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길을 여는 교회 (시편 122 : 1-6)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290회 작성일 2013-09-24 11:00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3.7.14.주일낮예배 축복의 길을 여는 교회 시편 122 : 1-6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형통하기를 원하십니다. 형통은 하나님께서 범사에 잘 되게 하시고, 번성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은혜와 축복입니다. 그러면 이런 형통의 근원이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다윗은 성전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제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의 소원은 오직 교회를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축복하셔서 이스라엘 왕 중에서 가장 높여주셨고, 다윗 왕국에 평화와 번영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메시야 조상이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교회는 형통의 복이 약속된 곳입니다. 누구든지 나오기만 하면 위로받고 힘을 얻고 소망을 얻고 살아나고 번성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신앙생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약속하신 형통의 복을 받을 수 있는가? 첫째, 교회 출입을 기뻐하는 자입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1) 우리는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교회를 가까이 하고 교회 출입을 기뻐해야 합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응답,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교회는 죄와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그래서 교회 오면 위로와 회복, 치유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고 보장된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기뻐하고 가까이 할 때 축복의 길이 열리고, 형통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축복은 물론 나라와 민족적인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가까이하는 나라나 민족은 모두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부강하고 형통의 복을 받은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우리를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1885년 아펜셀러,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와서 이 나라를 보니 어디를 봐도 소망이 없습니다. 어디를 봐도 길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선교사들이 한쪽에서는 가르치고,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에 변화를 주고, 용기와 기쁨, 소망과 믿음을 심어줍니다. 그러면서 세상과 우주를 보는 눈이 떠지고, 세계를 보는 지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억압받는 여성들을 밖으로 이끌어내고, 축첩을 무너뜨리고, 우상을 무너뜨리고, 어둠의 그림자를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일어난 것입니다. 교육도 일어나고, 정치, 경제, 문화, 우리 인격과 정신도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축복의 길을 연 것입니다. 교회가 이 민족을 살리고 풍요롭고 영광스러운 나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역사에 교회를 멸시한 나라가 잘 된 일이 없습니다. 지금 북한을 보세요. 그들은 지금도 교회를 핍박하고 비판하며 교회를 없이하니까 나라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가까이 하고, 교회 출입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교회를 사모하는 것을 의로 여기시고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둘째, 교회에 모여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에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4)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마다 모든 일을 중단하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주신 전례대로 1년에 3번씩(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모든 남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절기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은혜, 풍성한 수확과 소득을 주신 은혜, 순간순간 지켜주시고 보호하신 은혜, 자녀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시켜 주신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감격과 감사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또한 감사하러 나온 그들은 빈손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신16:16-17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드렸습니다. 이처럼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목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도 감사로 드리고, 사명도 감사로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은 억지로 하거나, 원망 불평하며 해서는 안됩니다. 원망은 ‘독약’과도 같습니다. 나도 죽고, 남도 죽이는 것입니다. 영국 정치가 윌리엄 글래드스턴은 무려 4차례에 걸쳐 영국 총리를 지낸 영국 재상입니다. 그런 그가 “나는 예배석이 대영제국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라고 했습니다. 수상직에 있는 것보다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고 예배석에 앉아 있는 것이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도 감사로, 봉사도 감사한 마음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사랑의 내용입니다. 감사는 감사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통해 교회를 부흥케 하시고, 이런 사람이 교회에 약속된 형통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교회에 평안을 끼치는 자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6절)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교회 평안을 위해 힘쓰는 자입니다. 교회 필수요소는 평안입니다. 다툼과 의심과 분열은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그것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입니다. 교회는 평안이 깨지면 반드시 무너지고 맙니다. 나아가 교회가 평안하지 않으면 절대로 개인이나 가정이 평안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이 평안해야 나라가 평안하고, 나라가 평안해야 가정이 평안하고, 가정이 평안해야 내가 평안해집니다. 그래서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교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울타리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①교회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깨어 기도하며 성령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②영적인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영적인 질서가 깨지면 이단이 침투하고 잘못된 영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교회 일꾼은 영적인 권위로 교회를 지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③하나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디를 가든지 그 집의 평안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롬12:18에,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쟁과 시기가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평안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무쪼록 교회 평안을 위해 힘써 기도하며, 우리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를 부흥 성장케 하며, 이 시대 지역사회와 우리나라에 복을 주는 교회, 많은 이웃에게 거룩한 영향을 끼치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의 선물로 교회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축복의 길을 여는 곳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갑니다. 교회가 우리의 살길입니다. 교회 문이 열리면 모든 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교회 출입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드리기 위해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기를 힘쓰고, 교회를 평안케 하는 자에게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아무쪼록 교회를 사모하고 사랑함으로 다윗이 받은 복, 교회를 통해 주시기로 약속하신 형통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선택에서 승리하라 (창세기 25 : 29-34) 13.09.24 다음글감사는 능력이다 (요나 2 : 1-10)1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