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11.12.04. 주일낮예배 "은혜 주시려고 오신 하나님" (마태복음 1 : 21-23)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6,959회 작성일 2011-12-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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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4.주일낮예배

은혜 주시려고 오신 하나님

마태복음 1 : 21-23

오늘은 강림절 2번째 주일입니다. 강림절이란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를 말합니다. ‘오심’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기 예수로 오신 첫 번 ‘성탄절 오심’과 둘째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러 다시 오시는 ‘재림의 오심’입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 영원하신 분이 시간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사는 세계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라는 말은 세상에 오신 인간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영원한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 인성과 신성을 공유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 되어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 모습으로 내려오셔서 인간 문화에 동참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은 인간이 되시기 위해 철저한 자기희생과 자기비움, 자기포기를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자기희생, 자기비움, 자기포기를 하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느냐는 것입니다.

시집간 딸들에게 “너 왜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갔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말합니까?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와 함께 하고 싶어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그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곳, 죄악이 관영한 곳, 사탄이 발악하는 곳, 왜 이런 곳에 친히 인간의 옷을 입고 오셨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희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너희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까?

첫째,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 사람들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고 사랑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를 위해 죽을 목적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해주시려고...

그러면 죄란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죄에 대한 단어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인간이 범하는 죄는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악을 기록해서 ‘이것이 죄다’라고 알게 하신 것입니다.

종합해 보면 첫째, 죄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을 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본분에 불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 계명대로 살지 않는 것,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살인하고... 이 모든 것이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의 결과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마음의 평안과 평강이 떠납니다. 죄는 근심과 괴로움을 가져다줍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질병의 문제는 해결하다가 안돼도 천국이 있습니다. 가난 문제도 해결이 어려우면 조금 고생하면 됩니다. 그러나 죄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죄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오셔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본문 21절을 보세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말입니다. 이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 ‘이사야’, ‘호세아’와 같은 이름입니다. ‘여호와가 구원이시다.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믿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순종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 많은 사람들이 그 독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합니다. 이 백성을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놋뱀을 쳐다보는 자는 다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놋뱀을 쳐다본 자는 모두 살았습니다.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십자가에 달린 두 행악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우편 행악자는 마지막 순간 예수를 믿어서 구원의 복을 받습니다. 사실 그는 평생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옥형벌로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는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 일, 하나님을 불신한 죄로 인해 받을 형벌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합니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주님, 내 힘으로 지옥의 무서운 형벌을 피할 수 없고, 죄 값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무서운 형벌로부터 벗어나는데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 행악자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어떤 사람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다시피 했습니다. 사람을 때려 상해와 강도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감옥 안에서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 앞에 자기 죄를 다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신 것이 믿어지고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그가 수기를 썼는데 자신이 형무소에서 형량을 다 마치면 자신의 죄가 없어지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만큼 죄 값을 치렀으니 다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해결책이 아님을 알게 되고 주님께 죄사함 받는 순간 마음에 참 평안이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해방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래서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생기고 죄 사함 받은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모든 죄를 주님께 맡기고, 죄로 인한 상처와 고통, 불안과 염려까지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평생을 따라다니며 고통스럽게 한 모든 죄 짐을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이제부터 영원까지 죄에서 자유해지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죄인을 사랑하셔서, 죄인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시고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특별히 강림절을 보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 혼자만 죄 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 이웃, 이 세상 만민에게 구원의 은총이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쪼록 이번 강림절은 사랑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강림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환난을 만난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본문 23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특별히 환난을 만난 자의 피난처가 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강도에게 맞아 거의 다 죽게 되어 길바닥에 버려졌습니다. 그 곁을 제사장도 레위인도 지나갑니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여러분, 여리고를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모습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손길을 주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모든 어려움에서 우리를 구해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어려운 일도 만나고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가시밭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뭔가 되었다 싶으면, 어디선가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살만하다 싶으면 슬픔이 몰아칩니다.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것이 내 일이 되기도 합니다. 나와 상관이 없던 것들이 어느 순간에 나와 밀접한 사건이 되어버릴 때도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고 또 조그마한 말에도 넘어지고 실족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시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 안에 들어가면 주님께서 우리 피난처가 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 명령대로 문설주와 인방에 양의 피를 발라 놓았습니다. 그날 저녁 애굽 모든 집에 재앙이 있었지만, 양의 피가 묻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재앙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피가 묻어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어떤 환난의 바람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묻어 있습니까? 재앙이 가까이 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에 가면 어느 도시든지 맥시 백화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 백화점 주인인 맥시는 사업을 시작하고, 일곱 번이나 부도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시련에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것에 자기를 내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지금 이 순간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주님도 지금 나와 함께 아파하시고, 주님도 지금 나와 함께 기도하실 것이다... 그래서 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7편 24절에 보면,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고난당할 때, 환난을 만날 때, 실패하거나 낙심할 때 우리를 붙잡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그래서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 사람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가까이 오셔서 연약한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피난처가 되시기 위해서...

다윗은 많은 환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울왕의 칼날을 피해 이 굴, 저 굴로, 그리고 광야를 헤매며 숨어 다녔습니다. 우리나라 강원도만한 그 좁은 땅에서 숨을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용케 사울왕 눈에 띄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르고 난 다음 한 고백이 뭡니까?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나의 피난처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재간이 좋거나, 재수가 좋아서 사울에게 발견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편 18편 1절로 2절 말씀입니다.

경상도에 전통적으로 무당 말만 듣고 살아온 어떤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젊은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교회 나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회 개척한 날부터 시련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밤중에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목사 죽이겠다고, 교회 불지르겠다고, 그러니 목사님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때마다 목사님 내외는 강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계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이곳에 보내주시고, 교회를 개척하게 하시고... 이 믿음 가지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래도 이곳 영혼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더 기도했습니다.

그 즈음 그 마을에 온천이 개발돼서 목욕탕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목욕탕에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왜냐면 무당이 누구든지 제일 먼저 이 온천에서 목욕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이 목욕탕 주인은 마을 어귀에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첫 번째로 오는 남·여 손님에게는 각각 100만 원씩 상금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목욕탕에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무당이 죽는다고 했기 때문에...

누가 갔겠습니까? 이 목사님이 때는 이때다 하고 사모님과 함께 온천에 목욕을 갔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목사님 부부가 이제 시체가 되어 나올 것이다... 생각하고는 목욕탕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30분, 40분, 50분, 60분, 가마니를 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1시간 후에 두 사람이 얼굴이 뽀해져서 나왔습니다. 죽기는커녕 깨끗이 씻어 더 훤해져서 나온 것입니다. 게다가 상금까지 받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그제야 자기들이 이제까지 무당에게 속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당보다 목사가 더 세구나!” 마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교회에도 나오고 목욕탕에도 다녔다고 합니다.

여러분, 환난을 만났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얼마나 많은 고난이 닥칠지 모릅니다. 사탄의 시험, 때때로 찾아오는 견디기 힘든 고난... 이러한 고난 앞에서 넘어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손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어떤 고난이나 시험이라도 우리를 넘어갈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힘이시오 영원한 피난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 그래서 우리 가까이 오셔서 함께 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나그네 인생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나그네 인생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나그네라는 말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말로 ‘길손’이라고도 합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손...

여러분, 이 세상은 영원한 거처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얼마동안 살다가 떠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영웅도 죽고, 천재도 죽고,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사람이면 반드시 죽어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나그네 인생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빈손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호텔이나 콘도 시설이 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들도 여유만 있으면 그렇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호텔 안에는 모든 시설이 다 갖춰져 있습니다. 음식점도 있고 운동시설도 오락시설도 있습니다. 그래서 호텔 안에서 마음껏 보고 즐기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체크아웃을 하고 나갈 때는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빈손으로 나갑니다. 누구든지 호텔에서 머물다가 나갈 때는 모든 것을 그대로 놓고 나가야 합니다.

나그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와서 이것저것 사용하다가 우리 주님이 명령만 하시면 그대로 놓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아무 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셋째로, 반드시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입니다. 거기에 보면 믿음의 위인들 모두가 하나같이 본향을 그리워하며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향은 그리운 곳이요 기회만 있으면 가보고 싶은 정다운 곳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고향을 생각하고 다녀오기도 하는 곳, 그런 곳이 고향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고향이 아닌 영원한 하늘나라 고향이 있습니다. 그 영원한 본향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믿음에 고향이 있습니까? 즉 영혼의 고향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심어준 의식 중 하나가 고향의식, 본향의식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동안 살다 가는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영원한 고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심어주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알게 하시고, 영원한 본향,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사람이 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 예수를 통해서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영원한 본향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요성령집회 때도 말씀드렸는데,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가지 열쇠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천국의 열쇠, 아멘 열쇠, 기도 열쇠... 그 중에서 천국 열쇠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면...

우리가 비행기만 타면 캐나다에 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여기 있지만 내일 이맘때는 캐나다에서 설교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 표만 있으면, 비행기만 타면 그 멀고 먼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루살이가 하루 종일 날면 20리(약 7.8km)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백마는 하루 종일 달리면 1,000리(약 392km)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살이가 천리를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뭡니까? 백마를 타는 것입니다. 하루살이가 백마 등에 업혀 있으면 하루에 천리를 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백마 때문에 하루살이가 천리를 가고, 비행기 때문에 캐나다에 가듯이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고, 이로 인해 나그네 인생들에게 영원한 본향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자에게는 하늘나라가 고향입니다. 하늘나라가 분명히 따로 있습니다. 이 본향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신앙생활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어떤 핍박이 온다 해도, 내가 어떤 모양으로 죽는다 해도 내가 죽으면 돌아갈 본향이 있다...

그 고향은 내가 이 땅에서 생각하고 이 땅에서 누리는 그런 곳과는 질이 다른 곳이다... 이런 믿음만 있으면, 있고 없음으로 인해, 환경이 좋고 나쁨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초라하거나 비굴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잠깐 지나가는 길손이요 나그네입니다. 여기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에 대해 당당하고 담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핍박을 받더라도 구차하게 믿음을 양보하면서까지 이곳에 얽매이고 질질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본향에 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그분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끝까지 믿음 지키는 일에 헌신을 다하시고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나그네 인생들에게 영원한 천국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셔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그분 인도하심을 따라 이 땅에서 신앙생활 교회생활 승리하다가 영원한 본향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라고 하는 거,

말씀을 마칩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 은총론에 보면 예수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3가지 확증이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죄 문제로 고민하지 않느냐? 다시 말하면 죄사함을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로 죽음 앞에서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느냐? 죽음이 왔을 때 “이제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하며 찬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에 도우심으로 마음에 평강과 기쁨과 소망이 넘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은혜 주시려고 인간에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어떤 은혜입니까? 죄인을 구원하시고, 환난을 만난 인생에게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서, 또한 모든 나그네 인생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아무쪼록 그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3가지 확증을 믿고 신앙생활 교회생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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