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신앙 (시편 103 : 1-2)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082회 작성일 2013-01-28 15:13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2.11.18.주일낮예배(추수감사주일) 감사와 신앙 시편 103 : 1-2 매년 2월 11일이면 미국 전 도시는 암흑이 된다고 합니다. 이는 에디슨이 인류에게 준 업적을 기억하기 위해 에디슨이 태어난 날, 1분 동안 모든 전기를 다 끈다는 겁니다. 1분,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은 이런 작은 행동을 통해 전기를 인류에게 선사한 에디슨에게 감사를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1분 소등으로 그동안 혜택을 누리면서도 감사하지 못한 에디슨의 업적에 감사하는 것, 이와 같이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며 살아왔으면서도 잊고 있던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하자는 것이 감사절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죄에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지난 한 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았습니다. 앞으로 동행의 약속과 천국을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에서 날마다 감사를 말하고 감사로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과 감사는 언제나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주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잊어 버려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택을 잊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택은 무엇인가? 감사의 시작, 감사의 핵심, 감사의 중심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①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은혜/ 하나님은 나를 지으시고, 택하시고,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은혜요 감사의 핵심입니다. ② 사랑하는 가족을 주신 은혜/ 창세기 41장에 보면, 요셉은 가족을 얻고서야 모든 고난을 잊고 자신이 복 받은 존재임을 고백했습니다. 가족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족을 주셨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세상 환난 속에서 함께 승리하며 살라고 가족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③ 이웃을 주신 은혜/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손으로 이웃을 주시고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웃을 통해 우리를 훈련도 하시고 도와주기도 하십니다. 어린아이를 통해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났고, 네 친구의 도움으로 중풍병자가 치료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웃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④ 나라를 주신 은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신앙은 나라를 사랑하고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나라가 있기에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개인의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음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⑤ 교회를 주신 은혜/ 교회는 우리 신앙의 울타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구원과 신앙의 복을 주시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에서 사명의 삶을 살게 하시고, 세속주의와 거짓 진리, 이단으로부터 보호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든든한 영적 울타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최상의 감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왜 하나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인가? 그러면 왜 하나님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치 않는 것입니까? 세상을 감사라는 코드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① 믿음이 연약해졌기 때문에/ 감사는 신앙의 척도입니다. 우리 삶에서 감사가 사라지는 것은 환경과 조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가장 먼저 오는 것이 감사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믿음이 약해지자 원망하며 엠마오로 내려갔습니다. 반면에 믿음의 사람의 특징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감사했고,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세상이 힘들다고 우리 신앙이 내려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영적인 삶입니다. ② 탐욕 때문에/ 탐욕은 감사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탐욕은 지나치게 집착하는 욕심입니다. 사실 더 갖고 싶다는 것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남보다 앞서고 싶고,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본능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에너지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문명이 발전하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제력이 없는 욕구입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탐욕화 되고, 그것은 반드시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와 같이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은 매일 아침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감사는커녕 원망 불평을 합니다. 결국 원망 불평한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롯의 아내도 유황불에 타는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 도망가면서도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죽음에서 건지심을 받았지만, 탐욕 때문에 비극 인생이 된 것입니다. 아간은 아이성에서 취한 노획물을 빼돌려 자기 집에 숨기는 죄를 지었고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탐심이 들어오면 만족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단테는 탐욕이란 ‘꺾을 수 없는 원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해야 합니다.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백이 뭡니까?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시는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이런 욥과 같은 영성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③ 교만 때문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그러면 교만한 사람의 특징이 뭡니까? 은혜를 망각하고, 감사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받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52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교만으로 인해 나병환자가 되고, 왕궁에서 쫓겨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도 처음엔 겸손한 사람이었지만 왕이 된 후 점차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악령에 지배받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목동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것을 생각하며 겸손하게 감사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더 좋은 것으로 인도하시고, 평생을 동행해 주신 것입니다. 인생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충만하게 임하게 되고, 우리 인생이 번성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삶을 돌아보며 겸손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 개인은 물론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아무쪼록 감사 조건을 찾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가장 어려운 수학은 하나님의 은혜를 세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란 것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가정을 주시고, 이웃을 주시고, 나라와 민족을 주셨습니다. 영적 든든한 울타리, 교회를 주셨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지켜주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붙잡아 주셨습니다. 주님이 힘과 능력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심령을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가 풍성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감사생활을 방해하는 것을 버리기로 결단하시고, 어떤 환경에도 오직 감사,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거듭난 새 사람 (요한복음 3 : 3-5) 13.01.28 다음글감사를 선포하라 (시편 107 : 21-22)13.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