니다. 매일 율법서와 예언서를 읽고 연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는데 그들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게 되면 내 모든 삶과 뜻, 계획의 기준을 예수께 맞추게 됩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르게 됩니다. 이번 성탄절은 주님을 기다리고, 사모하고, 주님을 더 깊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구원의 주, 은혜와 평강의 주, 축복의 주님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체험하며 신앙의 확신 가운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는가? 첫째,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믿음과 순종으로 주님 성탄을 기다리고 만난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알려줍니다. 그때 요셉의 반응은,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과 순종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결단이 된 것입니다. 마리아도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잉태를 알려줍니다. 그때 마리아의 반응이 뭡니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요셉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시간을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이 말은 자기의 모든 운명을 주님께 맡긴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면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동정녀 탄생은 역사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약혼한 상태입니다. 파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히 가족과 친지, 이웃들에게 외면당할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처녀가 잉태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순종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의 여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과 자아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면서 마리아와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하신 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결국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날 뿐 아니라 인류 구세주, 예수님의 부모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둘째,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목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자기 일에 충성함으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성탄이 가까웠을 때, 유대는 호적 정리로 어수선했습니다. 온 나라가 어수선하니까 목자들도 자기 일을 소홀히 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일하고 있는 시간은 밤입니다. 때문에 천막 안에서 잠을 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남이 지켜보지 않아도 깨어서 양을 지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성실함을 인정하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아기 예수 나심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목자들은 그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아기 예수께 빨리 달려갔습니다. 만일 목자들이 밤에 자고 있었다거나 자기 양떼에 무관심했다고 하면 주님 탄생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 성탄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맡겨진 사명에 충실할 때 임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맡겨진 일에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호렙산 주변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를 치다가 가시나무 불꽃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윗도 들에서 양을 치고 있다가 하나님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습니다. 기드온도 타작마당에서 타작하고 있을 때, 엘리사는 소를 가지고 밭을 갈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아무쪼록 성탄을 맞이하면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학생으로서, 국민으로서, 성도로서 목자들처럼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체험하고 신앙의 도약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성전을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공통점은 이들이 성전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입니다. 거기에 하나님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이들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에 함께 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메시야의 오심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결례를 받기 위해 성전에 오신 아기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품에 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안나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혼자 살면서 84세가 되기까지 성전을 가정삼아 주야로 금식하며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대개 슬픈 일을 당하면 좌절해서 넘어지기 쉽습니다. 안나가 그러했습니다. 일찍 남편을 잃고 위로 받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위로 받기를 원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하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며 살았습니다. 절제하며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신앙을 기억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모한 대로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세상에 오신 메시야를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교회 중심 신앙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예수 중심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교회 중심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축복으로 인도하십니다. 아무쪼록 시므온과 안나처럼 교회 중심의 삶을 통해 주님을 만나시고 교회를 통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헌신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헌신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렸고, 그래서 주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동방박사는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위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강도를 만나거나 질병으로 고통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막과 강과 짐승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아기 예수를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와서 주님께 드리며 경배했습니다. 황금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셨음을 표현한 예물입니다. 유향은 하나님과 인간 중재자로 오신,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한 예물입니다. 몰약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견하고 드린 예물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최고의 예물을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우리는 무슨 예물을 드려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비록 황금은 없을지라도 금보다 귀한 믿음을 드려야 합니다. 유향은 없을지라도 복음증거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로 오신 그리스도 남은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몰약은 없을지라도 나를 위해 세상에 오시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살아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헌신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동방박사들이 그 먼 길을 주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왔듯이, 그리고 주님께 엎드려 최고 예물로 경배드렸듯이, 우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만나고 예배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이천년 전, 영적으로 어두웠던 이 땅에,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실 메시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구세주로, 평강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구원자요, 그리스도였습니다. 아무쪼록 성탄의 절기,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고, 갈급함과 간절함으로 주님을 기다리셔서 구원의 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회고와 전망 (사무엘상 7 : 12-14) 14.01.13 다음글강림절의 신앙 (누가복음 1 : 5-13)14.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