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창세기 6 : 5-12)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237회 작성일 2013-07-09 11:23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3.6.9.주일낮예배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창세기 6 : 5-12 시대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서 남다른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의 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아는 당시 사람들과 다르게 산 사람입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타락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쾌락과 만족을 위해 살던 시대입니다. 그 시대가 얼마나 타락했던지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당신이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노아만은 달랐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근심되게 했는데, 노아만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노아만은 죄악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감동케 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도 어떻게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인가? 노아가 시대 흐름을 이기기까지 그가 취한 승부수는 무엇이었는가? 1. 노아는 세상에 편승하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죄악이 가득한 시대였습니다(5).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차고,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 도덕과 윤리, 문화가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양심대로 사는 것이 미련하게 보이고,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는 시대입니다. 우리 의식 속에는 군중심리가 많이 작용합니다. 유행에 민감합니다. 나쁜 짓을 할 때, 혼자 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러나 여럿이 하면 양심이 무디어집니다. 사람은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세상풍조를 따라가고 세상에 편승해 버립니다. 그런데 노아는 그 시대를 본받지 않았습니다. 죄악된 문화와 환경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부패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위대한 점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믿음이란 다른 사람이 넓은 길로 간다고 해서 나도 넓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길이 좁은 길이라면, 좁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명령은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노아는 세상에 편승하지 않았습니다. 아무쪼록 세상 풍조에 편승하지 말고, 어둔 세상 빛이 되고 부패한 세상 소금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동이 되고, 믿음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시기를 바랍니다. 2. 노아는 믿음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도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전하기를 원하십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22)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산꼭대기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방주 크기는 길이가 3백 규빗, 넓이가 오십 규빗, 높이가 삼십 규빗. 지금으로 보면 웬만한 운동장보다 더 큰 배입니다. 하나님은 이 큰 방주를 만들라고만 하셨지 일꾼을 붙여주신 것도, 물질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노아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고 비웃고 조롱했을 겁니다. 노아 자신도 납득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상식과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노아는 순종으로 반응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일이기에 믿음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오늘은 전적인 믿음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내 상식이나 계산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반응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에 있어 최대 적이 뭡니까? 눈으로 확인해보고, 만져 봐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세상도 보는 것으로 유혹합니다. 그래서 삶의 모든 가치관이 보여지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 영적인 세계는 다릅니다. 보지 않았지만 믿는 것입니다.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고후5:7).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만 믿고 자기 고향을 떠나는 도전을 했고, 결국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80세 나이로 하나님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에는 반드시 도전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때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믿음으로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사랑하라고 하시면 사랑하는 일에 도전하고, 용서하라고 하시면 비록 내 이성과 상식으로는 용서가 되지 않아도 예수님 때문에 용서하는 일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기쁨이 충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거기서 하늘의 기쁨과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을 통해 지금도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믿음의 도전을 통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고 노아와 같이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3. 노아는 믿음으로 초지일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에는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노아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지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 기간이 120년입니다. 수없는 비난과 조롱이 있었지만, 120년을 한결같이 신앙의 길을 갑니다. 외롭고 고독한 길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결국에는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아는 자신을 향해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경건치 않은 사람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슬퍼하지 않는 그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갑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누구도 듣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전적인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노아는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갈 수 있었고, 120년을 오직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은 마지막 때는 노아시대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시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노아와 같은 사람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가 필요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방나라 왕은 물론 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선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기다리고 계시고, 이런 믿음이 죄악된 세상을 이기는 승부수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노아처럼 어떤 환경에도 초지일관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신앙의 길이 고독하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천국까지 승리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라는 사람은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지 말고, 대신 길이 없는 곳으로 가라. 그리고 자취를 남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로 하여금 이 세상에 이런 발자취를 남기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불러내셔서 그 길을 가게 하시고 그런 발자취를 남기라고 하십니다. 그 발자취는 세상에 편승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갈 때, 말씀에 믿음으로 도전할 때, 믿음으로 초지일관하는 신앙의 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노아처럼 세상 따라가지 말고, 믿음으로 도전하고, 믿음으로 초지일관하셔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죄악이 가득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확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이사야 12 : 1-6) 13.07.09 다음글나를 기념하라 (고린도전서 11 : 23-29)13.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