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서 승리하라 (창세기 25 : 29-34)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428회 작성일 2013-09-24 11:54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3.7.21.주일낮예배 선택에서 승리하라 창세기 25 : 29-34 ‘오늘은 어제 선택의 결과이며, 내일은 오늘 선택의 결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선택은 중요합니다. 올바른 선택은 우리 삶을 새롭게 바꾸어 놓지만, 잘못된 선택은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선택했느냐에 따라 구원의 길과 멸망의 길,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로 갈라집니다. 승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느 길을 선택해서 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결단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선택의 중요성을 교훈합니다. 에서는 잘못된 선택으로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에서는 사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장자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팔고 맙니다. 결국 이 일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그의 선택은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로 이어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황폐케 하시고, 그들이 다시 쌓기 위해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헐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말1:2-3)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선택을 잘해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그의 생애와 후손들 역사를 통해 수많은 수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주셨고 그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약속대로 그들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의 증거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신7:6-9)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을 만납니다. 작게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그리고 진로를 결정하고, 미래를 결정하고, 의와 죄 사이에서, 모든 순간들이 선택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선택이 요구됩니다. 아무쪼록 선택의 순간마다 승리하셔서 야곱처럼 축복받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에서와 야곱의 차이가 무엇인가? 첫째, 가치 기준의 차이입니다. 세상 가치관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에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 좋고 나쁨의 기준을 모두 눈에 보이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특히 물질이 우리 삶에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세상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 바로 하늘의 가치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에서는 세상 가치관에 따라 살았다면, 야곱은 하늘의 가치관, 영적인 가치관에 따라 산 사람입니다. 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한시적인 것, 이 땅의 것, 감각적인 것을 쫓아간 인생입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32) 그는 장자권에 담긴 하나님의 축복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영적 유산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당장 눈앞에 펼쳐진 배고픔이라는 본능적 욕구 때문에 영육간의 모든 복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 영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 하늘이 주시는 복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에서에게 떡과 팥죽을 주고 장자권을 삽니다. 사실 야곱의 행동은 에서의 약점을 이용한 행동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신앙관을 갖자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가치기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영적인 기업을 유산으로 받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영적인 가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잠깐 배부름과 쾌락을 위해 영원한 즐거움, 영원한 축복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에서처럼 하나님의 복을 가볍게 여기는 자가 아니라, 야곱처럼 영적인 유산, 영적인 복을 귀하게 여기셔서 야곱을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분별력과 열심의 차이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분별력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지혜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별력을 잃어버리면 옳고 그른 것, 선과 악, 최선과 차선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그래서 신앙이 안일해지고 삶이 좌우로 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에서는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장자권 축복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장자권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영적인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자권과 축복권을 사모한 것입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부모와 집을 떠나 낯선 땅으로 도망가면서까지, 얍복강가에서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모함과 열심을 보시고 야곱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막10장에 보면 거지 맹인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이 여리고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목이 터져라 불렀습니다. 제자들과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쳤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영혼의 구원은 물론 육적인 구원도 받았습니다. 그는 육적인 눈은 닫혔지만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내 문제를 해결해주실 분이심을 믿고, 그래서 주변에서 아무리 책망을 해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영적 눈이 열려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미래가 어둡고 희미해도 믿음으로 희망을 보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음으로 천국을 보고, 믿음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무쪼록 야곱처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함으로 승리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결과의 차이입니다. 선택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는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그도 죽고 인류에게도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롯은 요단 동편 물이 넉넉한 땅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 심판을 받을 때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선택함으로, 세상 끝날까지 저주스러운 이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선택은 자유지만, 우리는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본문에도 에서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 장자권과 축복권을 동생 야곱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업에서 멀어지고, 이방 족속 에돔의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시고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시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다시 쌓기 위해서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헐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에서는 장자로 태어났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실패 인생, 저주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소원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야곱이 받은 복은 ①영적인 축복, 영권의 축복입니다. 야곱이 변해 이스라엘이 되고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②물질의 축복입니다. 성경에 거부로 기록될 만큼 큰 물질의 복을 받았습니다. ③자손의 축복입니다. 야곱이 낳은 열두 아들을 통해 나라가 이루어지고,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영광스런 축복의 가문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④마지막의 축복입니다. 끝이 잘되는 복입니다. 그는 영적인 것을 선택함으로 그의 인생에 큰 고난이 있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야곱처럼 영적 유산을 귀하게 여기고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기업, 축복의 유산이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 가문을 통해 흘러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때마다 여러분 안에 육체적 본능을 제어하고, 영적인 가치를 귀하게 여기며, 믿음으로 주의 뜻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올바른 선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함으로 야곱처럼 인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축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마가복음 5 : 15-20) 13.09.24 다음글축복의 길을 여는 교회 (시편 122 : 1-6)1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