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03. 주일낮예배 "기념비적인 삶을 살자" (젊은이주일)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869회 작성일 2011-12-09 23:09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1.4.3.젊은이주일 기념비적인 삶을 살자 다니엘 3 : 28-30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에 보면 기념비적 삶을 통해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고, 가문이 복을 받고, 자신이 큰 복을 받은 사람이 나옵니다. 다윗이라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목동에서 왕이 된 자입니다. 일개 목동에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첫째로, 이름이 위대해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무엘하 7장 9절을 보면,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다윗이라는 이름은 ‘사랑받는 자’란 뜻입니다. 다윗은 그 이름대로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다윗이라는 이름이 700번이나 나옵니다. 일개 목동이었던 사람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다윗 때문에 민족이 번성하고 평안해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무엘하 7장 11절을 보면,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다윗 전 시대까지만 해도 평안이 없었습니다. 사사시대에는 늘 이웃과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사무엘 때도 그랬고, 사울 왕 때도 블레셋과 늘 대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자 정치, 경제, 사회가 이상하게도 평안해졌습니다. 또한 어느 때보다 나라가 강성해지고, 지경이 넓어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잘 믿으면 나라와 민족이 잘되는 복을 받습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토인비 박사는 “복음이 가는 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미개한 사람이 문화인이 되고, 가난한 사람이 부요해지며 세계 역사에 남는 일등 국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번역해서 제일 먼저 읽기 시작한 독일은 세계에서 박사가 가장 많이 나왔고, 해적 나라였던 영국은 민주주의를 꽃피워 세계를 지배했으며, 미국은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질병 많고, 빈대 많고, 우상이 많고, 가난에 찌들어 저녁에는 죽만 먹고 보리고개가 되면 나무뿌리와 칡뿌리로 연명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1885년 하나님을 잘 믿는 선교사님이 오셔서 교회를 세우고 광혜원과 서혜원이라는 병원을 세웠습니다. 또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세워 현대 교육과 현대 의학이 시작되고, 가난과 무지와 우상숭배, 상반제도, 남존여비사상이 물러가고 오늘과 같이 복있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가문이 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무엘하 7장 12절로 13절을 보면,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큰 권세와 기업을 이룬 사람도 자녀에게 물려주면, 그 권세와 물질과 명예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길어야 80에서 100년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대를 이어 자손의 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고, 다윗 자손이 유다나라 왕통을 이어갔으며, 그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연세대 초대 총장인 백낙준 박사는 그 아버지가 맹인이요 점쟁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예수 믿고 나서 아들이 잘되고 가문이 잘되는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다윗이 이렇게 큰 복을 받은 이유가 뭡니까? 기념비적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 한 사람이 기념비적인 삶을 살자, 자신은 물론 가문과 나라와 민족이 기념비적인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한 사람의 위대함이요, 영향력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가치가 여기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은 아주 소중합니다. 한 사람이 가정을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합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히틀러 한 사람 때문에 60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고 전 유럽이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한 사람 때문에 민족이 복을 받고, 한 사람 모세 때문에 민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기념비적인 삶을 통해 복을 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입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나라를 빼앗깁니다. 그러자 바벨론은 이스라엘에서 똑똑한 몇 사람을 포로로 끌고 궁중으로 갑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약 15살쯤 되었습니다. 한창 꿈을 키워나가야 할 때 나라가 망함으로 노예가 된 것입니다.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기념비적인 신앙과 삶의 자세 때문에 이방나라에서도 왕의 인정을 받고 높은 관리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때, 민족에 희망의 빛을 비추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들의 기념비적인 삶에 자세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삶의 철학이 하나님이 되는 사람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인종과 언어가 달라서 분열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부를 결속시키고 신바벨론 건설을 위해 금신상 숭배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금신상에 온 국민이 절하고 숭배하도록 법으로 제정한 것입니다. 마치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와 비슷한 식민지 통치방법입니다. 이와 같은 금신상 숭배법을 만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백성들의 정신세계를 통제하고 행동과 문화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삶의 철학을 없애고 그 위에서 영원히 군림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치 이데올로기 속에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던져지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금신상 숭배법에 정면으로 대항합니다. 금신상 숭배법이 이미 법으로 정해졌고 어길 경우 극형에 처해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목숨을 걸고 그 법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노예 신분에서 어렵게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냥 한번 절하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믿어도 됩니다. 신앙이 좋다는 주변 사람도 ‘이건 그냥 형식일 뿐’ 이라고 하며 절을 합니다. 그런데 이들만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금신상에는 절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이유는 금신상에게 절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바벨론 땅이지만,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는 한 가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삶의 목적과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는 것입니다. 금신상 숭배법은 자신들의 삶의 철학과 도저히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관계였기 때문에 대항한 것입니다. <엄마 울지마> 라는 책에 나오는 황경애 사모님의 간증입니다. 이 분은 남편 없이 혼자서 그것도 먼 이국땅에서 세 자녀를 길렀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하라는 말보다 ‘교회가자, 예배드리자, 성경읽자’ 라는 말을 더 많이 하며 신앙훈련을 철저하게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내 딸이 우리나라로 하면 고등학교 3학년 된 여름에 “내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지, 남아도는 시간을 드리고 싶지 않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하면서 남미로 선교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3,200명 학생을 제치고 수석 졸업하는 영광과 800만 관중 앞에서 대표로 졸업 연설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과 예일대 동시합격, 빌게이츠 재단 100만 달러 장학금까지 받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를 확실하게 책임져 주시고, 그 이름을 높여 주십니다. 여러분, 사람은 분명한 삶의 목적과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 승리하는 사람들에게는 몇가지 승리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 비전입니다. 하나의 목표, 방향, 사명, 이것을 비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시간과 노력과 관심과 물질을 한군데로 집중시킬 수 있는 목표, 비전이 있어야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모험심입니다. 옳다고 확신이 섰으면,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마음에 정해졌으면 과감하게 투자하는 모험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적극성입니다. 매사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합니다. 옳다고 믿고, 생명까지도 불사를 수 있는 명분이 섰을 때는 뒤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여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복이 뒷받침돼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계획하지만 이를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성취되는 모든 것이 내가 똑똑하고 계획을 잘 세워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피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삶의 철학, 삶의 목적, 삶의 의미를 정확하게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일, 가정, 사랑, 결혼, 공부... 그러나 여러분, 공부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일하기 위해 일하는 것 역시 그렇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함께 살기 위해 결혼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2011.04.10. 주일낮예배 "와서 우리를 도우라" 11.12.09 다음글2011.03.27. 주일낮예배 "인생의 산과 골짜기"11.12.09