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누가복음 15 : 3-7)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369회 작성일 2013-10-22 11:07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3.10.6.주일낮예배 하나님의 사랑 누가복음 15 : 3-7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한마디만 분명히 알고 바로 체험하면 우리는 신앙생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승리할 수 있고, 이 세상에 어떤 문제가 우리 앞에 쌓여 있다 할지라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문제, 그것이 우리 인생의 마스터키요,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세 가지 비유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비유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그 사랑을 분명히 알고 체험하고 승리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1. 적은 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첫 번째 비유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입니다. 양 백마리 중 한 마리를 잃어 버렸습니다.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는 아주 적은 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달려가서 열심히 찾습니다.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은 하나님은 단 한 사람도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수결의 원리, 다수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가 아흔 아홉 마리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아흔 아홉을 위해서는 한 마리를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잃어버린 한 마리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랑이요, 그것을 찾았을 때 어깨에 메고 기쁨으로 춤을 추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12만 명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니느웨 성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요나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니느웨 백성들 12만명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 한 여인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 들러 그 여인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리고 삭개오를 찾아가셔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통해 세계를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아주 소중합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잘 믿으면 그 한사람을 통해서 가정과 가문이,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게 됩니다. 요셉 때문에 요셉을 종으로 삼은 보디발 집이 복을 받았고, 애굽 민족이 7년 흉년을 이겨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을 판 형제들도 요셉 때문에 구원의 은총과 풍요의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 한 사람 때문에 세계를 움직이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바로 나를 사랑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바로 나 한 사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구원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임을 기억하며, 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확장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가치가 작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두 번째 비유는 드라크마 비유입니다. 한 여인이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버린 여인은 그것을 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밤새도록 애를 썼다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은 하나님은 비록 사람 생각으로는 가치가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훌륭한 사람, 잘난 사람만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으로 볼 때 가치가 없는 사람도 찾으시고 사용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안목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은 유용성, 효용성으로 그 가치를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나옵니다. 그는 이미 모든 사람이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이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습니다. 38년 동안 남에게 짐만 되고, 유익을 주지 못한 사람, 전혀 가치가 없는 사람, 그런데도 주님이 그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어느 날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때 예수님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사람들은 효용 가치가 있는 사람을 우대하고, 가치가 적은 사람들은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 그리고는 그들 머리 위에 안수까지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도, 어린아이도 귀하게 여기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놀라운 가치를 부여해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벧전2:9) 우리는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가치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갈 일꾼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새기시고, 은혜와 감사로 승리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세 번째로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입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내게 상속될 재산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는 유산을 받아가지고 먼 나라에 갔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면 자유할 것이다, 행복할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돈만 다 써 버리고 말았습니다. 흉년이 들었고, 간신히 돼지 먹이는 일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주는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입니다. 아버지 집을 떠난 사람은 부귀영화를 누릴 것 같지만, 탕자와 같은 비참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 아들은 돌이켜서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 집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어나 아버지 집을 향해 갑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배반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집을 찾아올 면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아들을 날마다 기억하며 기다립니다. 그리고 아들이 돌아올 때 아직도 거리가 먼데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그를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환영합니다. “새옷을 입혀라. 발에 신을 신겨라. 가락지를 끼워라.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이자.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아버지 환영과 사랑은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제한이 없는, 돌아올 것을 구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탕자와 같은 우리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게 하심으로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예수님께서 보배로운 피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쳐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값있는 존재입니다. 그 하나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 한 사람’ 까지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 한 드라크마와 같이 가치가 작은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 수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으시고 십자가 피로 용서해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오늘도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승리하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일어나 걸으라 (사도행전 3 : 1-10) 13.10.22 다음글기초가 든든한 믿음 (골로새서 2 : 6-7)1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