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9. 주일낮예배 "고난을 믿음으로 해석하라"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283회 작성일 2011-12-09 23:59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1.10.9.주일낮예배 고난을 믿음으로 해석하라 욥기 1 : 20-22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욥은 참 많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기대할만한 모든 복을 받은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 그는 가정의 복을 받아서 아들 일곱에 딸 셋, 10남매 중 속 썩이는 자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질 축복을 많이 받아서 양이 7천 마리, 낙타가 3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 나귀가 5백 마리... 아주 큰 부자였습니다. 동방의 가장 큰 부자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욥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자녀들이 모여 잔치한 후에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자녀들과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건강한 가정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 대해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땅의 기름진 복뿐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까지 모두 다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욥이 이렇게 축복만 받으며 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고난도 주셨습니다. 사탄이 하나님께서 욥을 인정하시는 것을 보고 까닭 없는 신앙은 없다고, 욥을 시험하자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제일 먼저 재산을 거둬가셨습니다. 그리고 강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십 남매를 한순간에 잃었습니다. 얼마나 충격이었겠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가슴을 치고 땅을 치며 슬퍼할 텐데, 욥은 달랐습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 세상에 나올 때 알몸으로 왔으니 그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리며 살았고, 다시 거둬 가신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하나님 앞에 찬송하며 예배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평소에 모든 것이 잘될 때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혹시 욥과 같이 모든 것을 잃고 고통스런 일을 당한다 해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고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종기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났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던지 잿더미 위에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온몸을 긁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욥은 아내에게서 버림을 받습니다.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었던 친구들까지 욥을 정죄하고 책망합니다. 욥은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난을 다 받은 것입니다. 재물, 명예, 권세, 건강, 가족, 친구,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의 반응은 뭐냐면 이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욥은 고난을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고 갑절의 복을 경험하는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요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고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 욥도 고난을 만났고, 아브라함도 요셉도 다윗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고통이 없다거나, 고통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만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이 다른 것은 고통을 보는 시각차이,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을 우연으로 해석합니다. 고통을 단순한 고통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고난을 ‘절대 필연’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고... 모든 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과의 다른 고통의식입니다. 욥이 당한 고통과 고난은 그의 아내나 친구들이 볼 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에게 고난은 더 큰 하나님 축복으로 가는 디딤돌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믿음 이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 선교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김준곤 목사님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이 목사님은 어려서부터 많은 고난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동생이 불꽃놀이를 하다 심한 화상을 입고 죽는 것을 보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동생이 벌목현장에서 쓰러지는 나무에 치여 죽는 슬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6.25때는 가족들이 공산당에게 학살당하고, 자신도 스물 세 번이나 그들에게 끌려가 구타당한 끝에 인민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몇 년 전에는 고등학교 교감으로 있던 동생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후 사랑하는 딸마저 위암으로 부모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분 아픈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위해, 대학생 선교를 위해 그 목사님을 얼마나 크게 사용하셨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고난이 가져다주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고난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보는 고난에 대한 개념은 어떤 것이며, 우리 믿음의 사람은 고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첫째, 믿는 자가 당하는 고난에 담긴 뜻입니다. 성도가 당하는 고난에는, 그 고난이 어떤 형태 고난이든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3가지로 살펴보면, 1) 회개를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잘되고 편안할 때 예기치 못한 일로 고통을 겪게 되면,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사업이 실패하거나, 실직하거나, 몸이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거나... 그때 사람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그때 참 잘못했구나. 그때 직장생활 할 때 그 친구에게 좀 더 잘했더라면, 내가 돈이 있을 때 그때 남을 좀 더 도와주었더라면, 내가 건강할 때 좀 더 절제했더라면...’ 다윗도 그랬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때문에 내가 회개하고 주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나를 보세요. 편안하고 좋을 때는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 하셨지만 니느웨 대신 다시스로 가려고 했습니다. 이때 태풍이 불어왔고, 결국 물에 빠지게 되고, 큰 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고통 속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회개시키기 위해 고통의 계기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도록, 회개하라고 고난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고난을 만날 때 우리 해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겸손을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겸손한 자로 만들기 위해 고난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자로 크게 성공한 다음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전도 열매가 맺혀 갑니다. 바울이 사도로서 크게 성공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몸에 육체 가시가 생겨 몸을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하나님께 해결받기 위해 세 번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유대 관습에 의해 한번 기도하는 것은 40일 동안 금식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40일 금식기도를 세 번이나 했습니다. 그런데도 육체의 질병이 고쳐지기는커녕 뜻밖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계시가 너무 크고 많기 때문에,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래서 나로 하여금 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게 육체 가시를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약한 데서 온전해진다.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함이라. 오히려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축복하시고 사랑하실 때 100% 다 축복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꼭 한 두 부분 고통스런 부분을 남겨 두십니다. 왜냐면 그 약한 점, 고통스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가도록 약한 부분을 남겨 두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시 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이런 약한 부분을 만들어 두시기도 하십니다. 아무쪼록 고난이 올 때 사도 바울과 같은 영적 해석이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연단하셔서 존귀한 자로 사용하시기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신명기 32장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되 독수리 같이 연단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독수리가 새 중 왕이 되는 것은 우연히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미 독수리로부터 극한 고난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새끼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이런 연단의 과정을 거쳐 결국 새 중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시켜서 더 큰 사람, 더 큰 일을 하도록, 더 큰 축복을 받도록 하시기 위해 고난을 주십니다. 그래서 욥은 이 고난은 내게 유익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금광에서 캐낸 광석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뜨거운 용광로를 거친 후 비로소 순도 높은 금이 되어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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